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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 버섯 사냥의 즐거움

베를린에서 새로고침 중

by 이나

독일에서 '버섯 채집'은 생각보다 인기 있는 취미 활동 중 하나이다.


독일 교외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을 보면 버섯 채집이 꽤나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취미인 듯하다. 으레 버섯 종류는 기본이고 어떤 것이 독버섯인지까지 본능적으로 구분하는 모습을 보면, 어릴 때부터 자연과 함께 자랐다는 사실에 한 끗쯤 부러움을 느끼곤 한다. 틱톡이나 인스타그램에 대형 버섯 전문 인플루언서들도 많은 걸 보면, 이 평화로운 사냥(채집보다 동적으로 들리고 싶어 선택한 워딩)은 그들 사이에서 꽤나 견고한 취미 생활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모양이다.


야생의 파라솔 버섯

버섯 사냥을 떠나고 싶다면 준비물은 다음과 같다.


버섯을 깔끔하게 따낼 작은 나이프와 흙을 털어낼 붓, 버섯이 상하지 않도록 형태를 유지해 줄 틀이 잡힌 가방, 중간에 배고플 때 먹을 간식, 그리고 몇 시간이고 숲을 헤맬 수 있는 편안한 신발과 옷차림. 여기에 모기 스프레이와 더불어 노상방뇨시 필요한 휴지까지 챙기면 완벽하다.


버섯 따기에 정해진 스팟은 딱히 없는 것 같다. 있다고 해도 잘 공유가 되지 않는다. 온라인도 그렇고 현지 독일 아저씨들도 그렇고 자기들 딴 버섯 자랑만 하지 정확한 스팟 공유는 해주는 꼴을 못 봤다. 그래 그들에게도 자기들만 알고 싶은 소중한 정보겠지..


우리는 그저 구글맵을 보고 적당히 내려서 '느낌 오는 대로' 숲으로 걸어 들어가서 트라이얼과 에러를 반복한다. (효율적으로 버섯 채집을 경험해보고 싶다면 전문가와 함께 가이드 투어 같은 것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으니 참고해도 좋겠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은 버섯이 이미 씨가 말랐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정해진 길에서 조금씩 이탈해보는 모험이 필요하다. 아, 그리고 거미줄과 덤불도 많으니 걸어다니면서 앞과 바닥의 시야를 동시에 모두 확보하며 버섯을 찾아내는 뛰어난 동체 시력과 집중력도 요구된다.


눈에 띄는 것은 독버섯일 확률 98%


내가 사는 베를린 근처에서 버섯 채집을 할 만한 곳은 생각보다 한정적이다. 주로 나와 친구는 베를린 외곽에 있는 숲인 Grunewald 같은 곳으로 탐방을 나선다. 큰 숲인데도 불구하고 그리 버섯이 많지는 않다만, 베를린 내에는 옵션이 몇 없기에 매번 여길 찾게 된다. 버섯이 잘 자라는 조건은 생각보다 까다롭고 버섯이 좀 있다고 해도 숲의 터줏대감인 야생 돼지들이 이미 훑어갔을 확률이 높기에 버섯 사냥은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린다.


이 버섯 사냥이라는 게 포켓몬 고처럼 중간중간 버섯이 보이면 도파민이 샘 솟으며 계속해나 갈 맛이 나겠지만, 현실은 한 시간을 훌쩍 넘기도록 야생 돼지가 한 입 먹고 버린 버섯들, 독버섯, 이미 웃자라서 먹을 수 없는 버섯만 널린 숲에서 허탕을 치기도 한다.


그렇게 소득 없이 한 두 시간 숲을 헤매다 보면 인내심이 바닥나기 시작하고, "대충 마트에서 사다 먹으면 안 되는 거냐"라고 절로 한마디를 내뱉게 된다. 그러나 직접 채집하는 버섯 중에는 양식이 불가능한 종이 많아 시중에서는 아예 구할 수 없는 것들이 태반이니 모르면 조용히 하라는 독일 친구의 핀잔이 돌아온다. 시중에서 파는 버섯과는 향과 풍미의 차원이 다르다고 하니 조금 더 참아본다. 그러다보면 운명적으로 한 두곳씩 버섯 스팟을 발견하게 되고 드디어 귀가할 수 있게 된다.

세시간 사냥의 결과물


소중한 버섯과 함께 집에 도착하면, 버섯 채집의 마무리 단계이자 이 날의 하이라이트, 바로 버섯 요리 시간이다. 주메뉴는 언제나 크림 버섯 파스타다. 버섯 특유의 향을 가리지 않으면서도 곰손도 실패할 위험이 적은 메뉴이기 때문에 자주 해 먹는다.


운 좋게 파라솔 버섯을 왕창 따는 날도 가끔 있는데, 이 날은 버섯 튀김으로 잔치를 할 수 있다. 향은 약하지만 부피가 크고 튀겼을 때 질감이 탁월하고, 직접 딴 버섯을 그 자리에서 갓 튀겼으니 한입 물었을 때 그 만족감은 말해 뭐할까. 여기에 귀갓길에 고심해서 골라와 냉장고에 칠링해둔 화이트 와인 한 잔까지 곁들이면 호사스러운 하루의 마무리를 할 수 있다.



버섯 사냥을 다녀와 집에 돌아와 씻고 요리하고, 길고 풍요로운 저녁 시간으로 과식을 하고 나면 하루가 훌쩍 가고, 밤에는 꿀맛 같은 단잠을 잘 수 있다. 다음 날 아침에는 피곤함과 어제 먹은 요리의 염분과 알콜로 인해 팅팅 붓고 여기저기 근육통으로 조금은 고생할 순 있겠지만. 번거로움과 시간, 그리고 노고가 주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 마트에서는 절대 살 수 없는, 어쩌면 이 내 손으로 처음부터 일궈낸 만족감이야말로 버섯 사냥이 주는 진짜 즐거움이 아닐까.


그게 아니라 낭만이에요 아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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