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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황돼지 Jun 02. 2024

정치 시각에서 본 민희진과 강형욱

- 같지만 다른 선택

민희진과 하이브

 정치관점에서 자본가는 보수, 노동자는 진보에 위치한다. 하이브가 보수이며 민희진이 진보인 셈이다. 지난 기자회견에서 민희진은 '사장에게 억압받는 월급쟁이' 이미지를 획득하여 노동자의 지지를 받았다. '개저씨'라는 유행어는 세대갈등의 감성도 보여주었다. (일반적으로 기성세대는 보수이며 청년층이 진보다.) 민희진은 여성이다. 이 또한 젠더갈등 측면에서 남성이 보수이며 여성이 진보다. 따라서 민희진을 100% 지지하려면 노동자, 청년, 여성을 선택해야 한다.


 100% 진보와 보수는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존재하는 이유는 양보할 수 없는 우선순위가 있기 때문이다. 극렬 반공주의는 저소득 동생애자 흑인이 보수 정당을 찍는 것을 가능케 한다. 다시 말해 여성을 혐오하는 청년 노동자는 하이브를 지지할 공산이 크다. 결론은 정해졌고 그에 맞는 증거를 수집한다. 전형적인 확증편향이다. 물론 역방향도 가능하다. 대기업의 갑질에 신물이난 중소기업 60세 남성은 민희진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어떠한 이유로 하이브의 편을 든다면 노동자, 청년, 여성에 관한 부정적 정보에 눈이 간다. 이기심 가득한 노조, 무개념 사회초년생, 일 안 하고 수다만 떠는 여직원. 이솝우화 <여우와 신포도>는 인지부조화 이론을 설명하는 좋은 예시다. 여우가 높은 곳에 있는 포도를 따먹으려 점프를 했지만 닿지 않았는데, "저 포도는 너무나 시어서 어차피 못 먹는 포도야!"라면서 돌아섰다는 이야기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선택을 만족시키는 증거에 끌린다. 일종의 방어기제로써 민희진을 선택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욕만 채우는 경영진, 꼰대 상사, 여성의 취약한 사회 입지 등의 이슈에 집중한다.


민희진(좌), 강형욱(우)


강형욱과 사원들

 민희진과 강형욱을 같이 다루는 이유는 유사한 정치 성향을 지닌 채 다른 선택을 하는 현상이 흥미롭기 때문이다. <민희진/강형욱>을 지지하는 쪽을 주목했다. 강형욱은 자본가이며 남성이다. 강형욱을 선택한 사람들은 사업의 고충 그리고 통제에 따르지 않고 불평불만이 가득한 직원을 떠올린다. 때마침 직원은 여성이다. (기사를 읽어보면 남성 직원도 있으나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밑줄 친 부분을 주목해 보자. 하이브에서 바라본 민희진과 닮아있다.


 강형욱을 옹호하는 의견을 하이브 입장에 적용시키면 얼추 맞는다. 민희진의 주장도 강형욱의 사원들과 유사한 면이 있다. 정치 시각에서 보면 <하이브/강형욱>, <민희진/사원들>로 묶이는 편이 자연스럽다. 두 논란이 가중되는 이유 중 하나가 정치 관성을 무시한 선택이 많아서일까? 어쨌든 우리나라 국민의 보편적인 가치판단은 정치보단 다양해 보인다.




 기사가 많아서 피로감이 있지만 연이어 터진 두 논쟁에서 배운 것이 많았다. 그리고 한 가지에 매몰된 정치이념의 위험성도 깨달았다. 자본가를 지켜야 한다는 신념에 몰두하면 <하이브/강형욱>을 선택하게 되고, 언제나 약자가 옳다고 맹신하면 <민희진/사원들> 편에 서게 된다. 대중적인 논쟁은 시민의식을 성장시키지만 양극화를 부추기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하이브/사원들> 편도 배제하지 않는다. 도박이라면 이쪽이 끌린다. 그들의 주장도 설득력이 있고 악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심리학이 발전하며 가치판단의 모순점을 증명해내고 있지만 현대인은 역행하고 있는 듯하다. 혐오와 숭배는 항상 20~30% 과장되기 마련이다. 우리 편은 덜 착하고 상대편은 덜 나쁘다는 점을 인정하면 좋겠다. 거기서부터 시작해도 찬반은 바뀌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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