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풍요 Mar 21. 2023

풍요하리의 바느질 도감 - 48

가을을 담은 고양이 패치워크 파우치

  새싹이 움트는 봄을 지나 내리쬐는 강렬한 햇빛과 더위에 지칠 때쯤 선물처럼 찾아오는 계절이 있다. 바로 '가을'이다. 어렸을 적에는 괜히 가을만 되면 쓸쓸한 기분이 들어 고독의 계절이라고 하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강렬했던 여름이라는 계절을 지나 길고 긴 겨울이 찾아오기 직전이니, 왠지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짧디 짧은 가을은 낙엽도 울긋불긋 아름답고 바람마저 향긋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인지 가을이라는 계절은 자꾸만 붙잡고 싶어진다. 가을만 되면 유독 그림을 그리고 바느질을 하고 싶은 이유도 그러한 것 같다. 이 계절 색을 많이 표현하고 즐기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언니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 해 가을 유난히 가을빛 담은 작품들을 많이 만들었다. 이번에 소개할 [고양이 패치워크 지갑 겸 파우치]도 그런 연유로 만들어졌다. 단풍나무를 닮아 가을을 그대로 머금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말이다. 이 파우치의 원형은 풍요하리의 바느질 도감 16화에서 등장했다. 겨울 느낌이 물씬 나는 플란넬 원단으로 제작한 파우치였다. 황금 비율이라고 소개한 그 파우치를 그대로 옮겨서 소재를 달리하여 제작했다.

  같은 디자인으로 제작하면 조금 더 쉽게 만들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지만, 사실은 그 정반대이다. 오히려 생각이 예전 디자인에 갇히기가 쉬워서 새로운 것들을 끄집어내는 것이 어렵게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언니는 애초에 어떤 톤으로 작품을 만들지 구상하고 디자인을 선별한 것 같다.


  뒷면에 사용된 원단을 자세히 들여가 보면 가을 단풍이 무성한 숲에 아직 떨어지지 않은 빛바랜 나뭇잎들이 듬성듬성 남아있는 것 같다. 머지않아 지상으로 떨어져 다시금 새 생명을 돋우기 위한 비료로 쓰일 테지만, 지금 그 자체만으로도 찬란한 모습이다. 순간의 아름다움을 포착한 원단을 어디서 구한 건지 적절하게 사용하였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빛에 반사되는 작은 비즈들이 눈에 보이는데 이 비즈들은 길가에서 마주한 남천의 열매를 닮았다. 참고로 언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매일 마주치는 '남천 나무'는 가을 즈음에 아주 예쁜 빨간 열매를 맺는다. 그리고 겨울까지 이파리를 떨구지 않고 유지하는 멋진 식물이다.



  빈티지한 이 파우치를 위해 가죽 손잡이를 만들어 달아 주었다. 동대문 시장으로 파우치를 들고나가 가죽끈을 대보면서 행복감을 느꼈다. 우선 파우치가 마음에 드는 가을 빛깔로 완성되었고 가죽끈을 달아주니 정말 완성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파우치는 다다익선인 품목이라 기분에 따라 다양하게 들고 다닐 수 있어서 좋다. 이 소품도 사시사철 들고 다니지는 않겠지만 가을이 그리울 때나 이때의 추억이 떠오르면 언제든지 꺼내 들고 싶다. 내 손 안의 작은 가을을 다시금 느끼고 싶을 때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풍요하리의 바느질 도감 - 4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