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있던 맨하탄의 네일샵에서 일하시던 분들은 대부분 30대 중반에서 40대 초중반 분들이었어. 제니, 샐리, 에이미 이런 영어 이름들을 쓰고 계신 언니들이었는데, 각자의 사연들을 가지고 뉴욕에 오신 분들이었지. 손님들이 몰리는 시간이 지나면 가게 앞 과일 노점에서 과일을 사서 야무지게 깎아주시던 생각이 난다. 좋은 언니들...살면서 자몽을 제일 많이 먹은게 그 때야. 과일도 많이 먹으면 살찐다...
당시 이 언니들은 한국돈으로 팁 포함 월 500만원 내외로 버셨던 것 같아. 언니들 말씀으론 뉴욕은 나이든 (한국)남자들이 밥벌어먹고 살 일이 별로 없대. 그래서 집안의 가장들이나 마찬가지였지. 그래서 남편분들은 네일샵에서 쓰는 자재들 딜리버리하거나.. 뭐 관련된 자잘한 일들 하시는 분들이 많았어.
거기 계신 분들은 대부분 영주권이 있냐 시민권이 있냐가 중요했어. 그때문에 엉뚱한 남자와 결혼하고 이혼한 분도 계셨고, 또 반대로 결혼했다가 남자가 영주권 취득한 순간 떠나가서 싱글맘이 된 분도 계셨지. 왜 그렇게들 어렵게 미국에서 자리잡고 버텨야 하는 건지는 모르겠어. 각자의 사연이 있겠지만, 다들 하도 영주권 시민권에 목숨 거니까 나도 괜히 취득하고 싶어지기도 하대 ㅎㅎㅎ
우스개 소리로 뉴욕에 있는 한국 여자는 다 이대 출신, 한국 남자는 다 서울대 출신이라는 말이 있었어. 진짜로 그런지 확인되진 않지만, 20여년 전인데 그렇게 가족들이랑 다 같이 미국으로 건너갈 결심을 할 정도였다면 보통 용기있는 사람들은 아니었을 거야. 그치?
다들 알다시피 뉴욕의 물가는 엄청나게 비싸. 그래서 저 정도의 급여를 받아도 사실 아주 넉넉한 형편들은 아니었던 것 같아. 우리 나라 국민임대주택 들어가려면 연 수입이 얼마 이상이면 안 되는 그런 거 있잖아? 뉴욕도 그런게 있는데 최근 듣기론 그 연 수입이 1.3억 정도 된다고 들었던 거 같아.
그래서, 관광객으로 놀러가거나 넉넉한 유학생 신분으로 가는 뉴욕과 없는 형편에 버텨내야 하는 뉴욕은 전혀 다른 팍팍한 도시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 그리고 너무 럭셔리하고 화려한 볼거리가 많다보니까 상대적으로 나의 가난이 더 부각되는 부분이 있더라고.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친구 말론 미국은 다른 물가는 다 올려도 수퍼에서 파는 기본 식빵, 계란, 우유 가격만큼은 최저 수준을 유지시킨대. 저소득층이 굶어 죽진 않아야 하니까 그렇다나.
나도 뉴욕에 있는 동안에는 저 식빵, 계란, 우유 많이 먹은 거 같아 ㅎㅎ 확실한 건 과일은 한국보다 싸다 지금도.
여튼 그렇게 1년가까이 버티다가 한국에 돌아올 때 나는 결심했어. 다음에 뉴욕에 돌아올 때에는 저얼대 가난한 상태로 돌아오지 않겠다. 내 주머니에 거기서 살면서 모은 돈 2000불 정도를 넣고 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