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 일기
처음으로 경험했다.
아이들이 나를 반기지 않았다.
새 학년도 확률과 통계 수업을 들어갔다.
그 반은 미적분과 확통 두 수업 모두 내가 들어가는 반이다.
나는 다양한 사람을 통해 다양한 배움을 얻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인지라
두 개의 수학 수업에서 나만을 만나게 된 것에 대하여 미안해 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어느 학생이 물었다.
"선생님. 저희 미적분 수업도 들어오세요?"
"응"
아...(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탄식)
올해, 신임으로 오신 젊고 잘 생기고 키 크신 선생님께서
수업에 안들어온 것이 아쉬운 듯 한 모양이다.
다른 3학년 반은 들어가는데 말이다.
그 선생님은 거의 학교에서 연예인이시다.
교단에서 멘탈이 강한 나였는데, 살짝 움찔한 순간이었다.
처음 겪어보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서는 '시간의 야속함'을 얘기하고 만 것 같다.
언젠가 맞이할 순간이라고는 생각했었지만
4년차만에 맞이할 줄이야 ㅋㅋ
상처까진 아니지만(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상처란 뜻인가?ㅋㅋ),
그 장면이 계속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첫 번째 생각,
'내가 신임으로 왔을 때, 좀 더 겸손한 태도로 지낼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건방졌거나 내가 누린 약간의 인기(?)를 즐긴건 아니다.
하지만, 나로 인해 주변 일부 선생님들께서 느끼셨을 수도 있는 감정을 생각하면,
'내가 좀 더 자세를 낮추고, 선생님들께 더 많은 것들을 구하며 지낼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생각,
내가 그 때 반응을 잘한건가? 더 바람직하고 교육적인 반응은 뭐였을까?
세 번째 생각,
나는 정말 괜찮은가? 괜찮은 것 같긴 한데 왜 자꾸 생각이 드는거지?
네 번째 생각,
아이들이 먼 훗날, 외모 때문에 누군가에게 반김을 받지 못한다면 건강한 마음으로 넘길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다섯 번째 생각,
아마 내일이나 조만간, 혹은 앞으로도 쭉 겪게될 오늘 같은 일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이 생각으로 귀결되는 듯 하다.
분명, 아이들이 언젠가 외모 때문에 어떻게 평가받을까 걱정하고, 심지어는 나처럼 누군가에게 '반기지 않음'을 느낄 수도 있을텐데
그때도 자신의 자존감과 존엄을 지켜내길 바란다. 자신의 소중함을 생각해볼 기회로 삼으면 참 좋겠다.
그러러면, 내가 먼저 그런 모습을 보여야겠지. 찐따같이 너무 미안해 하지말고, 나대로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나 자신을 사랑하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지금처럼 보여주면 되겠다 생각했다. 딱히 솔루션은 없다.
나는 원채 나 자신을 소중히 하니까 그냥 그대로 보여주면 되는 것 뿐이다.
나다움을 잃지 않고, 존엄과 자존감을 지켜나가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두 수업 모두 내가 들어가는 것은 미안한 일은 맞다.
허나, 생판 모르는 관계에서 잘 생긴 신임 선생님이 아닌 내가 들어간 것을 미안해하지 않으려 노력해야 겠다.
괜히, 미안해하거나 쭈뼛거리는 것이 아이들에게도 도움될 만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만약, 내가 미안해한다면, 아이들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이런 일로 미안해하는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미안해하며 자신이 갖고 있는 가치보다는 다른 것에 더 의미를 두게 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재밌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