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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May 12. 2024

건배!

“건배!”



친구 생일잔치에 모인 7살 딸내미들이  동그랗게 자리 잡고, 컵에는 주스를 담아 높이 든 채 다 같이 큰 소리로 외쳤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 전개에 엄마들은 처음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멍하니 쳐다봤다. 그러다 정신을 차린 한 엄마가 전화기 카메라를 급히 켜면서 아이들에게 말했다.

“너희들 방금 그거 다시 해 봐!”

이렇게 재현된 상황. 다시 봐도 어이가 없지만, ‘그래, 7세 너희들 우정 응원한다! 건배! 브라보!!’ 박수를 쳐주었다.





요 맹랑한 여아들 7명이 자카르타 현지 학교에서 만난 한국 7 공주들이다. 외국친구들 사귀라고 보낸 학교에서 부모들 바람이 무색하게 7명이 똘똘 뭉쳐 다니는 중이다. 반도 다르고, 만난 시기도 다 다른 아이들은 가끔 싸우거나, 삐치기도 할 법한데 그들의 의리와 우정은 대단하다. 언제 어디서나 서로 만나면 영혼의 단짝을 만난 듯 환호하고, 헤어질 땐 죽고 못 사는 애인 두고 가듯 애달프다. 그렇다고 이들이 개성이 덜 하고 잘 조화를 이룰 거 같은 캐릭터들 인가하면…. 그건 또 아니다.



“이모”

7 공주 중 한 명이 나에게 다가왔다. 심각하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우리 애랑 싸워서 따지러 온 건가?’ 작은 그녀에게 몸을 수그려 귀를 기울인 나는 다음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이모도 저처럼 다크 서클이 심하네요. 관리 좀 하셔야겠어요.”

헐… 이건 무슨 상황?

“뭐? ㅋㅋㅋㅋㅋ 이모 요즘 피곤하다! 알겠어. 관리 좀 해 볼게.”

옆에 있던 그 엄마 얼굴이 일그러지며 딸에게는 눈빛 레이저를 쏘고, 나에게는 연신 사과를 한다. 할 말은 다 하지만 절대 밉지 않은 오히려 귀여운 7 공주 중 한 명 J.



혼자 매일 홍삼 원액을 두 숟갈 씩 먹으며 건강 관리하는 또 다른 일곱 공주 중 하나 A. 제일 작고, 제일 여리여리하고 제일 말도 없어 엄마의 속을 애타게 하고 있지만, 7명 그녀들 중 최고의 강심장을 가지고 있다. 절대 겉모습에 속으면 안 된다. 언제나 놀이터 가장 높은 곳에 올라 스파이더맨 자세를 취하고 있는 뒷모습은 다 이 친구 거다. 그녀의 뒤를 나머지 공주들이 따르고 있다. 또 다른 공주 C. 남이 하는 일엔 전혀 관심이 없다. 늘 혼자 뭔가에 집중하고 있는 그녀. 그녀의 엄마 또한 공감능력이 없는 거 아니냐며 걱정을 하지만… 혼자 뭘 하면서도 항상 여섯 공주의 무리 곁에서 하고 있는 걸로 봐서 그녀는 혼자가 아닌 다른 친구들과 함께!이다. 아이들 역시 자리를 이동할 때마다 그녀를 챙겨 데려간다. 옮겨가도 그녀는 또 친구들 근처에서 혼자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는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만 말이다.



“언니! 딸내미 입단속 좀 시켜야겠더라”

우리 집 공주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이미 알고 있는 아이의 사생활패턴이지만 이번엔 무슨 말을 한 걸까 궁금하다. 우리 집 그녀는 말이 정~~~~~~말 많다. 일곱 공주들 중 최고봉이 아닐까 싶다. 말이 많으려면 대부분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할 말 안 할 말을 다 해야 한다. 그래야만 빈 시간 없이 그 수다를 채울 수 있다. 학교 선생님이나 친구 엄마들을 만나면 ‘우리 아빠가 매일 아침마다 화장실에서 토한다(실은 이 닦는 중), 아빠가 변기 속으로 손을 집어넣는다(변기가 막혀서 뚫어 뻥으로 뚫는 중), 오빠가 나를 눕혀 놓고 머리를 밟는다(자기도 같이 발로 오빠 밟는 중)’ 등 앞뒤 문맥을 모르고 들으면 헉!! 할 소리를 정말 많이 한다. 이미 4세 때, 어린이집 들어가는 현관에 계신 선생님을 만나자마자 심지어 내가 뒤에 있는데도 ‘아침에 오면서 우리 엄마가 나를 혼내서 속상하다’고 말하는 걸 보며 ‘아… 앞으로 집안의 비밀은 없겠다’ 했었더랬다.



이렇게 달라도 너무 다르고, 개성도 무지막지하게 강력한 일곱 명의 그녀들이 한 데 뭉쳐 다니는 것은 정말 미스터리라고 엄마들은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런 그녀들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대견한 마음이 드는 것은 감출 수 없다. 모두 부모의 파견직으로 얼결에 따라오게 된 아이들. 본인이 원해서 온 외국행이 아니기에 어린 나이에 타국에서 적응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정말 애처롭기까지 하다. 아직 모국어도 익숙하지 않은데 갑작스럽게 온 남의 나라에서는 영어와 인도네시아어까지 익혀야 하는 아이들. 하루의 절반을 그렇게 보내야 하는 학교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고 어떤 어려움을 겪고 얼마나 답답함을 느끼는지 엄마들은 다 알 수 없다. 그 속에서 같은 언어를 쓰는, 같은 나라 출신 친구들과의 시간이 얼마나 단비같이 느껴질까. 어쩌면 그녀들에게 이 우정은 단순한 놀이가 아닌 절박함일지도 모른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면, 부모로서 미안해지기까지 한다.


그래! 7 공주 너희 우정 정말 응원한다. 까짓 영어! 학교 밖에서라도 스트레스 없이 편하게 지내. 너희들 우정을 위해 엄마들도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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