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이 하나도 없을 때는 내 것이 생기면 생길수록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집에는 내 물건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TV도 부모님 것, 그릇도 부모님 것, 내가 입고 있는 옷도 모두 부모님께서 주신 것이었다.
언젠가 돈을 벌 수 있는 어른이 되어 내 것이 늘어난다면, 얼마나 즐겁고 자유로울까. 상상을 하던 어린 시절이 모두에게 있었듯, 나에게도 있었다.
계절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내가 산 내 물건들이 늘어갔다. 돈을 한 푼 두 푼 모아 내 소유를 늘려 나가는 건 확실히 재미있었다.
내가 산 것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즐겁기도 했다. 가만히 책장에 전시해둔 앨범이나 장신구들을 보고 있으면 든든한 만족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여전히 내 것이 머무르는 곳은 내 것이 아니었다. 내 것도, 부모님의 것도 아니었다. 단순한 전세였다.
그렇기에 무언가를 사가지고 정리해두는 것도 하나의 부담이었다. 몇 년마다 다시 더 싼 전세를 찾아 옮겨야했으니 뭘 사더라도 부피는 적게, 몇 달은 박스안에 박혀 있어도 괜찮은 것들만 골라 사게 되었다.
진짜 사고 싶은 것, 집에 두고 연습하면서 해보고 싶은 것들은 먼 훗날로 미뤘다. 그건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언젠가 내 집이 생기게 된다면, 내 소유의 공간이 생긴다면 내가 진짜 사고 싶고, 배워보고 싶은 일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자는 바람을 가졌다.
하지만 부모님에게서 독립해야하는 요즘에서야 조금씩 느끼게 된다. 내가 진정 가질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적은지. 내가 꿈꾸던 자유로운 소비와 수집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내 돈으로 살 수 있는 땅 한 뼘이 회사 주변에 없다. 매일 왕복 세 시간씩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한다. 내가 가진 것은 내 몸에 걸친 것들 말곤 존재하지 않는다.
잠을 자도 남의 집에서 잠을 자는 것이고, 눈을 떠 남의 운송수단을 타고 이동해 남이 마련해준 내 자리에서 남을 위한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은 한없이 적다. 언젠가는 내 것을 가지게 될거야, 아직도 그렇게 말하고는 있지만 실제로 가지게 될 날이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다.
언젠가 손에 넣게 되더라도 버리고 마는 순간이 온다. 망가져서 버리면 다행이다. 내가 더 이상 그것을 유지할 수 없는 순간이 와서 버리게 된다.
차를 사도 내가 유지를 할만한 여력이 되지 않는다. 레코드와 피규어를 사봤자 보관할 아크릴 장을 살 여력이 되지 않는다.
망치와 모루, 오븐과 조각칼을 두고 공방을 차리고 싶지만, 그걸 할 만한 단 한 평의 작업실도 가질 여력이 되지 않는다. 결국 사지도, 배우지도 못하는 것이다.
산 것을 유지하기위해서 더 큰 소비가 필요하지만 그걸 해낼 수 있는 여력이 전혀 되지 않으니까.
‘무소유’하고 싶어서 무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소유를 할 여력이 되지 않아서 소유를 하지 못한다.
최대한 많은 것을 사고, 누리고, 즐기고 싶은 것이 본능이건만, 우리의 인생은 그걸 유지할만한 인생이 되지 못해 강제로 ‘무소유’ 하게 된다.
고급 레스토랑, 호텔에서의 바캉스. 찰나의 서비스만을 누리면서 ‘YOLO’ 한다고 말한다. 모래를 움켜쥔 손처럼 금새 다 흘러나가고 남지 않는데 말이다.
서비스를 즐기는 것이 쓸모없다 말하는 것이 아니다.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가치 있는 것은 찰나의 순간밖에 사지 못해놓고 만족한 척 하는 내가 아무래도 덧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잠시의 승용차 뒷좌석을 빌린다. 잠시 영화를 볼 권리를 빌린다. 잠시 운동 기구를 빌린다. 좋은 것을 알차게 누리고 있다고 말하지만 제대로 내 손에 가진 것은 없다.
나는 분명히 어른이 되었는데, 가질 수 있는 것은 가질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믿었는데, 어렸을 적 5분만 TV 보게 해달라고 조르던 내 모습과 달라진 것이 없다.
나는 아직도 제대로 가지고 있는 것이 없다. 가진 것을 유지할 여력도 없다.
많이, 더 많이 가지고 싶은 것은 많은데, 어쩌다보니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하게 되었다.
커져가는 욕망 사이에서 무소유하게 되었다. 무소유를 원한 나는 어디에도 없었다.
조금 더 많이 소유하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