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들이겠습니다, 소망을 품겠습니다.
우리 삶은 묘한 면이 있어서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인생의 커다란 전환도 계획과 관계없이 부지불식간에 다가오기도 하고. 돌이켜보면 첫 직장, 결혼, 퇴사 무엇이든 그랬던 것 같다.
과거 거슬러 올라가 2022년 3월, 나는 잊을 수 없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나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로 마음먹은 상태였다. 그리고 나의 죽음을 돕는 조력자가 등장했다. 나는 그에게 총을 건넸다. 그런데 처음 결심과는 다르게 죽음을 피하려고 갑자기 냅다 뛰었다. 그러다 등에 총알이 박히는 생생함을 느끼며 잠에서 깼다.
친구가 꿈 얘길 듣고 "유진의 무의식이 뭐라고 이야기하는지 한 번 생각해 봐"라고 말했다. 바로 답할 수 없었지만 얼마 뒤 이 꿈과 연결되는 현실 세계의 사건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 현실 세계의 사건이 바로 '사업을 종료하기로 한 결정'이었다.
공동창업한 스타트업을 4년 동안 이끌어 오면서 크고 작은 위기들을 겪었지만, 유독 그 겨울은 벼랑 끝에 선 것 같은 마음이었다. 월요일이 시작되면 일에 치여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었지만, 주말이 되면 '더 버틸 수 있을까?'란 물음표가 불쑥 튀어나오곤 했기 때문이다. "이 여정의 끝이 어디일까? 언제일까?" 그런 질문이 불쑥 튀어나오곤 했다.
묘한 꿈을 꾼 지 3-4일쯤 흘렀을까. 대표와 사업 종료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대표의 말을 듣는데 '끝이구나' 싶었다.
어떻게든 달려서 끝까지 피하고 싶었던 끝. 하지만 동시에 안도감도 느꼈다. 원하면서도 원치 않는 '끝'은 두렵고도 자유로웠다. 꿈에서 느낌 감정과 같았다.
그 꿈은 나에게 멈추어야 할 때를 알리는 사건이었다. 사실 언제 멈추어야 할 지를 머리로(이성적으로) 판단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었다.
사업을 중심에 두고 삶을 꾸려왔던 일상. 팀에 대한 책임감. 일을 제대로 해보고 싶은 열망을 품고 세종을 떠나 서울 복귀를 선택한 것. 아이를 가질 계획이라면 직장에는 소속되어야 한다는 막연한 불안감.. 여러 복합적인 사정들이 있었으니까.
내 안의 무의식이 제가 어떤 결심을 하도록 꿈으로 어떤 사건과 메세지를 보낸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끝'에 대해 생생히 감각할 수 있도록, 다가올 변화의 의미에 대해 민감해질 수 있도록, 멈출 용기를 갖도록.
어려운 결정을 한 지 시간이 흐른 지금이라고 '끝'의 의미를 온전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끝은 단순히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아니라는 거였다. 땅의 끝은 바다의 시작이고 바다의 끝은 땅의 시작이듯, 끝은 새로운 시작이니까.
2022년 10월에 짧게나마 제주에서 휴식기를 보냈다. 그런데 교통수단으로 이동하면 날씨가 맑아지고, 도착하면 비가 내리는 거 아닌가? 그런 패턴이 여러 번 반복되었다. 난 직감했다. “내가 올해 참 운이 없구나.“
슬퍼하는 나릉 보면서 동생은 “제주 날씨는 원래 오락가락해” 라고 말했다. 게다가 제주 토박이 택시 아저씨마저도 "오늘 아침 날씨가 좋아서 세차했는데 갑작스레 비가 왔다"고 하고.
그렇다.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건 바로 내 생각이었다. 내가 만든 이야기 '날씨 요정이 날 싫어한다'와 같은 불운의 스토리텔링에 빠져있던 거다.
불행에 대한 스토리텔링은 '의미 부여하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딱 맞는 습관이었다. 그것이 스스로 고통을 자초하는지 모르고. 힘든 일에 아무런 이름을 붙이지 않으면 괜찮아질까? 그대로 내버려두면?
제주여행의 마지막 목적지인 취다선 리조트에 도착했다. 취다선은 명상과 다도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는 숙소였다. 본래 명상을 좋아해서 간 건 아니었다. 요가를 배울 때도 맨 마지막에 바닥에 누워서 평온히 쉬는 '사바사나'를 1분도 견딜 수 없어 했으니까.
불운의 스토리텔링으로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했던 나로써 ‘삶은 고통’이라고 말하는 가르침이 궁금했다. 그렇게 취다선의 첫 명상 프로그램으로 <히말라야 싱잉볼 명상>을 들었다. 강사님은 싱잉볼 명상을 '소리 목욕'이라고 부르셨다. “싱잉볼 소리의 진동을 통해 내 몸에 흩어진 에너지들 중 버려야 할 것은 버리고 집중할 것은 집중하는 시간"이라며. 나즈막히 만트라를 외우시며 싱잉볼 소리를 들려주셨다.
싱잉볼의 둔탁하면서도 멀리 퍼지는 소리가 낯선 공간으로 들어온 날 환영해주는 것 같았다. 만트라는 도저히 하나도 이해할 수 없는 언어였지만 강사님의 나즈막한 목소리가 마치 우는 것 같았다. 옆 사람이 울기 시작하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는 습관 때문인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첫 명상 후, "(고통을) 받아들이겠습니다"를 되내며 혼자 명상하기 시작했다. 성경 말씀 구절 중 "내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소서"의 의미는 고통에 대한 의미 부여를 멈추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지는 노을을 보면서 계속 되내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다음 날 아침 뜨는 해를 보면서 다시 되내었다.
“소망을 품겠습니다.”
열림은 우리의 능력을 보여주고 닫힘은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여러 개의 길이 닫히고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는 경험을 안전한 땅으로 내려서게 하려는 신의 손길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위대한 멈춤> 박승오, 홍승완
길이 열리는 것도 닫히는 것도 우리 뜻대로 되지 않을 수 있지만 마음 한 켠에 소망을 품기를 바래본다. 나는 지금 어떤 길 위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