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인 Jan 30. 2021

 91. 어차피 늘 똑같게, 기계처럼.

비염이 참 심하다. 어렸을 적부터 늘 그랬다.

그만큼 이비인후과는 내 오랜 친구였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늘 머리가 무거워지면 먼저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처방은 늘 바뀐 적이 없다. 코에 관 같은 것을 집어넣고 약을 분사하고, 목 안쪽에 무언가 바르고, 수술을 권유한다.

그러고 약은 언제나처럼 항생제. 다른 건 없었다.


장교후보생을 준비하면서 집체훈련이라는 이름의 다소 가학적인 체력단련을 받다가 고관절을 다쳤다. 지금도 비가 오면 시큰거린다.

그때부터 때가 될 때마다 고관절 물리치료를 위해 정형외과를 다녔다. 도수치료가 좋다는 곳, 최신의 장비를 갖췄다는 곳도 다 다녀보았다.

하지만 그 어디를 가도 내가 받을 수 있는 치료는 없었다. 온열치료와 전극을 통한 물리치료, 몇 회를 가도 그게 전부였다.

그리고 약은 언제나처럼 항생제. 이 것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한창 불안장애가 심할 때는 정신과도 꾸준히 다녔었다.

정말 내가 나를 어떻게 할지 몰라 밧줄이라도 잡는 간절한 마음으로 상담사의 소개를 받은 정신과에 다녔었다.

상담은 매주 있었다. 무언가를 물어봤던 것 같고 나도 그에 맞추어 대답을 열심히 했던 것 같다. 그렇게 큰 기억에 남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상담해주는 의사의 표정은 늘 같았고, 내 이야기가 그에게 닫는지도 의문이었다. 그냥 벽에 대고 말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변하는 것 없이 언제나처럼 똑같은 상담이었다. 곧 나는 상담 가는 것을 멈췄다. 항우울제도 먹지 않았다.


언제나 같은 일의 반복이었다. 내가 어떤 상황에서 아프게 되었는지 말해도 늘 똑같다.

얼굴의 큰 변화 없이 마치 프로그래밍된 말을 내뱉는 것 같은 빠른 진단 이후, 1분이 안되어 나는 진료실을 나선다. 시술을 다 합치면 한 3분 있으려나.

‘환자 분, 처방전 받아 가세요.’

솔직히 처방전은 안 봐도 알 것 같다. 저녁에 먹으면 졸리는 진통제가 있을 것이고, 항생제도 있을 것이다. 비염으로 가도, 염좌로 가도 마찬가지다.

내 몸의 나사를 조이는 것처럼 지극히 당연하고 빠르게 아주 기계적으로 모든 진료가 이뤄진다.


머리로는 이해한다. 매일 셀 수 없는 환자를 만나고, 그 환자들의 데이터와 전공 지식을 통해 빠르게 진료하고, 처방해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뭐 염증에 항생제와 진통제 그런 거 말고 다른 도리가 없는 것도 알고 있다. 상담이나 도수치료는 말할 것도 없이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피곤할 수밖에 없는 것도 안다. 알고 있다.

하지만 머리로는 알지만 병원에는 점점 가기 싫어진다. 어딜 가도 인테리어만 다른 프런트 직원, 사람이 바뀐 것 같지 않은 의료진의 진료와 처방.

내가 낫고 있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짧은 진료 후에 약으로 잠재우는 일상은 안 그래도 피곤한 일상을 더욱 피곤하게 만든다.

결국 조금 아픈 건 그냥 병원을 안 가게 되고 만다.


‘어차피 늘 똑같은 거. 조금 있으면 나아지겠지.’


안 나아진다는 것도 잘 안다. 증상이 며칠 참아서 없어진다고 해도, 피곤해지면 다시 도질 것을 알고 있다.

정말, 머리로는 다 안다니까. 하지만 눈 깜짝할 사이의 진료, 따라오는 결제. 나라는 로봇을 조정하는 듯한 미묘한 불쾌함을 지우는 것이 쉽지 않다.

나는 아픔을 느끼는 사람이고, 의료진들도 모두 사람이니까. 잠시 바라보고 키보드를 두드려 미리 정해진 처방전과 함께 진료가 끝나는 것이 아닌 조금은 치료받는 듯한 그런 진료를 받고 싶다.


그냥 투정이다. 나를 확인받고 싶은 투정이다.

논리적으로는 의료진도 사람이고, 시스템이 그런 것을 알면서도 이런 투정을 부리게 된다. 속상한 것을 못 이겨서 그렇다.

나는 인간이다. 아픔을 느끼는 인간이다. 최소한 내가 아파서 치료를 받을 때만큼은 그것을 확인받고 싶어서 그렇다.

매일 같은 시간 나와 같은 업무를 하고, 고장 나면 다른 부속으로 바뀌어도 아무도 모르는 평범하고 충실한 사회의 부속품이 되어버리는 것을 부정하고 싶어서 그렇다.


아플 때만큼은 늘 똑같은 사람이 아닌, 늘 똑같은 처방이 아닌 한 사람으로 취급받고 싶다. 아픈 것이 큰 일이고, 울고 웃을 수 있는 그런 사람 말이다.

기계같이 취급받는 것은 조금 많이 서럽다.


매거진의 이전글 90. 언젠가 밥 한 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