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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혜인 Aug 20. 2020

길은 걷는 사람이 있기에

길의 진정한 의미


 조바심이 나거나 아니면 마음이 급할 때 심적 여유가 없어지고 성격이 삭막해진다. 그래서 나는 이제 조바심을 내지 않기로 했다. 뭔가를 이뤄야 한다는 부담감을 떨쳐내면 조금 더 인간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럴 때 힘들고 지친 사람들의 입장이 눈에 보이고 배려하는 마음도 생기는 것 같다. 어디서 읽은 내용인데 성과를 이루는 게 어려울 때는 일단 현상 유지만 하면 된다고 하더라. 이 말은, 읽을 땐 별생각 없는데 두고두고 기억에 남으면서 힘이 되는 말인 것 같다.


 작년 프로듀스 사건 때문에 지금은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지만, 난 지금까지 서바이벌 예능을 참 좋아해다. 서바이벌 예능을 보고 있으면 묘하게 힐링된다. 누구를 응원해서 그런 건 아닌데 순위 발표식이나 합탈의 상황을 보면 정말 내 삶과 접점이 보인다. 어떻게 화면에 비친 애들이 시청자들에게 이쁨받는지 알 수 있다. 또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면서 어떤 면에 끌려서 아이들을 선택하는 건지도 알 수가 있다.


 묘하게 이런 것들이 입사 과정에서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바이벌 예능을 보면 너무 무거운 부담감 때문에 본연의 매력을 잃고 감정에 호소하거나 세상을 보는 시야가 좁아진 참가자들이 있다. 물론 개인에게는 선택받는 게 정말 중요하겠지만, 이런 식으로는 선택받을 수가 없다. 본인의 처지만 그러하면 시청자가 연민을 느끼고 선택해주겠지만, 여기 나오는 모든 참가자가 같은 상황이기에.

 



 아이러니하게도 서바이벌 예능을 통해 삶과 경쟁 구도 안에서 버텨나가는 법을 정말 많이 배우고 있다. 각 서바이벌 예능은 다 다르지만 “이번에 안 되면 다시는 기회가 없어요.”라는 말이 나오는 건 다 똑같다.


 기회. 우리는 알면서도 특정 시점까지 뭔가를 꼭 이뤄야 한다는 그런 강박관념에 알게 모르게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 그런 강박관념을 갖든 안 갖든 그 시점까지 이룰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히려 그런 강박관념이 더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듯하다. 그 나이에 누릴 수 있고 볼 수 있는 것들을 모두 놓치게 만드는 생각. 그 생각을 한다고 인생이 더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뭐 다 잘 살고 싶어서 갖게 되는 강박관념일 것이다. 나도 매번 떨쳐내려 하는데 떨쳐내어 지지 않는 그런 생각이다.


 그래도 요즘은 예전보다 강박관념에서 많이 벗어났다. 속도가 빠르다고 해서 결코 생각처럼 빨리 뭔가를 취하는 결과를 낳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됐기에. 그리고 그걸 취한들 그동안 느껴오던 허기가 포만감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어느 나이까지 이걸 꼭 이루고 저걸 꼭 이뤄야 한다는 그런 생각은 버려도 괜찮을 것이다. 때가 되면 그런 계획을 빡빡하게 세우지 않아도 여태껏 그래 왔던 대로 다 해결될 것이기에.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이 생각에 사로잡혀서 지금도 놓치고 있는 순간들을 최대한 느끼는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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