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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클테디 Aug 09. 2020

폴란드에서 어렵사리 냄비밥을 해봤습니다.

고슬고슬한 쌀밥이 먹고 싶었다.


12월 26일. 여전히 집엔 나 혼자. 크리스마스이브 아침엔 누룽지를 먹고 크리스마스엔 빵을 먹었으니 오늘은 밥을 직접 해서 만들어 먹기로 했다. 압력밥솥이 없는 관계로 냄비밥을 해 먹기로 했다. 사실 냄비밥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폴란드에 오기 전 한국에서 몇 번 시험 삼아 연습했었다. 연습 당시 엄마가 알려준 대로 냄비밥을 하니까 적당히 고슬고슬하고 찰진밥이 돼서 이 정도면 혼자서도 잘할 수 있겠지 막연한 자신감으로 마트에서 현지 쌀을 샀다. 하지만 막상 하려니까 조금은 망설여졌다.


우선 연습한 대로 냄비에 쌀을 넣어 어느 정도 씻고 나서 15분 정도 불릴까 하다가 고슬고슬한 밥을 좋아하기에 7분 정도만 불리기로 했다. 불리는 중에 머릿속으로 냄비밥 하는 법을 시뮬레이션해봤다. 


처음엔 센 불로 몇 분 후 자글자글 할 때 중불로 다음으로 약불로 그리고 냄비 뚜껑으로 닫아서 뜸 들이기




15분이 지나고 눈대중으로 확인하고 나서 가스레인지에 올리고 나서 레시피대로 센 불로 끓이기 시작했다.



 몇 분 후 자글자글 끓기 시작



조금 훠이훠이 저어준 후



잠시 뚜껑을 닫아 뜸을 들였다.


내가 예상했던 그림이 아닌데..?


그러고 나서 뚜껑을 열었다. 뭐야 이거 밥 맞아?


예상과는 다르게 찰진 걸 넘어서 질척 질척해 보였다. 근데 또 한 숟가락 떠먹으니 쌀알이 생동감이 넘치게 씹혔다.


어. 뭐지. 뭐가 잘못된 거지.


응급조치로 물을 넣고 다시 훠이훠이 저었는데 이게 지금 맞는 건지 긴가민가했다. 하지만 어찌어찌하다 보니 모양새는 나쁘지 않았고 가까스로 밥(?)이 완성되었다. 전기밥솥, 압력밥솥 없이 냄비로만 밥을 했다는 것에 스스로 뿌듯해하며 아침상을 차렸다. 밥을 했으니 그에 걸맞은 반찬으로 볶음김치와 인스턴트 미역국으로 든든하게 한 끼 먹었다. 반찬은 볶음김치로도 충분했다. 


며칠 만에 제대로 밥다운 밥을 먹는 것 같아 감격스러웠다. 역시 사람 입맛을 한 번에 바꾸기란 쉽지 않았다. 



역시 한국사람은 밀가루보다는 쌀

첫 냄비밥을 먹으면서 조금 아쉬웠던 건 현지 마트에서 산 쌀이라 한국 쌀처럼 찰지지 않은 점이었다. 


그렇지만 꿩 대신 닭이라 했거늘 쌀밥 자체를 먹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첫 드로잉


어느 때처럼 아침을 먹으면 늘 항상 하는 듯이 이부자리를 정리했다. 하늘이 맑아 환기도 시킬 겸 창문을 활짝 열었다. 방안으로 살며시 들어오는 햇빛, 미세먼지 없는 파란 하늘, 고요한 거리 속 분주한 트램 소리.


느긋하고 여유로웠다.




한국에서 가져온 노트와 책들을 하나씩 들쳐본다. 그러다가 드로잉 연습을 해볼까 해서 드로잉 연습에 필요한 것들을 주섬주섬 꺼냈다.


출국 전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고심하고 고심해서 샀던 드로잉 기본서와 스케치북 그리고 4B, 2B, HB 연필을 꺼냈다. (드로잉 기본서 같은 경우는 워낙 다양해서 나에게 맞는 책을 찾기가 쉽지 않아 초보자라도 쉽게 단계별로 그릴 수 있는 책 위주로 알아봤는데 마침 나의 니즈에 맞는 책을 찾았다. 개인적으로 꽤 괜찮은 책이라 생각한다)


첫 스케치 

책에 나와있는 대로 드로잉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간략하게 드로잉 도구와 재료에 대해서 설명하고 드로잉 준비 운동으로 드로잉 연필 쥐는 법과 선 그리는 연습, 명암 넣는 연습 그리고 대상을 보는 법에 대해 단계별로 알아갔다.


평소에 드로잉에 대해 잘 몰랐지만 처음에 그림을 그릴 때 2차원의 형태를 그린 후 다음으로 3차원의 형태를 그린 후 마지막으로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렇게 조금씩 연습을 하면서 워밍업으로 병아리와 개를 그렸다.


원, 타원, 삼각형, 직사각형 등 2차원인 기본 형태로 병아리와 강아지 뼈대를 그린 후 기본 형태가 정해졌으면 원기둥, 구, 원뿔 등으로 3차원 형체를 만들어 대상에 깊이와 부피를 형성한다. 마지막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선까지 모두 그려서 형체를 완전히 그리고 병아리 같은 경우는 보송보송한 질감을 살짝 더하면 그림이 완성되는 단계


앞서서 여러 선그리는 연습도 하고 명암 넣는 연습도 했지만 굳이 찍지는 않았다.


나에게 있어 첫 드로잉은 마치 미술작품을 관람하는 것과 같았다. 미술관에서 어떤 한 작품에 끌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동안 구경하는 것이라면 드로잉도 집중해서 어떤 한 대상을 계속해서 관찰하면서 스케치 노트에 그려내는 작업이었다. 비록 첫날이라 그린 거라곤 병아리 1마리와 강아지 1마리지만 매일매일 그려나가기로 했다.


한참을 드로잉에 몰두하다가 잠이 쏟아졌다. 시차 적응을 해보려 했지만 3시에서 4시 사이가 제일 피곤했다. 바이오 리듬을 한 번에 바꾸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저녁도 역시 집밥


자고 나니 오후 5시가 넘었다. 슬슬 또 저녁 먹어야 할 시간. 저녁으로는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볶음김치와 먹다 남은 밥으로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먹기로 했다. 보통 때 한국에서도 혼자 해먹을 때도 간단한 요리를 선호하기에 김치볶음밥을 주로 먹었는데 타국에 오니 더욱 김치볶음밥이 먹고 싶었다.


아직 마트에서 계란까지 사 오지 않아서 뭔가가 허전하지만 저녁 또한 집밥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웠다.


김치볶음밥엔 단무지가 어울리지만 내가 찾는 노란 단무지는 폴란드 마트에서 찾아보기 힘드니 피클로 대신하기로 했다.


모든 상점들이 26일까지 쉬어서 의도치 않게 점심을 뺀 나머지 두 끼를 집밥으로 먹었는데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 삼시 세 끼를 챙겨 먹는 일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님을 새삼 다시 느꼈다.  하지만 정말 오랜만에 밥다운 밥을 먹어서 그런지 행복하면서도 엄마의 따뜻한 집밥이 그리워지는 하루였다.



하루의 끝은 언제나 맥주와 넷플릭스로 마무리










12월 26일 죽이 아니라 밥이에요









매거진의 이전글 '나 홀로 집에'는 알고 보니 내 얘기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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