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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행성 Sep 20. 2024

두 번째 귀인

지금 생각해보니 파티에서 만났던 그 예쁜 언니야말로 나한테 귀인이었네. 첫번째 두번째 귀인을 그 언니 덕에 만난셈. 이후에 그 언니가 불러준 다른 자리에서 두번째 귀인을 만났거든. 사람 인연 재미있지?


그 분은 뉴욕에서 공부하시고 강남에 꽤 큰 디자인 회사를 하고 계셨어. 형제 세 분이 같이 일 하고 계셨는데, 이 분은 인테리어와 그래픽 디자인, 형제 중 한 분은 사진, 또 한 분은 건축을 전공하셨대.


이 분 아버님은 우리나라의 1세대 서양화가셨어. 아직 박수근 화가만큼 많이 알려지시진 않았지만 못지않게 작품에 깊이가 있고 좋은 작가셨지. 그리고 어머님은 그 옛날 (무려) 1970-80년대에 뉴욕에 진출하셔서 부띠크를 차리셨던 분이셨대.

대단하심.


그즈음 나는 미대를 전공하고 얼마 되지 않아 고민에 빠져있었어. 미대 졸업 전에는, 좋은 학교 다닌답시고 어깨에 뽕이 잔뜩 들어가 있었는데. 졸업하고나니 아무도 나를 작가로서 안 찾는 거야.


당황스러웠지. 미대를 졸업하고나면 바로 미술작가로 데뷔하는줄 알았거든. 졸업전시 하고나니 그냥 공식 백수가 되더라.

물론 부지런히 알바는 하고 있었어. 하지만 미술작가려면 어디 갤러리에서 나를 불러줘서 전시를 해야할 거 아니야? 근데 나같은 신진 작가는 기회가 없었어. 더군다나 내가 막 대학을 졸업했을 땐 미술 시장이 한겨울이었거든.

갑자기 공식 백수가 된 건 나뿐이 아니었어. 같이 졸업한 친구들 다 사정은 비슷했어. 미술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모교 대학원을 가서 또 학생 신분을 연장하거나, 외국으로 유학을 가거나 아니면 미술학원 강사로 자리잡거나. 뭐 별로 선택지가 없더라.

난 사실 미국으로 유학가고싶었어. 친한 친구들이 나 빼곤 다 유학을 떠났거든. 너무 슬펐어.

초등학생 때부터 늘 장래희망란에 '화가'라고 썼었는데. 내 앞날이 완전히 막히고 꿈이 다 부서진 것만 같았어.

하루는 나와 같이 대학원도 안 가고 서울에 남은(ㅋ) 졸업생들이 만났어.


그래서 작가들이 직접 자기 그림을 싼 가격에 경매로 팔고, 그 돈으로 전시를 열자고 마음을 모았어.

그러려면 그림을 사줄 사람들이 있어야 하잖아. 뭐 대학 막 졸업한 사람들이 아는 사람들이 어디있겠어 ㅋㅋ 사돈의 팔촌까지 다 불러모았지 ㅎ

전의 그 회사 창립파티에서 만났던 분들, 그 언니가 소개해준 디자인회사 대표님, 다들 응원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와주셨어. 넘 감사하지 뭐.

그날 우린 그림을 30개 정도 내놨는데, 돌이켜보면 질풍노도의 시기라 그림들도 다 어둡고 거칠었었거든. 근데도 그날 저녁, 기적처럼 그림들이 다 팔렸어. 정말 기쁘더라!
그 비용으로 우리의 첫 전시를 했어.

우리가 그렇게 애쓰고 전시하려는 모습이 인생선배님들 눈에 예뻤나봐.

내 두번째 귀인 역시, 돌아가신 아버님이 화가셔서 늘 가난한 화가들을 보면 도와주시는 편이었거든. 그래서 우리한테 오셔서 밥도 자주 사주시고 술도 사주시고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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