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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황돼지 Jul 02. 2024

책을 읽을수록 커지는 우울감

- 독서의 단점

 독서를 시작한 지 1년 6개월이 넘었다. 지인에게는 교양도 쌓아볼 겸 심심풀이라고 말했지만 목적이 있었다. 책을 읽으면 늪 속에 빠진 인생 열차를 철로 위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인터넷 성공담이 시작이었다. 검정고시 출신이라는 열등감도 꿈틀댔다.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의 추천 독서 목록을 받아 적었다. 즐겁지 않은 독서였다. 어떤 책은 무엇을 읽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도 불평하지 않았다.


 스스로 집어든 책 중에는 만족스러운 결과도 있었다. 우울감을 자극한 책은 소위 말하는 '있어 보이는 책'이었다. 그런 책을 읽고 나면 서평을 찾아보곤 했다. 끝까지 읽었는데도 이해가 안 갔기 때문이다. --라는 말은 가식이고, 솔직히 말하자면 매력 없어 보이는 연예인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제발 이 책이 쓰레기라는 증거를 보여줘!" 대다수의 서평들은 나의 기대를 저버렸다. 그들의 글은 같은 책을 읽은 게 맞나 싶을 정도로 훌륭했다.


 뇌과학 책과 자기 계발서를 읽고 나서 공부방법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부터라도 적용하자며 반성했다. 하지만 끝나버린 시험 결과는 되돌릴 수 없었다. 자식이 군대 갈 나이가 되어서야 '최고의 육아법'을 터득한 꼴이었다. 다른 부모에게 도움을 주거나 미래의 손주에게 적용시킬 수는 있겠지만 커버린 자식이 작아지진 않는다. 책을 읽을수록 그러한 지식이 많아졌다.


 공황장애에 관한 책을 읽으며 나의 병증을 객관화할 수 있었다. 사회과학 책을 통해서 인간은 생각보다 더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했고 철학책을 읽고 나니 스스로의 모난 부분이 드러났다. 과거의 나는 어째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그것이 어째서 잘못된 선택이었는지 따위가 선명해졌다. 유년시절의 나는 공황장애에 걸릴 수밖에 없는 기질을 갖고 있었고, 극복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개입된 구원의 손길은 회피형 인간의 전형적인 스토리였다. 공황장애가 합리적인 결과였다는 추론은 우울감을 북돋았다.


 독서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준다는 말은 거짓이다.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독서를 시작하라는 말이 와전된 것이다. 요즘 보면 마케팅의 일환으로 독서를 미화하는 문구가 많다. 책을 읽지 않으면 불행해진다든지, 책을 읽었더니 수십 억이 생겼다든지 그런다. 독서가 수단이 될 수는 있겠지만 정답은 아니다. "책만 읽으면 된다."는 말을 맹신하면 실패의 증거만 쌓일 뿐이다.


 독서는 판도라의 상자와 닮았다. 책을 안 읽어도 행복한 사람은 많으며 불행한 다독가도 많다. 마음의 양식도 잘못 먹으면 배탈 나고 편식하면 아픈 법이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라는 말이 옳다고 믿는다면 입장하는 것이고, 굶주림의 공포가 두렵다면 퇴장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독서를 추천하는 이유는 우리 대다수가 배고픈 돼지로 태어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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