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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 Jan 29. 2021

90. 언젠가 밥 한 번.

관계는 유한하다. 모두가 아는 진리다.

학창 시절, 영원히 함께하자는 친구는 대학에 들어가고 나면서 점차 한 달에 한 번, 1년에 한 번, 그렇게 점점 멀어진다.

곧 죽고 못 살 것만 같던 대학 동아리 친구들도, 고생이란 고생 다 같이 겪은 군대 동기도 끝이 나면 그걸로 두 번 보기가 힘들다.

관계는 모두 어떤 의미로도 끝이 있다. 그리고 한 번 끝난 관계는 다시 돌아오기 힘들다. 그 나이의 그 장소였으니 그렇게 사이가 좋았던 거다.

다시 만나봤자 연신 우리의 빛났던 추억만 읊을 뿐, 다시 이전처럼 즐거운 관계를 맺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좋았던 시간은 이미 지났으니까.


그걸 알고 있음에도, ‘언젠가 밥 한 번 먹자’. 그 얘기를 또 한다.

다시 모인다 해도 참 어색한 공기와, 서로 궁금하지도 않은 근황 얘기와, 이미 닳을 때로 닳아버린 옛이야기를 꺼낼 것을 안다.

‘다음에 또 보자’라고 말하면서 언제가 될지 모르는 약속을 또 잡을 것을 안다. 뒤돌아오면서 ‘이 시간에 집에서 쉬었으면 어땠을까’하는 후회 섞인 계산도 또 하겠지.

그럼에도 다시 집에 돌아와 며칠의 일상을 보내다 보면 또 카톡으로 메시지를 보낼 것이다.


‘야, 이번에 여기 가보니까 좋더라, 다음에 한 번 같이 가자.’


반복되고 반복되는 만남과 헤어짐. 다시는 그때처럼 즐거울 수 없음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언제 밥 한 번’을 주문처럼 외운다.

뭐 그렇게 같이 밥이 먹고 싶은 걸까. 뭐 그렇게 한 번 얼굴을 보고 싶은 것일까.

알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등을 기댈 벽 하나 없다는 것을. 누구 하나 말 나눌 사람 없다는 것을. 아무도 나를 궁금해하지 않음을.

내 편이 열 손가락에 다 들어오는 삶이 되어버렸음을.


그런 외로운 어른이 되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 자꾸 옛 추억들을 끌어모은다.

 ‘나는 아직 그래도 좋은 사람이 주변에 이렇게 많아.’라고 자기를 위로라도 하고 싶은 것만 같다.

그게 덧없다는 것은 얼굴을 보는 순간, 말을 고르는 순간 알게 된다. ‘나 이 사람이랑 왜 만났지?’

사실 오늘 만난 그 사람이 그렇게 좋은 사람도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 기분이 든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추억만 붙잡는다. 밥 한 번먹자고 앵무새처럼 말한다.

내가 주말에 뭘 했는지, 직장에서 뭘 하는지, 내 연애는 어떻게 되어가는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세상이다.

그래서 자신도 전혀 궁금하지 않지만 예의로라도, 옛정으로라도 물어봐줄 사람을 찾는다.

나 이렇게 잘 살아’

나 아직 괜찮아.’

내 삶은 그래도 아직 지낼만해.’

그렇게 말하기 위한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래서 밥 한 번을 빌미로 오늘도 사람을 부른다.

참 이도 저도 아닌 젊음을 보내고 있는 매일이라 더욱 그렇게 말하고 싶다.

다시는 같이 친했던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끝난 인연임에도 얼굴이라도 보면서 웃으며 얘기하고 싶다.


나는 괜찮아. 나는 괜찮아. 그 소리가 마음에 부딪혀 다시 돌아온다.

밥 한번 같이 먹자.’

시간 나면 같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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