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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순찬 Jun 30. 2021

잠들지 않는 수업

[사범대 다니면서 임용 걱정 없이]

 

 포기를 가장 많이 목격하는 직업이 아닐까? 수학교사 말이다. 수학을 포기한 아이들을 데리고 수업하는 건 참 어려웠다. 자는 아이들을 보는 일은 참 어려웠다. 어렵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힘들다는 뜻이다. 어려웠다라고 과거형으로 말하는 것은 지금은 익숙해졌음을 의미한다. 현실적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물리적인 부분에서는 여전히 어려움이 있지만, 마음은 에너지는 크게 소모되지 않는다. 처음에는 아이들을 탓했으나 지금은 나를 탓하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내 수업을 안 듣는 것은 엄청 아까운 일'이 될만큼 좋은 수업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이들이 엎어지는 순간은 마음이 힘들다기보다는 오히려 나 스스로를 자극하고 독려하게 되는 순간이 된다.

 처음에는 방법적인 부분들을 많이 고민하게 되었다. 모든 아이들이 참여하는 수업. 멘토-멘티로 발표를 시키면서 수학이란 것을 넘어 협력적으로 자신이 어려움을 겪는 것을 해결해나가는, 도움을 받는 연습을 시키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늘 한계를 느꼈다. 고3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서는 더욱 크게 느꼈다.

 농구 스포츠클럽을 운영하면서 공을 갖고 뛰어 놀 때, 수학 수업에서 보지 못한 아이들의 환한 미소와 환희를 보며 체육 교사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적어도, 엎어지는 아이들은 안 볼 수 있는 수업이라고 생각했다. 아둔한 나는 체육 교사가 겪는 고충까지 생각하지 못했었다. 내가 본 그 '미소'를 체육시간에 만들어줘야 한다는 매 교시마다 '부담'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수학 수업에서는 절대 느끼지 못했던 부담이다.

 이제는 수학 수업을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보면서도 꽤나 건강하게 상황을 극복해나간다. '좋은 수업'에 대한 의지로 말이다. 스스로를 독려하면서 수많은 업무와 다른 일들 속에서 '좋은 수업'을 만들고 싶은 마음은 해가 갈 수록 강하게 느낀다. 다행히, 해가 갈 수록 내 수업에 대한 아이들의 집중도는 더 높아진 것 같다. 처음에는 나도 확신과 자신감이 부족하다보니, 그런 기운이 전해지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은,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고 수학적 사고를 하는 법, 또한 수능 성적을 올리기 위한 수학 공부에 대한 나름의 방법론과 철학이 세워져있어 3~4년 전보다는 훨씬 자신감 있는 태도로 교실에 들어간다. 아이들의 집중도가 진짜 높아진 것인지, 교실이 외적인 모습이 변한 건 없지만 내 마음이 달라진 탓인지, 선언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내 마음이 달라진 건 사실이다.

 고3 때 소소한 꿈이 생겼다. 꿈이 생긴 이야기는 물리 선생님으로부터다. 나는 그때 물리 선생님으로 물리를 참 잘 배웠다. 수능선택으로 물리Ⅱ를 하기도 했다. 학교에서 물리 선생님께 학문적으로 도움을 가장 큰 도움을 받았다고 느꼈다. 그래서 고3 1학기 때 여름방학 계획을 세우면서 방학 보충수업으로 물리 수업을 듣기로 마음 먹었다. 그런데 왠걸, 물리 선생님이 연수를 가신단다. 그때는 선생님이 원망스러웠다. 고3을 두고 어딜 가시다니(그것이 1정 연수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런 약간의 원망 속에서, 나도 보충 수업을 열지 않으면 '원망'을 받는, 보충 수업을 열어주었으면 하는 '기대'를 받는 수학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6년차 만에 처음이었다. 어떤 아이가 찾아와 물었다. 

 '선생님, 이번 방학 때 보충하세요? 보충수업 열어주시면 안돼요?'

 또 다른 아이가 찾아와 물었다

 '친구가 말하길 이 보충수업이 언니들 후기가 좋다던데, 어떤 거에 도움되는 수업이에요?'

 나의 소소한 꿈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고3 담임 여름방학은 생기부 기재와 입시지도로 은근히 바쁘기 때문에 수학 보충이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아이의 말을 듣고 2학기에 시작하려던 수학 보충을 여름방학부터 하기로 마음먹었다. 찾아줄 때가 좋은 때라는 마음으로.

 엎어지는 아이들은 내가 직접 흔들 수도 없다. 소리를 내거나 옆 친구한테 깨워달라고 부탁하면, 찡그린 표정이 나올것 같긴 느낌이 마구 몰려온다. 입소문이 퍼질 정도로 좋은 수업이 되서, 잠들면 완전 손해라는 수업을 만들고 싶다. 그 바람과 욕심만큼 노력을 하냐고 스스로에게 묻는다면, 여러 핑계를 대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나도 수업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다면' 이라는 가정으로 나 자신을 보호한다. 여유는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던 청년이었는데, 어느 새 나도 힘에 부치나보다. 그래도 놓아버리고 싶지는 않다. 돈을 더 버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럴까. 아이들한테 도움을 주고 싶어서? 아니. 결국에는 '나를 찾고 싶어서' 일 것 같다.

 어릴 적, 선생님이 무서워 억지로 쏟아지는 잠을 참고 수업을 들었다. 내 아이들은 내 수업을 놓치는 게 무서워 억지로 쏟아지는 잠을 참고 수업을 듣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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