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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 Jan 27. 2021

88. 손가락이 멈췄다.

손가락이 멈췄다.

왜냐고 물으면 더욱 왜인지 모르겠다.

이전처럼 아이디어가 없어서도 아니고 같은 말을 또 적을까 조심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손가락이 멈췄다.


아무리 잘 표현해보려 해도 딱딱하고 재미없는 돌덩이 같은 글이 써진다.

내가 원래 쓰던 글도 그렇게 매끄럽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 쓴 글들은 모두 글이 되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것일 뿐, 글이 되지 못할 것들 뿐이다.

몇 번을 고치고 다시 써도 결과는 같다.

손가락이 완전히 굳었다.

 

책상과 침대를 왔다 갔다 해보고 분위기나 관심도 바꿔본다.

글감도 서너 번을 갈아치운다.

그런데도 누군가 읽고 재미있을 것이란 기대가 들지 않는다.

아, 이 글은 진짜 오늘을 때우기 위해 아무거나 던져보려고 한 조악한 장난감이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시간은 없고, 오늘을 마무리해야만 한다.

글을 쓰지 못하고 방황하는 손가락 덕에 수지도 못하고 몇 시간째 쓰고 지우기만 반복한다.

결국 쓰는 글이 이거다.

손가락이 굳었습니다. 하는 자조 섞인 보고.

그런데 그것 말고는 쓸 수 있는 게 없다. 턱까지 아릿한 두통과 함께 손가락은 점점 둔해진다. 지금 이 글을 쓰는 게 손과 내 감정인지 뼈와 내 본능인지 알 수가 없다.

조금 더 잘 쓰려고 해도 추위에 한 열 시간은 서있던 것처럼 곱아버린다. 모든 타이핑 하나하나가 굼뜨다. 벽도 이런 벽이 없다.


도저히 뭘 쓸 수가 없다. 참 우습다. 그럼 그냥 포기하고 잘 것이지 이런 이상하고 알 수 없는 변명인지 보고인지 모를 글을 쓰고 있다는 게 말이다.


바라건대 오늘이 지나고 내일이 오면 오늘보단 손가락이 풀리길 바란다.

이게 내 창조성의 석회화가 아니길 바란다.

단지 오늘은  다른 날보다 유난히 마음 언저리가 추워서 손이 굳은 것이길 바란다.

마음을 조금 녹이고 쉬면 이것보단 낫길 바란다.


그렇게 바랄 만큼 더 좋은 글을 쓰고 싶다.

그런 바람을 글이 도저히 써지지 않는다고 보고하는 듯한 이런 글에다 바람을 쓰는 것도 이상하지만 그래도 내일은 내 마음 한 칸에 눈이 녹아서 손이 경쾌한 타자 소리를 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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