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내 ‘일상’은 곧 주말 이틀을 의미했다.극단적으로 그 둘을 구분했다. 평일은 회사에 바치는 시간으로 인식했다. 출퇴근 시간이 있었으나 내게 평일은 '회사의 날'이었다.그래서 항상 시간이 부족하고 내 일상을 누릴 시간이 부족하다고느꼈다. 그래서 힘들었다.
시간 부자가 되어 마음껏 일상을 살아보고 난 뒤, 사실 내가 일상에서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들이 그리 어려운 게 아니라는 걸 배울 수 있었다.
책 읽고, 걷고, 글 쓰고, 종종 맛있는 것 먹고, 요가하고, 음악 듣고, 자연 속을 거닐고, 몸을 움직이며 땀을 흘리고, 새로운 걸 배우고, 가족과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K와 일상과 생각을 공유하고, 이 모든 것을 또렷하게 인지하며 사는 것.
새로운 직장이 있는싱가포르로 떠나기 전 다짐했다. 어차피 붙잡지 못하는 시간에 연연하며 완벽한 자유시간이 오는 것을 기다리는 대신 모든 것을 내 일상으로 만들자고. 주말이나 공휴일만 내 일상이 아니라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 대중교통 안에서, 걷고 있을 때의 시간도 다 내 일상이고 삶임을 인지하며 살자고.
나는 일부러 회사와 아주 가까운 곳에 집을 얻었다. (사실 쿠알라룸푸르에서도 회사와 아주 가까운 곳에서 살았다. 그리고 잠을 더 많이 잤다.) 그리고 아침에 조금 일찍 일어나 준비를 하고 회사로 간다. 그렇게 되면 출근 시간보다 40분에서 한 시간쯤 더 일찍 도착한다.
그리고 사무실 근처의 카페로 향한다. 그 시간은 커피와 함께 하는 내 시간이다. 시간 부자였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어떤 날은 글을 쓰고 또 어떤 날은 책을 읽고, 또 어떤 날은 사진을 천천히 보면서 시간을 보낸다. 연예 뉴스를 보거나 시간 때우기용 인터넷 브라우징은 하지 않는다.
또, 회사와 가까운 곳에 요가 스튜디오를 등록했다. 되도록 매일 수업에 참여하려고 신경 쓰고 있다. 그리고 일부러 더 걸어야 하는 길을 선택하여 걷는다. 신기하게도 별 노력을 하지 않아도 하루에 만보씩은 걷고 있다.
특별한 시간만 내 시간이 아니라는 것, 모든 시간은 특별하고 조금 노력하면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작은 시간을 만들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짧은 시간이라도 결국 일상의 힘이 된다는 것, 그 모든 게 다 일상이라는 것. 회사에서 소비되는 가십거리에 시간과 에너지를 덜 쓰는 법을 배운 것이 결국 퇴사가 준 가장 큰 선물이었다.
꿈을 좇는 줄 알았지만 어느 순간 내 몸을 해치는 방식으로 살고 있음을 깨닫고이런 잠시 쉼표를 준 퇴사 이야기는 세상에 가득하다. 그만큼 어느 순간 벽 앞에 서있는 기분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내 경우, 그 벽을 깨고 그 후에 비로소 진짜 하고 싶은 걸 찾아 도전하게 되었다는 결말은 아니다. 아직도 '일'에 대한 고민은 마음속에 안고 산다. 하지만 '일'이 '벽'이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알게 됐다. 그러니 벽이 없어졌다.
오늘의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살다 보면 또 어떤 생각이 똬리를 틀기 시작할것이다. 그 똬리가 걷잡을 수 없이 꿈틀거리기 시작할 때 기꺼이 풀어줄 작정이다. 그게 나 자신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약속이다. 그전까지는 열심히 일을 하고 지금을 살아갈 것이다. 동시에 나를 더 아끼고, 오늘의 일상을 소중히 다루고어떻게 흘러갈지 지켜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