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인 지표(?)로만 봤을 때 딱히 불행한 가정에서 자라지는 않았다. 먹고 사느라 바빠 다른 걸 신경 쓸 여력이 없고, 조부모의 방임 속에 부모 자식 간 교감이 어떤 건지 배우지 못한 불완전한 부모 아래서 자라긴 했다. 부모도 저마다 가슴에 사무치는 정서적 결핍이 있는 사람일 뿐이라는 걸,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그들이 살아온 방식이 그들에겐 최선이었다는 걸 조금이나마 납득하기 시작한 게 얼마 되지 않았다. 부모가 주지 못한 것보다 그 와중에도 준 것을 볼 줄도 아는 소갈머리가 생긴 건 남편 덕도 크지 않나 싶다. 부모에게서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랑을 마음껏 주고, 받고, 부족하면 때로는 더 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할 수도 있는, 온전히 내가 만든 이 가족은 나에게 그런 마음의 여유를 줬다.
어제는 하루 종일 서로 일하느라 이야기도 하는 둥 마는 둥 했고, 저녁엔 약속이 있어 외출했다 돌아오니 남편이 일찌감치 잠든 바람에 오늘 아침에서야 제대로 얼굴을 봤다. 눈 뜨자마자 항상 있는 그 자리에 있는 남편이 너무 반갑고, 하루를 시작하며 보는 사람이 이 사람이라 행복했다. 아기들이 부모를 보고 까르르하고 웃는 기분이 이런 걸까. 애착관계가 부모와 잘 형성되지 않은 사람도, 신뢰하는 멘토나 파트너, 친구와 다시 재양육 과정을 거치며 건강한 애착관계 형성이 가능하단 말을 어디선가 봤다. 재양육이라니. 다 큰 어른이지만 결핍 투성이인 사람이 다른 사람을 통해 한 뼘 두 뼘 자랄 수 있다니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품은 말인지. 좋은 친구들을 만나면서 사람을 신뢰하고 아끼는 법을 배운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나는 남편을 만나면서 그런 애착관계를 다시 구축한 게 아닌가 종종 생각한다. 매일 보지만 여전히 긴 하루를 보낸 후 눈을 마주치면 반갑고 좋은 사람이랑 같이 살아서 대체로 행복하다. 부족한 걸 서로 넉넉히 채워주는 우리만의 가족을 만든 우리, 새삼 대견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