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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고 Apr 14. 2024

<금요 서울둘레길 마음챙김 걷기 10회 차 후기>

걷기, 철학자의 생각법

<걷기, 철학자의 생각법>, 요즘 읽고 있는 책이다. 전자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고 있다. 늘 들고 다니는 짐을 가볍게 만들기 위해 종이책 대신 전자책을 핸드폰에 들고 다닌다. 전자책은 언제 어디서든 쉽게 꺼내 볼 수 있어서 좋다. 종이책에 익숙한 습관을 바꿔 전자책으로 보니 처음에는 다소 어색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읽을 만하다. 도서관에서 빌린 전자책은 오디오 기능이 없어서 한 가지 아쉽기는 하지만, 너무 편안한 것만 찾는 것에 익숙한 습관을 바꾸는 것도 자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라도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는 연습은 삶에 활력을 만들어준다. 불편함이 오히려 도움이 된다. 불편함을 무조건 밀어낼 필요가 없다. 오히려 불편함을 수용하며 익숙한 습관적이고 관성적인 태도를 바꾸는 연습도 야생성의 회복에 도움이 된다.      


이 책은 과거의 철학자와 종교인, 그리고 사상가들이 걷기를 좋아하고, 걸으며 생각하고 가르치고, 듣고 배운 얘기를 정리한 책이다. 걷기와 철학과의 관계를 한번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니체와 루소는 대단한 걷기광(狂)이라는 얘기를 어느 책에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부처님도 인도 전역을 다니시며 법문을 펼치셨다. 공자님도 한 나라에 머물지 못하고 당신의 철학과 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돌아다니셨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고대 철학자들은 길 위에서 사상을 펼치고, 제자들과 함께 걸으며 길 위에서 가르침을 펼쳤다. 이들이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돌아다닌 이유가 무엇일까?      


이 책의 서문에 나오는 재미있는 글이 있다. 내용은 정확히 기억 못 하지만 나름 해석해서 정리해 본다. 걷기는 불균형을 균형 잡는 일이다. 한 다리를 들면 몸의 균형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몸이 쓰러지기 전에 다른 다리를 옮기며 몸의 균형을 잡는다. 이 어려운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 걷기다. 의식하든 못하든 우리는 이 위대한 행동을 너무나 자연스럽고 아무런 일도 아닌 듯 해 치운다. 그런 어려운 일을 하면서도 스스로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작업과 행동을 하는 대단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고 지낸다. 논리적으로 표현한다면 하나의 의견과 그 의견과 상반되는 의견이 부딪치며 다른 새로운 의견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상반된 의견이 없다면 하나의 의견은 생명을 잃어버리게 된다. 따라서 다른 의견과 생각은 자신의 위치와 사고를 파악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가 된다. 오른쪽 다리 하나로 균형을 잡을 수 없다. 잠시 잡을 수는 있겠지만, 오랜 시간 버틸 수는 없다. 왼쪽 다리가 있기에 오른쪽 다리는 자신 있게 앞으로 디딜 수 있다. 왼쪽 다리 덕분에 오른쪽 다리를 이동해도 넘어지지 않는다는 확신을 갖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걷기와 철학, 만약 철학이라는 단어가 어렵게 느껴진다면 그냥 우리네 삶과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다. 우리네 삶은 걷기와 같다. 불균형을 균형 잡기 위해 앞으로 나아간다. 멈추면 쓰러진다. 그래서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비틀거리면서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쉼 없이 오른발과 왼발을 움직이며 앞으로 나아간다. 움직임은 살아있다는 증거다. 고인 물은 썩고 그 안의 생명체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네 삶도 멈추면 죽는다. 움직이지 않는 생명은 죽은 삶과 같다. 계속해서 움직이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걷기고 삶이다. 때로는 방향을 잘못 잡기도 하거나, 아니면 방향을 잃고 헤매기도 한다. 갈 곳이 없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도 있다. 그렇다고 멈추어 있을 수만은 없다. 깊고 깜깜한 터널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가고 움직여야 한다. 단 한 줄기 빛을 찾기 위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고 계속해서 움직이면 한줄기 빛이 우리를 찾아온다. 움직임은 삶이고 멈춤은 죽음이다. 걷기는 삶이고 멈추어서는 것은 죽음이다. 


또 한 가지는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것이 걷기고 삶이다. 오른발이 왼발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나와 다른 생각과 행동양식을 거부할 것이 아니고 받아들여야 한다. 물고기를 수족관에 넣어 이동할 때 상극인 물고기를 함께 넣는다고 한다. 서로 죽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활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이 덕분에 삶의 활력을 되찾을 수 있다. 상대방의 위치나 상황을 통해 나의 위치와 상황을 판단할 수 있다. 상대방은 나의 거울이 되고 저울이 된다. 거울은 나를 비추어주며 살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저울은 무게를 재며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비교를 위한 저울이 아니고 자신의 위치를 알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저울이다. 길을 걸을 때 방향을 놓칠 때도 있다. 이때 반대 방향의 화살표를 보며 나의 위치를 알아차리고 길을 찾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반대 방향의 안내판이 내가 가는 길의 방향을 알려준다. 따라서 나와 다른 때로는 완전히 반대되는 의견이나 생각은 나를 확인하는데 중요한 지표가 된다.      


상대방이 나의 균형을 잡아주고, 나의 위치를 파악하게 만들어 준다. 상대방이 없는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와 다른 생각 때문에 우리는 싸우고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기도 한다. 이런 싸움이나 투쟁이 삶에 도움이 된다면 좋겠지만, 오히려 자신과 상대방 모두에게 독이 되는 경우도 있다. 왼발이 오른발을 싫어하거나 오른발이 없어지기를 바란다면 이는 왼발 자신을 죽이는 일이 된다. 이 두 가지 즉 상대방을 인정하고 상대방을 통해 자신을 살필 수만 있다면 삶의 큰 장애는 많이 사라질 것이다.      


이 진리를, 아니면 이 쉬운 삶의 지혜를, 아니면 그냥 즐겁게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바로 걷기다. 왼발이 오른발을 인정하며 균형을 잡아가는 것을 배운다. 길동무와 나와의 다름을 통해 나의 위치를 파악한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간다. 따라서 걷기는 철학이 될 수밖에 없고, 걷기는 삶의 지혜를 배우는 가장 쉽고 편안한 방법이고, 심신의 건강을 지키는 좋은 방편이 된다. <걷기, 철학자의 생각법>은 이 쉬운 내용을 철학적 단어를 사용해서 설명해주고 있다. 때로는 쉽게 읽히기도 하고, 때로는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을 한 번에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잘하고 즐기는 ‘걷기’가 있다. 걷기 위해 집을 나서기 위해 신발 끈을 묶으며 설렘이 있고, 배낭을 꾸리며 설렘을 느낀다. 그 설렘은 길동무들을 만나 즐거움이 되고, 삶의 활력이 된다. 그리고 함께 걷기는 철학의 장(場)이 되고, 인생학교가 되고, 수행처가 된다. <걷기, 철학자의 생각법>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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