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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카이워커 Apr 16. 2023

당신은 엠비티아이가 아닙니다

광신의 시대, 조금만 거리 두고 바라보기

‘엠비티아이가 뭐예요?’


회사에 새 동료가 들어왔을 때 꼭 하는 질문이다. 물론, 이 질문은 딱히 할 말도 없고 사적인 질문을 하기에는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피상적인 물음 — 예를 들어 ‘영화 00 봤어요?‘, ’좋아하는 음식 있어요?‘ 와 같은 — 만 하기에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기 힘들 때 하기 딱 좋은 말이다. 엠비티아이만큼 그 사람의 성향을 한 번에, 아주 쉽게 파악하기 좋은 질문도 없다. 그렇다. 아주 ‘쉽게’ 알 수 있는 것만큼 게으른 것도 없다.


인간은 본래 아주 입체적이고 다면적이어서 일관성 있기가 매우 힘든 존재다. 어떤 상황에서는 I처럼 행동하다가도, 어떤 때에는 E처럼 행동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그런데 이 MBTI라는 것은 마치 사람을 4글자의 알파벳 안에 가두는 느낌이다. MBTI가 정말 심리학 이론에 기반한 과학적인 검사 방법이라는 것은 알지만, 어느 시점에 갑자기 유행처럼 번지면서 대중들에게 보급되었을 때, 초기 의도는 많이 퇴색되었다고 본다.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강점이 있고, 그중 특정 강점이 도드라지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을 16가지 패턴으로 분류하고 군집화한 것이 엠비티아이다. 중요한 것은 여러 가지 강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은 여러 가지 상반된 성향을 동시에 가지기도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른 검사지도 그렇듯 MBTI도 각 문항이 의도하는 지표가 있다. 어떤 문항은 S성향이 강한지를 테스트하고, 어떤 문항은 N성향이 강한지 테스트한다. 내가 S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해서 N에 관한 모든 질문에 ‘절대 아니다’라고 답하진 않는다.


하지만 물밀듯이 쏟아지는 엠비티아이 관련 콘텐츠와 미디어, 마케팅을 보면 ‘I인 사람은 절대 E가 될 수 없어’라는 식의 내용이 주를 이룬다. 심지어 방송에서조차 (재미를 위해 과장하는 것이겠지만) E인 사람이 I인 사람에게 파티에 가자고 하면 I인 사람은 질색팔색하며 싫어하는 장면이 빈번히 나온다. 재밌으라고 연출한 장면이니 재미는 있지만 어딘가 불편하다. ’나‘라는 인간은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실타래 같은 인간인데, 억지로 쫙쫙 펴서 평평하게 만드는 느낌이다. 과거 혈액형이 유행했을 때, ‘A형은 소심하다‘는 말을 듣고 위축되었을 나를 비롯한 수많은 A형 인간들이 생각난다.


실제로 나만 해도 엠비티아이 검사를 하면 ENFP 또는 ENTP가 나온다. — 사실 검사의 신뢰성도 의문이 가는데, 무의식적으로 ‘있는 그대로의 나’보다는 ‘내가 되고 싶어 하는 나’와 가까운 쪽을 선택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좀 더 솔직하게 하면 ENFP가 나오고, 내가 선호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검사하면 ENTP가 나온다.)


엠비티아이대로 해석하면 나는 외향적이고, 직관적이고, 감정적이고, 무계획적이다(J가 아니니까). 어느 정도 맞지만, 나는 소비적인 만남을 즐기지 않고, 친구도 많이 없을뿐더러, 사색을 즐기고 이따금 치밀하게 계획한다. 요즘 소비되는 엠비티아이는 그런 나의 다채로운 모습을 부정하고 내가 더 ENFP 답게 행동하길 요구하는 것 같다.


‘T인데 왜 공감을 해줘? T는 늘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해야지, J인데 계획을 안 짠다고? 아니? 네가 짠 계획은 J가 아니야. E인데 왜 안 놀려고 해?’


커뮤니티나 각종 SNS를 보면 엠비티아이에 과몰입하여 자기 자신을 캐릭터화하여 모든 상황에서 엠비티아이의 기준에 따라 행동하려는 사람도 있다. 요즘 말로 ’모에화(인간이 아닌 동물, 사물, 개념, 현상을 의인화하는 것)‘라고나 할까. 특히나 이런 유행은 자아정체성이 명확히 수립되지 않은 청소년들에게 더 위험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 말은 너무 꼰대 같아서 혼자 조용히 속으로만 생각한다.


엠비티아이의 순기능도 있다. 모든 심리검사가 그러하듯 내가 알지 못한 나의 면모들, 나의 특성을 인지하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 나의 선호에 대한 이해를 토대도 올바른 선택을 하게 하는 것. 나를 이해하고 사랑함으로써 좀 더 당당해지는 것도 엠비티아이의 긍정적인 영향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지나치면 나에 대한 근거 없는 신뢰로 이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즉흥적이고 무계획에 가까운 사람인데, 이것이 매력이 될지언정 돌이켜보면 인생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인생에 마이너스가 된 적이 많았다. 나의 (즉흥적인) 선택을 되돌아보고, 후회하고, 그 후회로 인해 내면이 더 망가지기도 했다. 번뇌 끝에 지금은 내가 다소 즉흥적이고 감정에 휘둘리는 면모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최대한 자제하려고 노력한다. 계획적으로 소비하고 인생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계하려고 한다.


엠비티아이를 맹신한다면 나의 이런 성격은 N이라고 원래 그런 것이고, P라서, F라서 극복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내가 원래 그렇지 뭐~’하면서 성장하기를 거부하게 만드는 것이다. 좀 더 나은 나를 만들고 싶다면 엠비티아이를 보고 나에게만 집중하고 내 안으로만 파고드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다른 엠비티아이의 특성을 보고 ‘왜 저러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하는 것이 아닌 ‘오, 그럴 수도 있겠구나. 이럴 때는 그렇게 판단하는 것이 더 좋겠구나.’라고도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엠비티아이, 재미로는 좋지만 엠비티아이에 나를 가두지는 마세요. 조금만 거리 두고 바라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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