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두번째 귀인은, 선생님이라고 부르는데, 사실 평범한 분은 아니셔.
어지간한 기가 센 사람이 나타나도 눈 하나 꿈쩍 안 하시는 타입이시지. 자기 스타일과 페이스도 강하시고. 요즘 말로 '기존세' 타입? 근데 이 세상 모든 아티스트들에게는 아낌없는 사랑과 존중을 주시는 분이야. 아마도 아버지에 대한 향수와 존경 때문이 아니셨을까 싶어.
나와 친구를 유난히 예뻐해주셔서, 정말 많이 같이 놀러다녔(?)어. 댁에도 자주 놀러갔었는데, 그 집은. 여태 내가 살면서 본 럭셔리 하우스 TOP5에 들어.
선생님 어머님은 그 옛날 뉴욕에서 패션 사업 하시던 분이라고 하셨잖아? 정말 감도가... 너무 좋고 세련된 분이셨어. 미니멀하고 지속가능한 멋스러움이 뭔지, 몸소 실천하며 살고 계시더라.
선생님 댁은 4층짜리 구조가 특이한 단독주택이었어. 선생님의 외삼촌, 그러니까 어머님 남동생 분이 누나를 위해 지어주신 집이래.
골목길 코너에 벽돌로 반듯하게 지은 집은 흔히 볼 수 있는 디자인이 아니었어.
어쩌면 그 시대에 그렇게 모던하면서도 한국적인 미가 살아있는 건축을 하셨을까.
그 집의 작은 현관에는,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늘 고운 생화가 있었어. 딱 현관 사이즈에 어울리는 소담한 꽃꽂이였지. 너무 과하지도 않고 한국적인 그 꽃꽂이 감각.
손님이 매일 오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하루도 빼놓지 않고 아름다운 꽃꽂이를 하시는 모습이 진정한 럭셔리라고 느꼈어.
집 안으로 들어가면 곳곳에 아버님의 페인팅이 있고, 동글동글 달팽이 계단을 올라가면 어머님의 층이 나와. 어머님의 공간은 '정갈'이라는 단어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
유행을 안 타는 하얗고 미니멀한 식기들, 빳빳하게 풀먹인 하얀 침구류,
은은한 향.
단아한 어머님의 세심한 챙김이 있어서 완성되는 공간이었어. 미니멀하고 한국적인데, 뭐 하나 구태의연한 게 없는 그 고급스러움. 사람의 좋은 취향이란 참... 오래 오래 기억에 남는 것 같아.
선생님 댁에서 많이 배웠어.
발끝도 못 따라가지만,
손님을 어떻게 대접해야 하는지,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등등
선생님 친구분들과 만날 기회도 엄청 많았어.
나같은 꼬맹이가 만날 수 없는
어른들이셨지.
그냥 단순히 돈이 많은 사람들 말고
문화예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즐기고
스마트하고, 베풀고, 취향이 좋고,
가진 것보다 훨씬 소박하게 사는 분들이셨어.
그 분들 계신 자리에 가면 꼭 나는
아티스트라고 소개가 됐고,
다들 내가 무슨 대단한 아티스트라도
되는 것 처럼 대접해주셨어.
넘 멋지지?
선생님에겐 나와 나이 차이가 몇 살 나는
딸이 하나 있어.
그 친구 자체도 똑똑한데,
다른 것보다 이런 이모 삼촌들 속에서
자랐다는 게 얼마나 복인지 알까. 생각이 들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