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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요 Aug 17. 2023

'투고는 왜 안 해?'라는 질문

두려워서 일 겁니다.....(꿀꺽)

  독립출판으로 책을 만들어서 가까운 지인들에게 선보이면 많은 격려의 말과 응원을 듣게 된다. 내가 누군지 아는 이들에게 내 생각과 가치관까지 담겨 있을지 모를 글, 그림을 선보이는 것은 꽤나 긴장되는 일이다. 특히 나와 가깝지 않던 지인이 나에 관해 몰랐던 부분들을 알게 되었다고 했을 때는 식은땀이 나는 것 같다. 글 속에 담긴 내 모습은 편집돼 있기도 하고 심지어 보여주고 싶지 않은 부족한 모습도 담겨 있다.

  에세이를 선보였던 초반에는 이런 부분들이 두렵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내가 쓴 글에 대한 책임이라고 생각하면서 의견들을 수용하고 나니 조금씩 편안해짐을 느꼈다. 글을 썼고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해 책으로 만들었으니 이런 반응들은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그다음으로 많이 듣는 질문은 '투고'에 관한 이야기이다. ISBN(국제표준도서번호)까지 부여받은 책을 보며 왜 투고하지 않았냐는 질문을 받으면 더욱 당황한다. 처음 들었을 때는 '어, 그러게.'라는 생각이 들어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그 뒤로 종종 같은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왜 독립출판을 하는가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다.



  첫 번째 그림책 [쥐··· 좋아하세요?]는 언니와 낙서를 하면서 놀다가 만든 책이다. 한 달 만에 빠르게 제작했고 그림도 디자인도 간결하다. 무식할수록 용감하다고 했던가 누군가의 시선은 생각하지 않고 만든 책인 만큼 자유롭게 작업했다.

  이때 들었던 '투고'에 관한 생각은 '이 책은 투고에 적합하지 않다'로 귀결되었다. 기성 출판과는 거리가 한참 있어 보였기에 내가 만드는 것이 합당하다고 여겼다.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내 손으로 책 한 권을 만들어서 유통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 책은 내게 독립출판의 첫 경험을 안겨준 감사한 책이다. (아직까지도 독립출판 유통 업체를 통해 근근이 판매가 되는 것을 보면 또 신기하다)


  두 번째 책은 에세이 [그림 위를 걷는 고양이처럼 산다]였다. 브런치 공모전을 위해 한 달간 글을 썼고 그 글들을 엮어 만든 책이다. 이때는 지인의 권유로 출판사 한 곳에 투고를 해보았다. 중요한 건 정말 딱 한 곳에만 투고를 해봤다는 거다.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투고였다. 결과는 당연스럽게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혼자서 지지고 볶고 모든 것을 다 하다 보면 이유 모를 근자감이 필요할 때가 많은데, 그때는 근자감이 많이 부족한 시기였다. 투고가 꺼려진다는 이유를 내 부족함에서만 찾았고 나는 아직 미완된 작가이기 때문에 투고는 맞지 않다고 판단했다. 기성 작가임에도 투고로 책을 내려면 적어도 50군데 출판사의 문을 두드려야 한다는 지인의 말은 한참 나중에야 듣게 되었다. 이를 통해 나는 '투고에 진심이 아니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그 뒤로 오랜 시간을 두고 '나는 왜 독립출판을 하는가'에 관하여 깊이 생각을 해보았다. 처음에는 실력이 부족한 이유 때문에 내 책을 내가 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독립출판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두 권의 책을 더 만들었지만, 뿌리 깊은 이 믿음은 좀처럼 변하지 않고 더 깊숙히 자리를 잡아가는 듯했다. 몇 권을 더 만들고 실력을 더 쌓아야 나는 진짜 책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것일까 고민하던 찰나 사람들과 독립출판을 함께하는 수업을 시작했다.


  한 명도 모이지 않을 것 같았던 그림책 독립출판 수업에 여러 인원이 모였고 그들과 함께 책을 만들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이제는 '독립출판을 왜 하는가'에 대한 내 생각을 확실히 해야만 했다. 단순히 당신의 책은 투고에 적합하지 않다, 실력이 부족한 아마추어의 작품이다라고 논하기에는 그 기준점이라는 것이 애매했다.


누구의 기준점일까.

잘 그린 그림이 그려진 책이 좋은 책일까.

이미 검증된 작가가 쓴 글만이 좋은 책일까.


  이런 생각대로라면 무수히 출간되는 많은 독립출판물들은 의미 없는 하나의 몸짓이 돼버릴 거였다. 의미 없는 일들을 왜 그 많은 사람들이 실행하고 있을까, 수많은 생각들을 통해 내린 결론은 '남 눈치 보지 말자.'였다.

  남과 조금 다르더라도 스스로 만들어가는 삶을 살기 위해 지금처럼 살고 있는 내가 기성의 틀에 나를 맞출 필요는 없었다. 책만큼은 내가 만들고 싶은 대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리고 이 투쟁의 경험 끝에 독립출판의 이유를 찾게 된 것이다.


그냥 만들자. 남 눈치 보지 말고.



  세 번째 책인 그림책 [꼬치의 꽃이 피는 날]은 사실 남의 눈치를 조금 보고 만들었다. 그 대신 표지는 내가 만들고 싶은 대로 그렸다. 책의 판형도 마찬가지다. 더 나아가 어린이들도 안전하게 책을 볼 수 있도록 KC마크를 받은 인증된 인쇄소를 선택했다. 세 번째 책이지만 여전히 아쉽고 보완할 부분이 많다고 느낌에도 온전히 내가 겪고 어려움을 이겨내 만든 책이기 때문에 그 경험들은 온전히 내 것이 되었다. 다음에 만들면 조금 더 내 의도를 표현할 수 있는 책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책'이라는 것은 어찌 보면 자신의 생각과 신념, 지식에 가까운 영역이지만, 간단한 모양의 물리적인 형태를 띠고 있는 창작물이다. 그래서 누구나 만들고 싶고 누구나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툴고 부족한 부분이 많겠지만 그 부분마저 내가 포용하고 내 손 안에서 일을 끝마치는 과정은 큰 선물 꾸러미를 예쁘게 포장해서 내 자신에게 선물하는 것과 같다.


이제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투고 왜 안 하세요?'라고 물으신다면

'제 맘대로 책을 만들고 싶어서요.'라고 말이다.

(투고가 자신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제 속마음에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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