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쏘쏘 Jul 07. 2019

문자 한 통에 갑자기 유럽

스물여덟에 갑자기 유럽 1편 - 결심하다

2019.06.21-2019.06.26


1

문자 한 통에 갑자기 유럽


'대한항공 마일리지 일부가 소멸될 예정이오니...'
스물여덟 여름, 문자 한 통이 배달되었다. 예상치 못하게도 대한항공으로부터 말이다. 물론 비행기와 멀리 살아온 백수인 나 말고, 내 아버지께 온 문자였다. 9만 마일 중 1만 마일의 마일리지가 올해 소멸될 예정이라고 안내했다. '비행기알못(비행기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 마일리지가 도대체 뭔지는 모르겠으나 9만 마일이면 미국도 거뜬히 다녀올 수 있다고 아버지가 말했다.

유럽 한번 다녀올래?


툭 건내신 아버지의 한 마디.
'응? 갑자기 분위기 유럽?'





2
뭐하냐, 너 답지 않게


문자가 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하던 일을 쉬고 백수가 된지 2개월 차, 스물여덟번째 여름을 '구글이 선정한 100대 도서'로 덧칠하고 있었다. 우연히 책 속에 나와 닮은 이야기를 만나,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아온 꼴보기 싫은 내 모습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을 때 느껴지는 짜릿한 쾌감이 좋다. 여느 때처럼 집 앞 yes24 중고서점에 출근도장을 찍고 알랭 드 보통의 <우리는 사랑일까>를 집었다.


연애 초기의 그 미친 설렘을 타고 노는 런던의 풋풋한 커플 이야기를 쭉 따라가다 연애감정에 젖어버린 걸까. 유럽의 작은 마을로 떠난 여행 에피소드가 나오는 파트를 넘어갈 때쯤 내 목소리가 울렸다.
'이렇게 예쁘고 아기자기한 유럽 마을에 가고 싶다.'

사실 아버지가 제안한 그 순간부터 매일 유럽에 가고 싶었다. 그런데 가겠다는 말이 안나왔다. 오히려 머리는 가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아댔고 완패당한 가슴은 유럽을 포기하기 직전이었다. 그런데 알랭 드 보통이 가슴에게 홍삼을 맥인거다.


'왜 안 갈 이유를 먼저 찾았어?'
마음에게 물었다.
'내가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누가 듣지 않기를 바라며 마음이 조용히 대답한다.

스무살엔 스물여덟쯤 되면 최소 정신적으로는 독립한 한 명의 어른이 되어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더 헤맨다. 늘어난 건 현실인식과 좌절감뿐, 유일한 자산인 스무살의 패기까지 잃어버린 난 더 막막하고 더 답답할 뿐이었다. 백수가 되며 심하게 위축된 스물여덟의 내가 마음의 심연에서 고개를 숙인 채 무릎을 끌어안고 있었다.


'뭐하냐. 너 답지 않게.'
위풍당당한 스물의 내가 시원하게 웃는다. 좌절의 늪에 묻힌 스물여덟의 내게 손을 내민다. 온통 나에게만 쏠려있던 모난 시선이 세상을 향했다. 꽉 죄여있던 숨통이 2개월만에 트였다.




3

쇼핑과 여행은 지르는게 제 맛


그 시기 만난지 세달 된 귀여운 내 남자친구는 우연히도 이미 아버지와 유럽여행 중이었다. 두 남자는 터키, 그리스를 지나 이탈리아에서 유럽 한달 여행의 중반을 보내고 있었다. 내 아버지가 유럽여행을 제안했다는 사실을 듣자마자 그 애는 다 차려놓은 밥상이니 몸만 챙겨 어서 넘어오라고 연신 카카오 보이스톡을 걸어왔다. 일주일째 예상치 못한 내 뜨뜻미지근한 반응에 그 애가 점점 기대를 접어가던 때였다.

진짜? 온다고? 대박.


폰에서 흘러넘치는 높아진 데시벨이 토끼 눈이 된 그 애를 떠올리게 했다.
"그러게. 대박이지."
그동안 선뜻 기대에 응하지 못해 체한 채로 머물러있던 미안함이 소화되었는지 미소가 트름이 되어 올라왔다.
"다음 여행지가 어디야?"
"오늘 바르셀로나로 넘어가. 7월 1일에 파리로 갈거고."
그 애와 그 애 아버지는 한달 여행의 마지막을 7월 5일 파리에서 마칠 예정이었다.

'첫 여행지는 스페인, 너로 정했다.'
콜롬버스라도 된 마냥 비장한 눈으로 컴퓨터를 켰다. 좌절모드의 스물여덟살이 또 목청 높이기 전에 빼도박도 못하게 만드려면 항공편을 당장 예약해야 한다. 자고로 쇼핑과 여행은 지르는게 제 맛이다. 이제 출국까지 남은 건 이틀. 서둘러 인생 첫 배낭여행을 준비해야 했다. 6월 27일 초여름 태양 아래, 서울 한 아파트 작은 방에서 총기어린 두 눈이 타오르며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도움이 될진 모르겠으나 유럽여행 상담이 열려있습니다.
(카톡 ID : one1wave )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