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 일기 0332]
아름다운 마무리
날짜와 거리: 20220221
코스: n/a
평균 속도: n/a
누적거리: 6.143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책 ‘대통령의 염장이’를 읽으며 고인이 되신 아버지와 장인어른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특히 아버지의 모습은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다. 어머니께서 아버지보다 늦게 돌아가셨는데,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기억에 거의 남아있지 않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바로 전날 가족들이 아버지 침대 옆에 모여 아버지와 관련된 추억들을 얘기했다. 대부분 그다지 좋은 얘기는 아니었지만, 아버지와 화해를 하고 싶다는 생각들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숨을 거두기 바로 직전까지 남아있는 감각이 청각이라고 한다. 말은 못 하고 보이지는 않더라고 귀는 열려있다. 돌아가시기 전 추억을 얘기하며 마음에 담았던 일들을 풀어드리고, 풀어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에게 다가가 손을 잡았다.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손이다. 손을 잡으니 아주 어릴 적 5,6세 정도의 추억이 떠올랐다. 아버지께서는 약주를 하신 후에 내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시며 어느 길을 걸었다. 그때 부르셨던 노래가 나중에 기억해 보니 ‘유정천리’였다. 지금도 그 노래를 부르면 눈물이 난다. 노래와 함께 떠오른 기억은 아버지의 손길이다. 땀과 담배 냄새가 밴 따뜻한 손 느낌이다. 그 손에는 아버지 냄새가 배어있다. 그리고 돌아가시기 바로 전에 다시 아버지 손을 잡았다. 청각은 남아있다는 얘기를 들었기에 아버지 손을 잡고 아버지 귀와 가장 가깝게 다가가서 ‘광명진언’ 정근을 작은 목소리로 108회 염송 했다. 아직 돌아가실 때가 아니라는 가족들 말을 듣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숨을 거두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다시 차를 돌려 가니 편안한 모습으로 누워계셨다. 얼굴이 너무 편안해 보여 아직 살아계신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편안하게 돌아가셨다. 아무런 유언도 없으시고 훌훌 털고 가셨다.
양가 부모님 중에 장모님만 생존해 계신다. 우리 아이는 결혼해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아내와 나는 한 아이의 부모, 두 아이의 조부모가 되었다. 얼마 전 명절 때 제사를 지낸 후 형에게 내 나이 70세까지만 제사나 명절 때 오고, 그 이후에는 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제 내 죽음을 준비해야 할 때라고 말했고, 형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할 것이다. 장인어른 제사에도 70세 이후에는 참석하지 않겠다고 아내에게도 선언했다. 양가 부모님께서 모두 돌아가시고 나면 바로 우리의 죽음을 맞이할 시기가 온다. 죽기 전에 미리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
사람의 일평생은 참으로 덧없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태어나고, 공부하고, 직장 생활하고,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고, 그리고 죽음을 맞이한다. 그 과정마다 수많은 굴곡이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가정의 틀이 안전망 역할을 해주기도 하면서 동시에 족쇄가 되기도 한다. 안전망 안에서 자란 후에는 가정을 떠나 자신의 길을 가야만 한다. 하지만, 우리 나이의 세대에서는 부모님과 아이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또한 가족과 친척, 친구, 지인들과의 수많은 연결고리로부터 쉽게 벗어날 수가 없다. 사회적 책임과 가정적 책임을 다하고 나면 어느새 우리 죽음이 눈앞에 다가와 있다. 이제는 그 연결고리를 조금씩 끊어내고 싶다. 나만의 삶과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나의 범주에는 아내만 포함되어 있다. 딸아이는 이미 가정을 이루었기에 더 이상 나의 범주 안에 넣어서도 안 되고, 이미 벗어나 있다. 건강한 독립을 잘한 것이다. 양육의 목적은 ‘건강한 독립’이다. 이제 아내와 나만의 삶을 살고 싶다. 그 시작 시기가 70세이다. 70세 이후에는 오직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아내와 함께 즐겁고 건강하게 살고 싶다.
김형석 교수는 70세가 인생의 황금기라고 하셨다. 그 의미를 알 것 같다. 70세가 되면 일반적으로 양가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시고, 손자들도 더 이상 조부모의 손길을 그다지 필요하지 않을 때가 된다. 나 역시 5년 후에 큰손녀는 초등학생이 될 것이고, 둘째 손자는 6세가 될 것이니 우리 도움이 그다지 많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형제들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활동 범위도 줄어들 것이다. 자연스러운 독립과 자발적 고독을 맞이할 시가가 도래할 것이다. 나이 들어가면서 저절로 친구 관계도 더욱 단순화될 것이고, 할 일도 점점 더 줄어들 것이고, 외부 활동도 많이 줄어들 것이다. 지금부터 건강한 마무리를 위한 준비를 해나가고, 70세가 되면서 좀 더 자신을 돌아보며 아름다운 마무리를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걷기와 명상은 매일 꾸준히 하며 심신의 건강을 유지하고 싶다. 나이 들어가면서 가장 두려운 것이 치매 또는 몸을 타인에게 의탁하게 되는 것이다. 걷기와 명상이 나를 지켜 줄 것이다. ‘걷고의 걷기 일기’는 평생 쓸 것이다. 글쓰기와 독서는 치매 예방에도 좋고 정신활동에 큰 도움이 된다. 얼마 전 기사를 보니 60세 이후에도 비록 반응 속도는 떨어지지만 뇌의 성장은 지속될 수 있다고 한다. 뇌의 가소성 원리다. 살아있는 동안 한 가지는 남기고 싶다. 나의 이름을 남기겠다는 생각보다는 살아온 흔적을 남기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을 보니 늙어가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 흔적이 바로 ‘걷고의 걷기 일기’이다. 나중에 한 두 권의 책으로 발간되어 인생 후배들에게 자그마한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더 좋은 일이다. 그것은 내가 할 일이 아니니 나는 쓰기만 하면 된다. 설사 딸아이에게 책 발간을 유언한다고 해도 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니 나는 쓰기만 할 것이다. 죽은 자가 산 자의 삶에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
살아가면서 한 가지 배운 것 중 하나는 ‘나는 매우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평범한 사람이 비범한 사람을 쫓아가는 어리석음을 범할 나이는 이미 지났다. 나의 모습을 제대로 알고, 그에 맞게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걷고의 걷기 학교’는 평생 할 작업이지만, 나의 그릇 크기를 알기에 욕심을 내지 않고 함께 걷는 모든 사람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내며 걷는 것이 더 중요하다. 걷기 학교 외에 걷기 동호회 활동과 개인적인 모임과의 걷기가 모두 ‘걷기 학교’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걷고의 걷기 학교’를 통해 나를 알리고자 하는 욕심이 있었는데, 내 그릇의 크기를 알아가면서 그 욕심마저 서서히 내려놓게 되었다. 좋은 일이다.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의 모리 교수처럼, 또 ‘대통령의 염장이’에 나온 ‘사전 이별식’처럼 죽기 전 ‘사전(死前) 장례식’을 치르고 싶다. 즐겁고 조용한 장례식이 되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사후에는 장례식을 치르지 말고 화장 후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강이나 산에 뿌려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굳이 납골당이나 수목장 등을 한다고 의미 없는 뼛가루를 보관할 필요가 없다. 제사도 불필요하고, 다만 아이들이 나를 기리고 싶다면 식구들끼리 모여서 식사하는 것으로 족하다. 거추장스럽고 번거로운 제사나 명절 차례 상도 차릴 필요조차 없다. 아이들 식구끼리 즐겁게 보내면 되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노력과 연습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걷기, 명상, 글쓰기, 독서가 가능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연습을 잘하기 위해서는 삶의 단순화도 필요하다. 거추장스럽고 번거로운 일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발적 고독이 필요하다. 외로움은 욕심에서 나온다. 이 욕심을 벗어나기 위해 자발적 고독을 누리는 기쁨을 알아야 한다. 이 역시 연습이 필요하다. 살기 위해 연습과 노력이 필요하듯, 죽기 위해서도 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살기 위한 일이 쉽지 않듯, 죽는 일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삶과 죽음 모두 가벼운 일이 아님을 점점 더 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