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사업을 안 할 수가 없다던 그 예언을 듣고도, 사업한다는 게 너무 남 일처럼 느껴지기만 했었어.
그런데 그 여행을 다녀와서, 아까 그 대표님 회사가 갑자기 명동 중앙로에 매장을 내게 됐어. 명동 중앙로...란 무엇이냐하면, 명동역에서 나가서 그 밀리오레 건물 사이 길로 쭉 내려가는 그 길이야. 한국에 외국인들이 찾아오면 한 번씩은 다 찾아온다는 그 곳.
대략 15년 전쯤인데, 그때 한참 미샤니 더페이스샵이니 저가 화장품들 로드샵이 빵 뜨고 패션 브랜드들도 잘 되어서, 우리 나라 내노라 하는 유명 브랜드들이 거기서 다 경합을 하고 있었어.
이 명동 중앙로 초입 땅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땅으로 늘 뉴스에 등장하는 거 알지? 그만큼 임대료도 살인적이었어. 공간 월 임대료가 평당 300만원 정도 했었다. 보통 작은 화장품 가게 매장들이 20평 쯤 하는데, 그런데가 월 6000 넘게 내는 거지.
그 정도 임대료를 내면서 돈이 남는 매장이 과연 있을까?
사실, 그 거리에 있는 매장들 중 똔똔이면 양반이고, 적자 안 나면 다행이래. 그러니깐 거기는 거리 전체가 하나의 상징적인 광고판인거야. 플래그십 스토어라고 하지.
지금 성수동이 일주일에 팝업스토어 임대료 1억씩 낸다고 하잖아? 비슷한 거야. 그게 다 광고와 브랜드 체험을 위한 거.
그래서 그 비싼 임대료를 내고도, 명동 중앙로엔 기업들이 들어가고 싶어서 줄을 섰었지. 그러니 이 대표님의 신생 기업 입장에서는, 거기에 자리가 났다는 거 자체가 일생일대의 기회였고. 또 임대료 너무 비싸니 최대한 짧은 기간 안에 바로 오픈하는 것이 최대한 이득이었지.
그렇다보니 마음이 급하셨는지, 바로 나한테 연락하셔서 이런 건물 1층에 갑자기 매장을 내게 됐다. "너가 그냥 하고 싶은대로 다 알아서 해" 라고 하셨어.
"너가 그냥 하고 싶은대로 다 알아서 해"
이거, 얼마나 마술같은, 혹하는 얘기인지 아티스트들은 알걸?
홀린듯이, 겁도 없이 덜컥, YES를 외치고 바로 일하기 시작했어. 그로부터 3주 후, 우리의 매장이 기적같이 문을 열었어. 브랜드 아이덴티티 작업, 로고, 브랜드 스토리,.인테리어 디자인과 시공, 광고 사진 촬영, 그래픽 디자인, 광고물 제작, 패키지, 간판.... 이거 전부, 3주만에 끝났어.
잠을 거의 안 잤을 걸? 그런데 정말 재밌고 가슴이 뛰더라. 잘될지 말지는 별로 걱정이 안 됐어. 무조건 잘 될 것 같았거든.
그렇게 오픈한 매장은, '소위' 대박이 났어. 너무 너무 뿌듯하더라. 명동 중앙로 전체에서 우리 매장이 제일 사람도 바글바글하고 칭찬도 많이 들었어. 이후에 매장도 많이 생겼지. 내가 바이블처럼 보던 해외 잡지에도 우리 매장이 실릴 정도였어.
대표님이 고맙다면서, 1년 만에 매출이 1100% 인가 올랐다고 하시더라. 아- 그 짜릿함.
매장 수가 계속 늘어나니까, 점점 손이 부족하더라. 그런데 그 회사 취직 하기는 뭔가 나랑 안 맞을 것 같았어. 조직에 적응할 자신이 없었거든. 그래서 얼떨결에 내 첫 법인 회사를 만들게 됐어.
그리고는 그 회사를 이후에 10년이나 했어.
예언대로 이루어진, 첫번째 사건이었지.
지금도 내 인생 속에서 예언들은 계속, 아주 천천히 이루어지고 있어. 아니 그렇다고 믿어.
그런데 있지. '내 인생은 이렇게 될 것이다' 라는 어떤 기준이 확고하게 있다고 해도, 우리의 순간들은 아주 천천히 간다. 늘 지난한 기다림의 연속이야.
사실 무엇보다도, 정확한 때가 공지되지 않은 기약없는 기다림만큼 사람을 말리는 것도 없어. 기다림이 지속되면 누구나 의심을 하게 돼. 정말 그런 날들이 올까. 하고 말이야.
더군다나 상황들이, 한참 오고나서 비로소 뒤돌아봐야 와 내가 여기까지는 왔구나 알게 되지. 그렇지 않고는 어제가 오늘같고 오늘이 내일일 것 같고, 작은 변화도 없는 것 같은 나날들이 계속 되기도 해. 정말 힘들고 우울한 부분이지. 꼭 극복해야 할. 나도 그랬어.
특히 사업 시작하고 한 3-5년 간은 매일 울었던 것 같아. 아무것도 몰라서 그랬고, 막막해서 그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