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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고 Jul 01. 2024

나의 세상은 내가 만든 것이다

인간중심상담의 창시자인 칼 로저스는 우리가 맞이하는 유일한 세계는 현재 지각하고 있는 경험 그대로의 세계라고 했다. 이 말의 의미는 우리가 생각하는 현실 세계는 사람 수만큼 많다는 것이다, 비록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고 있지만, 각자 지각하는 세상이 다르기에 서로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세상살이가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의 말을 들으며 그 사람만큼 살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누군가의 큰 고통이 다른 사람에게는 투정정도로 느껴질 수도 있고, 나의 작은 고통이 다른 사람의 큰 고통보다 훨씬 더 괴로울 수도 있다. 괴로움과 즐거움의 절대적인 기준과 척도는 없다. 다만 우리가 느끼는 주관적인 기준과 척도만 있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인식하는 세상과 삶의 고락 역시 자신만의 세상이고 고락일 뿐이다.      


얼마 전 친구와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연금 얘기를 하게 되었다. 우리는 국민연금 수급자이고 시니어 교통카드를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젊은 사람들이 앞으로 짊어져야 할 연금과 복지비용으로 인해 힘들 것 같아 걱정된다고 얘기를 하자 친구는 언젠가 우리가 죽고 나면 그들에게 좋은 세상이 올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평생 교수로 재직하다 퇴임한 그 친구는 아직도 전세살이를 하고 있다. 이유를 물으니 그냥 관심 갖지 않고 살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또 앞으로 어떻게 되겠지라며 태평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 그의 무심한 마음가짐과 삶을 대하는 태도가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하다. 부러운 것은 내게 그런 무심한 마음이 없어서이고, 안타까운 것은 그의 세상을 나의 시각으로 보았기에 그가 느끼는 상황과는 무관하게 내가 느낀 것이다. 그의 세상과 나의 세상은 결코 같지 않다. 비록 같은 나이에 같은 세상을 살아왔고 살고 있지만, 우리 둘은 이미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 세상은 그냥 하나의 세상일 뿐이다. 하지만,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은 각자 다르고, 그에 따라 세상의 숫자는 그만큼 다양할 수밖에 없다.     


같은 세상을 다르게 느끼는 것은 결국 정신 작용의 결과일 것이다. 따라서 정신 작용의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눈, 코, 입, 귀, 혀, 피부라는 감각 기관이 있고, 이들은 외부의 환경과 접촉하며 의식이 발생한다. 예를 들면 눈은 사물을 본다. 안식(眼識)이 만들어진 것이다. 감각기관이 있어서 외부환경을 통해 의식이 형성된다고 알고 있지만 실은 의식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보겠다는 또는 보고 싶다는 욕구가 있어야 한다. 함께 같은 길을 걸어도 어떤 사람은 광고 간판을 보고, 어떤 사람은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는다. 간판을 본 사람은 그 간판을 보았느냐고 묻지만 상대방은 보지 못했다고 한다. 음악을 들은 사람은 음악에 대해 물어보지만 상대방은 듣지 못했다고 한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각자 다른 공간에 머문 것처럼 인식하는 세상의 모습이 다르다. 감각기관이 외부환경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의지나 욕구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      


외부 자극을 보고, 냄새 맡고, 듣고, 접촉하는 것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감각 기관이 있기에 외부 환경을 보고 느끼는 것일 뿐이다.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된다. 대상을 접촉하고 의식이 형성된 후 느낌이 작용하기 시작한다. 눈이 있기에 사물을 본다. 여기에는 감정이 아직 없는 상태다. 하지만 사물을 본 안식이 형성된 후에는 그 사물에 대한 또는 대상에 대한 좋거나, 나쁘거나, 덤덤하거나 하는 세 가지 느낌이 형성된다. 좋은 것은 취하고 싶고, 나쁜 것은 밀어내고 싶고, 덤덤한 것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취하고 싶은 것을 취하지 못할 때, 또는 밀어내고 싶은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불편함이 올라오기도 하고 분노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때 또한 보거나 느낀 것에 대한 해석과 개념화를 하게 된다. 지각이 형성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해석과 개념화는 이전의 경험과 사고를 바탕으로 하기에 매우 주관적이고 부정확하다. 즉 실재(reality)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자신의 주관적인 기준으로 보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부정확성에 확실성을 부여함으로써 더욱 강화된다. 즉 대상에 대한 잘못된 또는 부정확한 판단이 맞고 정확한 것이 되어 버린다. 같은 상황을 사람마다 다르게 보는 이유다.      


느낌과 지각은 정서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어떻게 반응할까를 결정하는 중요한 순간이다. 이때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무의식이 작용하며 반응하게 된다. 즉 무의식이 우리의 의식을 결정하고, 우리의 대응방식을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무의식이 결정해 버린다. 의식이 무의식과 함께 활동하며 강화된 다른 무의식을 만들어낸다. 어릴 적 꽃 가게에서 근무하며 부모에게 꽃으로 맞아본 사람은 꽃을 싫어할 확률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사람에게 축하한다고 꽃을 던지며 선물한다면 그 사람은 매우 기겁하며 도망갈 것이다. 상대방은 왜 자신의 선물을 거부하느냐며 화를 낼 것이다. 꽃을 싫어하는 사람은 왜 자신이 싫어하는 것을 선물하느냐며 화를 낼 수 있다.     

 

삶의 행복과 불행은 또는 세상을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유는 의식이 우리의 언행과 판단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무의식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경제적으로 힘든 삶을 살면서도 마음 편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사회적 성공과 부귀를 누리면서도 불안감에 시달리며 살아갈 수도 있다. 무엇을 얼마나 이루고 갖고 있느냐가 아니고 어떤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느냐가 행복과 불행을 결정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행복과 불행을 우리 스스로 결정하고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고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각을 바꾸면 된다. 하지만 오랜 기간 습관에 길들여진 우리의 태도와 행동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마음에도 근육이 있다. 긍정적인 근육을 많이 사용하면 긍정적인 마음근육이 형성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사소한 일에도 자주 짜증이 난다면 이는 짜증 마음근육이 평상시에 많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반면 사소한 일에도 웃고 긍정적인 대처를 하는 사람은 미소 마음근육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마음근육을 긍정적으로 발달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감각기관이 외부환경과 접촉 후 발생하는 자극과 반응 사이의 간격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신경과학자 Benjamin Libet는 운동을 담당한 뇌 영역이 활성화된 지 0.25초 후에 의지 자각, 그리고 다시 0.25초가 지나야 움직임이 시작된다고 한다. 외부 자극과 접촉 후 느낌이 발생하기까지 아주 짧은 시간 간격, 0.25초가 있다. 이 간격을 이용해서 자동적 반응이 일어나기 전 빨리 알아차리고 몸에 느끼는 감각에 집중하는 것이다. 반응을 느낌과 지각과 정서반응으로 세부적으로 나누어 설명했지만, 실은 이 세 가지는 거의 동시에 발생한다. 외부 자극을 받을 때 느끼는 몸의 감각이 있다. 예를 들면 나의 경우에 화가 나면 얼굴과 머리에 열감이 느껴진다. 두려우면 가슴이 뛴다. 반응을 잠시 멈추고, 생각과 감정과 욕구를 따라가지 말고, 이때 느끼는 감각에 집중하면 감각은 시간이 지나며 사라지거나 감각의 위치가 변한다. 생각과 감정, 욕구를 계속해서 따라가면 이들의 크기는 점점 더 확장되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이들을 따라가지 않고 그 순간에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하게 되면 이들은 힘을 잃게 된다.      


이런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 긍정적인 또는 무심한 마음근육을 키워나갈 수 있다. 같은 자극에 다른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같은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보는 것과 같다. 같은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이미 같은 세상이 다른 세상이 된 것이다. 지금 바라보는 세상이 무의미하고 우울하다면 그런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밖으로 나가서 걷자. 오감을 활짝 열고 걸으며 매 순간 느껴지는 감각을 느껴보자. 생각과 감정과 욕구를 따라가지 말고, 지금 느끼는 감각에 집중해 보자. 자신 주변의 세상이 비록 변하지 않더라고 세상을 보는 시각의 변화로 세상은 이미 변해있다. 행복과 불행의 결정은 세상이 만든 것이 아니고 나 스스로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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