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 Apr 18. 2024

하늘! 너 이리 와 뽀뽀하자

“와, 하늘 좀 봐!! 어쩜 저렇게 예쁠까?!!”


일상이 반짝이는 순간들이 있다. 오후 5시에서 6시 사이 나는 늘 그 순간의 광채를 느낀다. 매일 일어나는 해넘이이지만, 특히 이곳 자카르타에서 보는 노을은 평생 봐오던 해 질 녘 하늘색과는 정말 다른 모습이다. 유달리 더 짙어 보이는 아래쪽 붉은빛이 위로 갈수록 옅어지며 푸른 하늘과 뒤섞여 옅은 보라색 그라데이션을 이루는 그 장관을 보고 있노라면 그날 하루 있었던 모든 일이 그 예쁜 빛깔들과 섞여 힘든 것들은 날아가고 감사함과 겸허함만이 남는다. 며칠 전 한국을 다녀온 직후의 감상이라 그런가 내 반응이 평소보다 더 과했었나 보다. 나의 감탄을 들은 둘째가 씨익 웃더니


“하늘! 너 이리 와~ 뽀뽀하자!”


어쩜… 내 딸이지만 너는 어쩜 표현을 이렇게 할 수가 있니! 저 표현은 정말 딱 우리 딸 그대로다. 그 아이만이 할 수 있는 말. 그 아이의 시그니처. 이 단어와 문장과 표현의 주인은 딱 그 아이뿐. 엄마인 내가 느낄 수 있는 아이가 저 표현에 다 들어가 있다. 세상에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내가 아이를 보는 눈에 그 사랑이 넘쳐났는지, 아이는 나에게 다가와 나를 꼭 안아주고 연신 뽀뽀를 한다. 마치 하늘 대신해 주는 것처럼 말이다. 그때 나는 그 순간을 잡고 싶은 강한 열망에 화소가 좋은 폰 카메라를 찾는데... 오늘따라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보이지 않는다. 얘들아 좀 찾아라!! 아아아 노을 사라지기 전에 찍어야 하는데... 마음만 급하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첫째 놈이 ‘노을이 노을이지 뭐가 다르냐’며 어슬렁어슬렁 내 마음과 전혀 다른 속도로 움직여 온다.



“어.... 진짜 예쁘긴 하네...”


다 놓칠까 다급한 나의 속도와 다르게 느릿느릿 창가로 다가갔던 첫째의 감탄. 순간 느꼈다. 인증샷 찍는 건 실패할지 모르지만 이 장면과 상황은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장기 기억 장치로 넘어가는 기억의 공처럼 아이들과 내 가슴속에 깊이 새겨지고 있음을. 그래서 어떤 장치에 기록을 한다는 게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닐 수도 있음을 말이다. 마흔세 살, 열한 살 일곱 살의 어느 날을 생각할 때, 인도네시아 삶을 생각할 때, 가족을 생각할 때 오늘의 붉은 노을이 같이 떠오르기를, 피식 웃음과 함께. 그렇게 되기를 바라본다. 나의 온몸이 감사함으로 충만해짐을 느끼며 이제는 깜깜해져서 잘 안 보이는 하늘 저 어딘가에 있었을 붉은 자국을 찾으며 아이들에게 소리친다.


”저녁 뭐 먹을래?”

작가의 이전글 나르시스적 사랑에 대처하는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