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혜인 Sep 01. 2020

아이러니한 세상의 미학들

옳고 그름의 역전

@momo

 나도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려왔는데 왜 아직도 꿈에 도달하지 못한 걸까? 사실 처음 달릴 땐 아무 생각이 없었다. 체력도 충만했다. 하지만 달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종착점은 어디일까? 나보다 일찍 도착한 사람이 있을까? 언제까지 달려야 할까? 지금보다 더 숨이 차면 어떡하지? 추월당하면 어떡하지?


 달릴 때 드는 생각이다. 아무 생각이 없다가도 오랫동안 달리다 보면 으레 드는 생각인데 참,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점점 움츠러드는 청춘의 모습과 닮았다.


 처음에는 당당하게 “나 피디 준비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직 피디가 ‘되지 못한’ 이유를 말해야 할 것만 같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주변 상황을 탓하게 된다. 어릴 때는 어떤 상황에서도 남 탓하지 말라는, 환경 탓하지 말하는 미학을 배웠다. 그게 옳다고 믿어왔는데 자꾸 상황과 환경을 탓하게 되는 나를 보면 못나 보인다. 초심자의 운과 점점 멀어진다.


 그때쯤 되면 또 이상한 생각이 든다.


“오랫동안 준비하면 안 되는 걸까? 아니 오래 준비해서 안 되는 걸까?”


 세상의 미학은 묘하다. 잘하길 바라면서도 많은 시간을 들여서 투자하는 건 싫어한다. 그래서 나뿐만이 아니라 내 주변 모든 사람이 죽자고 달린다. 달려가고 있으면서도 행여나 추월당할까 봐, 레인에서 이탈할까 봐 조마조마해한다.


 그렇게 주변 상황을 신경 쓰기 시작하면 정작 달리는 순간에 집중하지 못한다. 초심자의 행운이라는 것은 처음에 멋모를 때 이 달리는 순간에 집중할 수 있어서 결실을 보기에 더 효율적이라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사회생활을 하면 할수록 내 장점보다 단점이 보인다. 그것들 때문에 더 스트레스를 받는다. 예를 들면 할 말 못 하는 성격, 참는 성격, 너무 남을 배려하는 성격, 너무 책임감이 강한 성격,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 유한 성격…. 일상에서는 장점이 되는 성격들이 하나같이 단점으로 다가온다. 이쯤 되면 감정이 없고, 남 배려 안 하고, 이기적인 사람이 더 편하게 일할 수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감정은 중요하다. 온갖 이야기에는 감정이 중요하다고, 오직 인간만이 감정을 느낄 수 있기에 감정의 가치는 소중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작 일할 때는 감정이 오히려 쓸데없이 느껴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참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감정을 중요시하는 성격 또한 내 단점이 되다니. 자꾸 단점을 고치려 하게 된다. 그런데 한 번 고치기 시작하면 모든 게 다 고칠 점투성이다. 더 내 편익을 위하는 쪽으로 사람이 변하게 된다. 그래야 편하고 그래야 살 수 있다. 그리고 그래야 현명하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건 정작 위에서 돈 많이 버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장점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단점을 고치지 말고 장점을 극화시킬 방법을 찾으라고 한다.


 요즘 그런 생각이 든다. 돈이 없으면 환경 개선이 너무 어렵다. 아무리 노력해도 달라지는 거 없다. 그러다 보면 내가 안 되는 건 지금 내가 처한 환경 때문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 환경은 전혀 개선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게 개선되려면 돈 있는 누군가의 조력이 필요하다.


 잘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 생각을 버리고 잘난 사람들처럼 생각해야 잘나게 되는 거라고. 이쯤 되면 생각이 사람을 만드는 건지 사람이 생각을 만드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세상이 요지경이다 보니 내가 나를 잃지 않는 게 참 중요하겠다. 스스로가 바로 설 수 있다면 이깟 생각이 드는 것쯤이야 무슨 대수겠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