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이 부쩍 없어졌다.
무슨 일이든 재밌게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많은 이들이 말하던 그대로인 것 같다.
뭔 일을 해도 그게 직업이 되면 즐겁지 않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딱 그 말대로다. 요즘은 열정이 없어도 너무 없다.
나는 아무리 그래도 열정을 가지고 새로운 의견을 낼 수 있을 줄 알았다.
아무리 그래도 못할 게 있겠나. 그래도 글이니 그림이니 새로운걸 늘 써내는 놈인데. 조금이라도 좋은 아이디어를 내면서 생활하겠지 싶었다.
돈 받고 일하는 프로라면 그만큼 일할 준비도 되어있는 줄 알았다. 아마추어도 아니고 성숙하게 일할 준비가 되어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웬걸, 일 일할 수록 일은 하기 싫고 아무리 뭘 생각해내도 새로운 건 없었다.
심장을 뛰게 만들 재미있는 일이야 가지고 살기 힘들다지만, 이렇게까지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게 된다는 것이 너무 슬프다.
영업처에 가서 생산적인 토론을 하고 같이 미래를 위한 아이디어를 짜내는 현장에서도 나는 서기라도 된 것처럼 그냥 타이핑만 하고 있었다.
타이핑을 하다 보면 뭔가 종합된 내용에서 새로운 것이라도 나올 줄 알았는데 끝까지 한 가지 제대로 된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냥 그렇구나’라는 건조한 감상만이 남았다. 최대한 있어 보이는 척 표현할래도 무슨 억지로 끌려간 현장학습 소감 발표하듯 무미한 얘기만 나왔다.
상사들은 나를 어떻게 볼까. 나름 패기 있고 창의력 있는 척해서 채용했는데, 해놓고 보니 그냥 보릿자루일 뿐이다.
시간이나 보내고, 시키는 것이나 하고. 있는 신입. 이제 신입이라고 부르기 힘든 취직 N개월 차. 상사들은 내 채용을 후회하고 있을까.
다른 곳에 가면 열정이 생길까 싶어도, 이제 겨우 1년도 못 채운 신입으론 어디 가서 경력이라고 내밀 수도 없다.
사람은 넘쳐나고 일자리는 죽었다 깨어나도 없는, 밑에서 파릇파릇하게 치고 올라오는 98, 99년생들보다 좋은 것도 없는 군필 94년생. 경력 없이 나갈 수도 없다.
이렇게 아무런 열정도 아이디어도 없이 무슨 경력이 나올까 싶긴 하지만 말이다.
직장 선배는 참 즐겁게 일한다.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 것 같지만 그 이상으로 쾌활하게 일한다. 나름 자신도 이 일이 재밌다고 한다.
팀장은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바로 떠오른다. 그래. 그러니까 창업하고 지금까지 저기서 있는 거겠지. 이 일이 재미없는 건 나뿐인가 싶다.
사실 가장 무서운 건 내가 즐거워하는 일로 프로가 될 미래가 두렵다.
지금 일이 그냥 나랑 맞지 않는 일이라 재미없는 거라면 이 악물고 버티면서 재미있는 척하면서 살면 된다. 원래부터 애정도 없었으니까 있는 척하는 건 어렵지 않다.
무서운 건 내가 그토록 원하던 일로 돈을 벌기 시작할 때다. 모두가 말하듯 ‘좋아하던 일이 직업이 되면 고통스러워진다’가 진짜라면, 나는 어떡해야 할까.
그때 내가 도망칠 곳이 있을까. 천직이라고 생각한 일이 괴롭고, 아이디어도 거짓말 같이 말라버린다면 그때는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하루가 저문다. 내일은 또 일자리에 돌아가 다시 모니터를 보고, 영업처에 전화를 걸고 괜찮은 척 일을 하겠지.
복사와 붙여 넣기로 점철된 채 새로운 것 하나 없는 일을 반복할 것이다. ‘오늘 많이 팔았다’라고 애써 위로나 하면서.
열정 없는 프로다. 열정 없는 어른이다. 어쩌면 열정 없는 인생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살기도 두려워지는 그런 열정 없는 사람인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