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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고 Jun 30. 2024

<달마고도 후기>

한 바탕 꿈

꿈을 한 바탕 꾸고 나니 다시 세상 속입니다. 꿈과 세상의 경계가 불분명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현실이라면, 꿈은 현실의 반영입니다. 따라서 꿈이 현실과 무관하다는 말씀은 어불성설입니다. 꿈에서 현실을 만나고, 현실에서 꿈을 꾸며 살아갑니다. 꿈이 있기에 현실을 살아갈 수 있고, 현실이 있기에 꿈을 꿉니다. 따라서 현실과 꿈은 하나입니다. 지금 꿈속 세상을 살고 있는지, 아니면 현실을 살고 있는지 구분할 필요는 있습니다. 이 두 경계로 인해 혼란이 생긴다면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꿈은 현실의 경험을 정리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불필요한 것은 쓰레기처리하고, 중요한 것은 보관해서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줍니다. 중요한 것 중에는 긍정적인 내용도 있고, 부정적인 내용도 함께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운 따름입니다.      


차 안에서 잠을 자는지 아니면 깨어있는지조차 구분하지 못할 정도의 가면인 듯 가면 아닌 것 같은 가면을 취하며 다섯 시간 이상을 달려갑니다. 이 조차 꿈속 여행입니다. 달마고도에 대한 환상과 기대를 가득 품고 있으니 꿈속 여행이 맞습니다. 비몽사몽간에 미황사에 도착 후 걸을 준비를 합니다. 미황사에는 새벽 예불을 준비하는지 대웅전의 불빛만 유일하게 세상을 비치고 있습니다. 일주문의 화려함과 정교함은 감탄하기에 충분합니다. 꿈에서 덜 깬 중생은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백팔계단을 오르며 이 둘을 아우를 수 있는 방편을 찾기를 기원합니다. 길은 쉽게 찾을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길도 자신에게는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이고, 이는 다른 경험을 하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설사 자신과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갖고 있다고 해도 탓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면 될 뿐입니다. 길을 찾는 시행착오를 통해서 우리는 자신의 길을 찾고 만들어가며 꿈을 이룹니다.      


어둠은 빛의 다른 모습입니다. 어둠이 없는 빛은 존재할 수도 없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둠과 빛은 우리가 만든 단어에 불과합니다. 그냥 늘 그대로 있는 세상을 우리의 편의에 따라 시간을 만들어 쪼개고 규정지어 명명한 것일 뿐입니다. 어둠도 세상이고 빛도 세상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어둠 속을 걷는다고 해서 이상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둠을 걸으며 그 안에서 빛을 만납니다. 기다림이 해결해 주는 것이지요. 다만 뭇 생명들의 깊은 잠을 깨우는 것이 미안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미황사에서 아침 예불을 위해 법당 문을 활짝 열고, 불을 밝히고, 도량석을 돌고, 모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사물(법고, 목어, 운판, 범종)로 세상을 깨우고, 아침 예불을 모시니, 이미 우리가 걷기 전에 모든 중생들은 깨어있으리라는 생각으로 미안한 생각은 하지 않으렵니다.      


새들의 다양한 목소리는 꿈속 세상을 더욱 환상적으로 아름답게 만들어줍니다. 서울에서 듣던 소리와는 다른 다양한 새들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들으며 다시금 깊은 꿈속 세상으로 들어갑니다. 세속의 때를 벗겨내는 천상의 목소리를 들으며 몸과 마음을 정화합니다. 습기 가득 머금은 산길을 걸으며 몸은 땀으로 흠뻑 젖지만, 이 역시 세속의 모든 독과 때를 벗겨내는 작업입니다. 이런 작업을 하며 비몽사몽간에 걷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지금이 꿈인가 아니면 현실인가를 확인하려는 시도를 합니다. 하지만 우리를 가둔 아니면 우리를 지키기 위해 감싸고 있는 짙은 안개는 이 둘의 구분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오늘은 그냥 자연의 선물인 안갯속을 걸으며 세속의 모든 근심을 내려놓으라고 합니다. 굳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하지도 말고, 안갯속에서 평온함과 안온함을 느끼며 자연의 품에 폭 안겨 지내라고 합니다.   

   

어둠 가득한 안갯속을 걸으며 어둠에 갇힌 또는 안개에 갇힌 답답함은 전혀 느낄 수 없습니다. 어둠은 기다림이 빛으로 만들어 줄 것이고, 안개는 힘든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하나의 큰 막이 세상의 모든 재앙을 막아주는 것처럼 우리를 감싸고 있습니다. 다만 짙은 안개 저 너머에 있는 다도해의 바다 풍경을 보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하지만, 굳이 안 본들 어떻습니까? 오늘만큼은 자연의 품에 안겨 세속의 풍경도 잠시 잊으렵니다. 세속의 아름다움과 추함은 우리에게 탐착과 혐오를 만들어 줄 뿐입니다. 잠시 이 두 가지, 탐착과 혐오, 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온을 되찾는 중요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상황과 경계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온한 마음을 늘 유지하고 싶습니다. 비록 이것이 욕심이라 하더라도 이 욕심만큼은 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저절로 버릴 날이 오겠지만, 지금은 이 욕심을 이루고 싶은 꿈으로 안고 살아가렵니다.     

 

산길을 걸으며 땅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오래된 퇴적물의 냄새를 맡습니다. 습기가 만들어낸 자연의 냄새를 맡습니다. 그 냄새를 맡으니 원시림에 들어온 느낌입니다. 시내의 산에서는 느끼고 맡을 수 없는 깊은 산속의 내음과 분위기는 다시 저를 꿈속 세상으로 데리고 갑니다. 꿈속 세상 같은 몽환적인 안개, 자연의 소리와 냄새, 걸어도 걸어도 결코 지치지 않고 더 걷고 싶은 아름다운 산책로를 걸으며 이 길이 모두 오직 사람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의 노고와 땀을 생각하니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예전에 미황사에 며칠 머문 적이 있습니다. 폭설이 내리는 날이어서 사부대중이 모여 하루 종일 제설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전 작업 후 지쳐서 그 당시 주지 스님이신 금강스님에게 인사드릴 염치도 없어서 몰래 도망쳐온 기억이 나며 미안한 마음이 더해집니다. 금강 스님이 주축이 되어 이 길을 조성하셨다고 들으니 이 길을 걷기가 더욱 미안하고 고마울 따름입니다.      


드디어 비가 우리를 환영합니다. 우비를 쓰며 걷습니다. 빗소리를 들으며 걷습니다. 우비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도 있고, 나뭇잎에 떨어지는 빗소리도 있습니다. 때로는 나뭇가지가 머금었던 빗물이 바람에 떨어지며 비를 내립니다. 비를 맞으며 조용히 침묵 속에서 걷습니다. 좁은 산길은 저절로 혼자 걷게 만들고, 혼자 걸으며 저절로 침묵하게 됩니다. 침묵 속에 걸으며 자연의 소리를 듣습니다. 빗소리, 바람소리, 새소리, 나뭇잎의 빗물이 떨어지는 소리 등 수많은 소리가 있습니다. 다만 소리에 집중해서 좀 더 다양하고 먼 곳의 소리를 듣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도솔암 역시 안개에 갇혀 아름다운 자태를 감추고 있습니다. 드러낸 모습보다는 감춘 모습이 더욱 아름답습니다. 사람도 자신을 너무 드러내는 사람은 그다지 아름다워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자신을 감추고 살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드러낼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잘 구분하며 좋을 것 같다는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빗줄기가 거세져서 도솔암에서 코스를 변경해서 도솔암 주차장으로 이동했습니다. 굳이 무리하며 위험을 자초할 이유는 없습니다. 길을 걸을 때는 특히 안전이 최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도솔암에서 기사님이신 제9의 길동무 잔나비님을 만나 편하게 이동합니다. 근처 커피숍에 들어가 가위바위보로 화장실을 먼저 사용할 순서를 정합니다. 착한 초등학생 모임 같습니다. 각자 편안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근처의 맛집으로 이동합니다. 갈치조림과 도수가 12도에 달하는 처음 맛 본 해남 막걸리를 먹고 마신 후 꿈속 여행을 마칩니다. 서울 가까이 오며 비는 잦아들다 멈춥니다. 비가 멈추며 꿈속 여행도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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