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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자 치는 snoopy Jan 16. 2023

앙코르, 마이클 볼튼


공연은 6시에 시작됐다. K2와 소향의 오프닝 공연이 무려 1시간여. 야구를 위한 돔구장이라 그런지 사운드가 메아리쳐 울림이 심하고 모든 소리가 다 쏟아져 나오는 음향 과다의 느낌이 있었다. 그래도 소향의 가창력은 그 모든 악조건을 날려버릴 만큼 시원했다. 노래 세 곡으로 순식간에 고척돔을 가득 채운 수많은 귀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잠시 무대를 전환하는 브레이크 타임.

7시 20분 무렵 '스탠 바이 미'를 외치며 그분이 무대에 등장하셨다. 일단, 칠십이란 나이가 무색하게 목소리가 짱짱해서 놀랐고, 짧게 자른 은발의 모습에 또 한 번 놀랐다. 트레이드 마크였던 긴 곱슬이 나는 무척 느끼해 부담스러웠는데, 나이 든 그분에게서 장발을 자른 후 더 멋있어진 배철수 형님의 향기가 났다. 그리고 아... 코러스 포함 세션 멤버들의 CD를 틀어 놓은 것 같은 연주력이라니...! 대애박! K2 무대의 사운드와 차원이 달라서, 나와 마누라는 리스펙을 한 만 개 박아 드렸다. 명불허전이라더니... 평생 노래를 업으로 삼아 온 노장의 목소리는 허튼 구석이나 기름기 하나 없이 담백하고 단단했다.

놀란 라이언의 하이킥 모션을 흉내내며 시속 160km의 공을 뿌리는 등번호 61번의 한국 청년이 있었다. 그의 공은 빨랐지만 '투머치 하이킥' 덕분에 제구는 불안했고 강속구 일변도로 상대를 윽박지르는 단조로운 패턴은 '가능성' 이상의 포텐으로 터지지 않았다. 그러다 메이저리그의 매운맛을 보고 어깨 힘을 뺀 덕분에 볼 스피드는 조금 줄었지만 스트라이크 존 구석구석을 찌르는 커맨드와 파워커브를 장착하면서 메이저리그를 호령하기 시작했다.

전성기 시절, 파워 넘치는 성량의 셀린 디옹과 마이클 볼튼은 자타 공인 가창력과 노래 실력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난 그 둘을 좋아하지 않았다. 자기 성량만 믿고 내지르기만 하는 창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노래는 '소리 높고 크게 지르기'가 아니다. 진짜 노래의 맛은 정훈희의 <안개>나 최백호의 <바다 끝>처럼 조근조근 불러도 사람 마음을 뒤흔들어 움직일 때 드러난다. 나는 그룹 <들국화> 시절 전인권이 내지르던 <행진>도 좋아하지만, 인생의 밑바닥까지 굴러떨어져 산전수전 다 겪은 삶의 떨림이 날것으로 드러나는 <걱정말아요 그대>를 더 좋아한다.

나이를 먹은 마이클 볼튼의 목소리엔 힘이 빠졌지만, 어깨 힘을 빼고 '나 노래 잘해' 하는 마음을 내려놓은 늙은 아티스트의 목소리엔 삶의 회한과 명암이 읊조림처럼 들러붙어 녹아 있어 좋았다. 마이클 볼튼의 노래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숨 쉬듯 툭툭 던지던 영화 <그랜 토리노> 엔딩 곡의 무심함과 달관이 느껴져 좋았다. 노래는 목소리로 부르는 게 아니다. 노래는 마음으로 부르는 것.

마누라가 오랫동안 후원해 온 <세이브 더 칠드런> 마이클 볼튼 콘서트 이벤트에 응모했는데, 덜컥 당첨이 된 거였다. 마누라가 준비한 11주년 결혼기념일 서프라이즈 선물이었다. 덕분에 우리는 노래를 따라 부르고 환호하며 신나게 결혼기념일을 즐겼다. 공연 이름이 '앙코르 마이클 볼튼'이었고 마누라와 나까지 합세해 관객 모두 '앵콜'을 외쳤지만, 끝내 앵콜은 없었다. ㅎㅎ  

#마이클볼튼 #내한공연 #고척스카이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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