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미워? 안 짜증 나?"
- "안 미워? 안 짜증 나?"
그녀 문자에 잠깐 생각하니
그다지 밉거나 짜증 나지는 않았다.
처음 하루 정도의 연락두절에는 밤을 새웠지만,
며칠 전의 약 하루 반나절의 두 번째 연락두절에는 그저 생각을 중간중간한 것 외엔
잘 자고 내 생활을 했을 뿐이었다.
일이나 연애에 있어 잠 못 드는 밤을 생각해보면
내 행동의 이유는 '불확실한 것', 그 부분에 닿아 있다.
지속될 관계면 문제는 없고, 깨어질 일이면 이유를 묻고
그 사유에 따라 털거나 며칠에서 몇 달 아프면 그만이다.
하지만 불확실한 회색지대는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든다.
내가 했어야 할 액션 중에 하지 않은 일은 없나,
내가 잘못한 부분은 없나. 질문에 질문이 꼬리를 물고 밤잠을 설치게 한다.
- '서로 연결되어 있는 느낌'
연락 문제에 관한 글을 읽다가 저 문장에 눈이 멈췄다.
어느 날은 하루 종일 연락도 기별도 없어도 아무 문제가 없고
어떤 날은 30분만 문자 텀이 길어져도 온갖 불안이 싸고돈다.
하루 연락이 없다고 잠 못 드는 날이 있는 반면에,
하루 고별 없음에도 잘 있겠지 하고 픽 웃고 할 거 다 하고 잠드는 날.
트리거는 저 지점에 있었다.
연락이 없어도 대략적인 일상이 그려지는 관계라면, 굳이 연락이 없어도 불안이 없다.
어떤 성향이고 어떤 일상을 보냈을 것이고 바빴으리라 생각이 돌면
그저 미동도 없는 메신저 창을 보고 픽 웃고는 내 시간에 충실하면 그만일.
- 오전에 좋고 오후에 미운 열다섯의 연애도 아닌데.
두 번째 하루 반나절의 연락두절에, 나는 1~2 주 시간을 가지고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좋을 듯하다는 문자를 보냈다. 밤을 새우며 나를 괴롭힌 연락두절은 아니었으나
관계가 지속하기 위해서는 이 부분을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는 표현이자, 요즘 마음이 바빠
나와의 관계가 마음에 짐일까 하는 경험적인 염려에 기인한 제안.
얼마 후 그녀의 문자에 나는 며칠을 대화하면서 디테일하게 캐치하지 못했던 그녀의 마음속 전쟁터와
상황들을 전해 듣게 되었다. 그리고 연락이 없었던 이유에 대해 이해하게 됐다.
몇 번의 장문이 오고 간 후에 우리는 잠시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일단은 그녀에게 마음의 전쟁이 잦아든 후에, 내 곁에 있는 것이 즐거운지 내가 생각이 나는지 보고 싶은지를
석 달이던 몇 달이던 지내보고 얘기해달라고.
나는 나의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내 삶을 살다 중간중간 떠오는 때에
다면체 같은 길고도 짧은 둘 간의 기억을 더듬으면서
미처 몰랐던 숨겨진 사면을 발견하고 나와 관계를 복습해가면서
깨닫지 못했던 무언가를 깨닫겠지.
살아가면서 손이 작은 너와 덩치가 큰 서로 다른 내가 만나서 서로 사인을 맞춰가고 서로의 표현을 이해해가
는 일은 쉽지도, 짧은 시간에 이뤄지지도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건 누구를 만나도 거쳐가야 하는 시간이고
너와 내가 유달리도 힘든 관계였다고 느끼지도 않는다.
밉거나. 짜증 나지 않는다. 그냥 순간에 충실할 뿐. 함께였던 그때도 조용히 혼자 앉은 지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