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타자 치는 snoopy Feb 15. 2023

바빌론

액션과 컷 사이, 시네마 천국


어느 깊은 가을밤 잠에서 깨어난 제자가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스승이 기이하게 여겨 제자에게 물었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


제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 <달콤한 인생>, 선우(이병헌)의 독백





(스포일러 있습니다)


멕시코 이민자 매니 토레스(디에고 칼바)는 '신성한 제국' 바빌론 같았던 1920년대 '꿈의 공장' 할리우드에서 아름답고 슬픈 꿈을 꾸었다. 넬리 라로이(마고 로비), 잭 콘래드(브래드 피트), 시드니 팔머(조반 아데포)와 따로 또 같이. 스크린 위의 환영을 통해 대중들에게 즐거움과 의미를 선물하면서 무언가 더 크고 위대한 것의 일부가 되고 싶다는 그들의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에 슬프고, 이루어질 수 없기에 아름답다. 영화사 키노스코프 세트장에 기생하는 마약 딜러 '더 카운트'조차도 한때는 스타를 꿈꾸던 배우였기에, 이 화려하고 서글픈 이야기에는 등장과 퇴장, 탄생과 죽음, 떠오름과 사라짐, 빛과 어둠이 공존한다. '빛과 어둠의 예술'인 영화처럼.

 

전작 <라라랜드>도 그랬지만, 데이미언 셔젤은 이번에는 대놓고 '영화를 위한 영화'를 찍었다. <바빌론>은 영화에 대한 오마주인가 싶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꿈과 저무는 시대에 대한 에피타(묘비명)에 가깝다. 스물아홉에 데뷔작 <위플래쉬>를 들고 나타난 젊은 천재는 자신이 영화를 얼마나 잘 알고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영원과 불멸을 향한 자신의 욕망이 얼마나 거대한 것인지, 막대한 자본과 유명 배우를 끌어모아 스크린 위에 펼쳐 놓았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을 만큼의 역량을 갖게 됐을 때, 마침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작심하고 만들어 낸 느낌이랄까. 아마도 감독의 욕망은 멕시코 이민자 버전의 <시네마 천국>을 만드는 것이었을 터.


그러나 영화 산업 종사자이자 시네마 키드인 데이미언 셔젤의 욕망(장식적 자기 과시나, 영화에 관한 현학적 자기 연민의 버라이어티 한 헌사)은 러닝타임 189분 동안 관객의 눈을 홀리는 데 성공했을지 몰라도, 정작 대중의 마음을 훔치는 데는 실패한 것 같다. '영화를 위한 영화'는 두 가지 전제 조건을 충족해야만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영화사에 대한 사전 지식(인용한 장면, 상황, 영화 속 영화)이 풍부하거나, 영화라는 예술 혹은 산업의 프로세스나 알고리즘에 대한 이해. 둘 다 모르고 덤볐다간 낭패를 보기(재미없기) 십상이다. 영화계 이면의 숨겨진 이야기를 몰라도 재밌고 감동적으로 볼 수 있는 <시네마 천국> 같은 작품이 성공한 '영화를 위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시네마 천국>은 정신없이 화려한 <바빌론>에 비하면 빈약하고 검소한 이야기로 관객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멕시코 이민자 버전의 <시네마 천국>을 지향했던 <바빌론>의 정체성은 오히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경멸>, <헤일, 시저>, <선셋 대로>에 가깝다. <사랑은 비를 타고>의 프리퀄을 네거티브 버전의 <서푼짜리 극장>으로 만든 느낌이랄까? 그래서 다양한 인물과 사건을 3시간 넘게 정신없이 봤지만, 다 보고 나면 가운데가 빈 도넛의 공허를 들여다본 기분이 든다. 차라리 영화에 대한 사랑과 열정, 대중을 위한 판타지와 오락거리라는 측면에서 <설리반의 여행>이나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와 같은 결로 단순하게(집중해서) 나갔으면 어땠을까? <바빌론>을 본 이들이 '영화 덕후를 위한 영화'라는 반응을 보이는 이유.


이번에도 데이미언 셔젤은 영화적 장치로 주제를 구현한다. <라라랜드>에 플래시 백이 있었다면, <바빌론>에는 유사 시퀀스의 반복 편집과 각자의 꿈을 위해 투쟁하는 복수 인물의 상황을 묘사한 교차 편집이 있다. <바빌론> 역시 20년 만에 다시 할리우드의 극장을 찾아 <사랑은 비를 타고>를 보는 마지막 장면에서, 매니 토레스의 (개인적 기억 대신 무성영화 시대부터 유성영화 시대를 관통화는 영화 장면 나열) 플래시 백 회고가 1차원적으로 영화의 주제를 강조하지만, 무성영화 시대에서 유성영화로 넘어가던 과도기 영화 제작 스튜디오의 촬영 장면을 묘사한 12분짜리 8 테이크 반복 시퀀스는 신경질적일 만큼 집요하다. 조금씩 편집 호흡이 빨라지는 12분 동안의 반복 장면을 통해 데이미언 셔젤이 보여주고(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무성영화 스타와 제작자들이 정점에서 추락하기 시작하는 분기점 상황에 대한 집요한 묘사는, 지나간 사랑과 꿈 그리고 인생의 선택에 대한 찰나적 응시와 관조를 통해 관객들의 공감을 얻은 <라라 랜드>의 마지막 플래시 백 시퀀스와 달리, 관객의 충분한 이해와 공감을 얻는 대신 신경질적 피로감만 가중시킨다. 영화사 격변기의 변곡점(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의 이행)에 관한 그 집착에 가까운 고찰은 <시네마 천국> 토토의 영화에 관한 낭만적 열정보다, 한 테이크 장면이 몇 개의 컷으로 편집됐는지를 세보는 영화 오타쿠의 스토킹에 가깝다.


<바빌론>이 3시간 넘게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영화가 빛과 어둠의 예술이라는 것. 고급 예술과 서브컬처, 주류와 비주류, 상층 계급(백인, 유대인, 감독, 제작자, 자본가)과 하위 계층(흑인, 여성, 이민자, 성소수자, 노동자), 가난한 예술가와 빛나는 스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무대 위 스타와 어둠 속 조력자(제작자, 스태프)들, 할리우드와 LA의 똥구멍, 영생과 망각, 영원과 찰나의 순간들. 어둠이 없다면 빛은 홀로 존재할 수 없다. 싸구려 저널리즘의 상징인 엘리노어(진 스마트)가 잭 콘래드에게 건네는 충고 : 스타는 빛을 비춘 은막 위 프레임 안에서 다시금 부활하고 천사나 유령처럼 영생을 얻지만 실체가 아니다. 사람들은 스타가 아니라 스타의 이미지를 소비하고 버린다. 대중의 선택에 의해 살아남는 것은 스타가 아니라 스타라는 개념이다. 스타의 부활과 영생에는 전제 조건이 있다. 어둠 속에서 스포트라이트를 관음하는 바퀴벌레 같은 익명의 실체들이 존재해야 한다. 시대가 바뀌고 저무는 것에는 이유가 없다. 결국 살아남는 것은 '자기보다 더 큰 것'에 떠밀려 이유도 모른 채 어둠 속으로 잊혀지는 스타가 아니라, 어둠을 버텨내며 빛을 지켜보는 바퀴벌레 같은 관음의 무리들이다... :는 신랄하고 비정하다.


명확하진 않지만 그래도 분리돼 있던 꿈과 현실이 극 후반으로 치달으며 뒤섞이는 순간, 젊은 예술가들의 성공담과 할리우드의 신화가 뒤틀리며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악명 높은 카지노 보스 제임스 맥케이(토비 맥과이어)에게 진 넬리 라로이의 도박 빚을 갚기 위해 마약 딜러 '더 카운트'가 마련한 돈이 영화 소품(movie money)이었던 것. 가짜(영화의 허구)가 진짜(실제 현실)에 섞여드는 순간 '바빌론'으로 표상되던 꿈의 제국은 붕괴되고 'LA의 똥구멍'의 어둠이 모든 빛을 삼켜버린다. 태생적으로 통제와 규격화를 거부하던 잭 콘래드와 넬리 라로이의 자유로운 영혼은 서서히 어둠에 먹히고, 마침내, 고결했던 희랍 시대 신의 비극적 운명처럼 파국으로 치닫는다. 위선과 가식을 혐오하고 야성을 불사르던 넬리 라로이의 동물적 매력은 대중들에게 버림받고, 언제나 새로운 것을 열망했지만 새로운 조류는 잭 콘래드를 선택하지 않는다. 짙은 공허에 먹힌 잭 콘래드는 존엄한 소멸을 선택하고, 사랑하는 이를 상대로 마지막 혼신의 연기를 마친 넬리 리로이는 자신을 집어삼킨 비정한 어둠 속으로 쓸쓸히 사라진다.


<바빌론>은 빛의 정점에 존재하는 '스타'라는 이미지와 어둠 속에 웅크린 채 빛을 추앙하는 '관음증 환자'들을 동시에 조망하지만, 결국 영광(살아남은 존재)은 어둠 속에서 빛을 응시하는 목격자, 어둠을 버티는 변덕스럽고 비정한 존재, 스타라는 이미지를 소비하고 버리는 존재, 무엇에든 열광하고 쉽게 망각하는 존재, 파멸하지만 소멸하지 않는, 어둠 속 바퀴벌레 같은 그들의 것이라고 말한다. 불멸과 영생은 스타나 시스템의 것이 아니라 어둠 속 바퀴벌레 같은 관객들의 것이라고. 

#바빌론 #영화를위한영화 #빛과어둠 #불멸과영생 #스타 #어둠속바퀴벌레



액션과 컷 사이, 매직 타임



액션과 컷 사이 - 꿈의 공장 할리우드



+


우아한 소멸


작가의 이전글 <구데타마 : 엄마 찾아 뒹굴뒹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