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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식 Feb 23. 2024

아름답고 무용한 시간

오랜만에 점식이가 나보다 일찍 일어났다. 얼마나 일찍이었는지 나를 깨웠는지 잠결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엄마 지금 드림렌즈 뺄래.’ 하는 아이한테 5분만 기다려줘 하고는 20분 후에 일어났다. 늘 옆에서 채근하는 나보다 아이는 더 인내심이 많다.

 

오래 좋아해 온 북카페가 이번주까지만 영업을 하고 문을 닫는다. 갑작스럽게 일주일 안으로 영업을 종료하고 이달 말까지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아이를 데리고 오늘 가기로 했는데 밤새 쏟아진 눈으로 도로 상황이 나쁜지 연신 안전 안내 문자가 쏟아진다. 같이 가기로 한 친구와 어떻게 할까 얘기하다가 그냥 출발하기로 했다. 오늘이 아니면 갈 시간이 없을 거 같은데 마지막 방문을 하지 않으면 너무 아쉬울 터였다. 

아침으로 딸기, 블루베리, 바나나와 요거트, 군고구마와 삶은 달걀을 조금씩 먹었다. 설거지는 하지 못하고 음식물쓰레기만 정리해서 들고 나왔다.


집 앞에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산 위에, 차도 양쪽으로 늘어선 오래된 나무들 위에, 생크림 토핑 같은 하얀 눈이 가득 올려져 디즈니 크리스마스 만화 속에 서있는 듯했다. 차가운 생크림이 흩날리는 거대한 웅덩이 같아진 길을 질퍽질퍽 걸었다. 아이는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소리를 냈다. 감탄사 혹은 탄성 그도 아니면 청유하는 소리말들. 손을 잡았다가 뺐다가 앞서 걸었다가 뒤쳐져 걸었다가 지하철역까지 가는 길에 있는 놀이터 두 군데에 모두 들러 야도를 하고 친구가 없는지 두리번거리는 바쁜 아이를 잘 챙겨 잃어버리지 않는 데 성공하고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 안에서 창문 너머로 보면 늘 걷던 길도, 방금 나온 내가 사는 집도, 그저 목적지를 가기 위해 지나갈 뿐인 여행자처럼 새롭게 보인다. 눈 덮인 나의 오래된 마을이 오늘은 더 고즈넉하여 알지 못하는 시골마을 같이 느껴졌다.


대학로까지 가는 이십여 분 동안 친구와 내 아이와 나는 나란히 앉아 진지하게 점심 메뉴를 선정하고 혜화역에 내려 조금의 망설임이나 지체도 없이 닭볶음탕 식당으로 향했다. 지붕에 쌓인 눈의 무게로 가게 문틀이 눌려서 문이 잘 열리지 않았다. 당면사리를 넣은 얼큰 닭볶음탕을 신나게 먹었다. 아이가 매운 음식을 잘 못 먹어서 안 매운맛으로 주문했는데도 제법 매콤했다. 마시느라 매운 양념을 씻느라 물 한 통을 비우고 식사를 맛있게 마쳤다. 


커다란 횡단보도를 건너 맥도날드 건물을 지나 공연장 사이사이의 편의점과 문구점을 지나면 간판도 안내도 없어 초행길에는 찾아내기 어려운, 내가 좋아하는 북카페가 땅보다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계단이 미끄러울까 발끝에 힘을 주고 조심히 내려갔다. 영업종료 안내문과 이미 정리가 시작된 듯 텅 빈 책장들을 보니 마음이 더없이 서운했다. 


아이가 어린이과학관에서 수업을 할 때면 나는 늘 이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서가에 머물며 계절마다 바뀌는 이 북카페의 큐레이션을 하나하나 음미했다. A4 한 장에 빼곡히 큐레이션 주제를 설명한 안내문도, 책마다 붙어 있는 작은 소개글들도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없었다. 건강상의 이유로 우유가 든 커피를 멀리할 때에도 이곳에는 다른 곳에서 맛보기 어려운 훌륭한 오트 플랫화이트가 있었다. 


반 이상 비워져 있는 책장을 보다가 책 한 권을 골랐다. 집에 읽어야 하는 책들이 쌓여 있어서 당분간 새 책을 사지 않기로 했지만 오늘만은 예외였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친구와 마주 앉았다. 아이는 서가의 의자에 앉아 주황색 표지의 타이포그래피가 독특한 ‘신묘한 우리멋’이라는 책을 읽고 있었다. 이곳에서의 마지막이 될 시간을 보내고 커피잔을 되돌려주며 이전할 곳이 정해졌는지 물었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동안 감사했다고 인사를 전하고 이전할 장소가 정해지면 소셜미디어계정으로 안내해 달라고 말씀드렸다. 기념으로 ‘무용하고 아름다운 시간’이라고 쓰여있는 동그란 종이 컵받침을  받아왔다. 


무용한 것을 좋아한다. ‘예쁜 쓰레기’라고 불리우는 그저 아름답기만 하고 무용한 것들에 마음이 끌린다. 반드시 쓰임이 있어야 존재하는 것은 아니니까. 우리에겐 그저 아름답기만 한 것들로부터 위로를 받는 시간이 분명히 존재하지 않나.


이 곳에서의 무용했던 시간이 나에겐 분명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공백이 너무 길지 않기를.

무용한 시간이 유용한 사람들에게 다음 계절이 오기 전에 아름답게 찾아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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