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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비스망 Dec 04. 2024

Part1-2. 반짝반짝,빛을 품은 나를 다시 만나다

그러는 와중에 난 나도 모르게 나를 구원해 줄 누군가를 찾아 헤맸다. 특별한 종교를 가진 적은 없었으나, 어린 시절엔 절이나 교회에 나가는 것이 작은 즐거움 중 하나였다. 부처님은 이런 불쌍한 나를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공감해 줄 것 같았고, 하나님은 간절하게 기도만 하면 어떤 문제든 척척 해결해 줄 것 같았다. 왠지 보이지 않는 저세상은 보이는 이 세상보다 진실되고, 공평하고, 따스하리라 느껴졌다. 그러한 믿음은 내가 살아가는 시간의 희망이 되곤 했고, 성인이 되어서는 이 세상이 돌아가는 과학 법칙, 원리 등을 탐구하는 것을 즐겼다. 


그런데 부처님께, 그리고 하나님께 억울함을 호소하고, 불평불만하고, 소원을 들어달라고 떼를 써도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난 여전히 오래도록 착하고 불쌍한 피해자로 남아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렇게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안식을 찾는 것이 ‘회피’라는 것을 처절하게 깨달았다. 그 후 나는 이 세상에 더 발을 단단히 딛고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면서 무의식적으로 계속 자행하고 있었던 피해자 코스프레는 그만하기로 했다. 


그렇게 결심한 후, 내 몸속 깊이 뿌리 막혀 있던 아주 오래되고 깊은 트라우마를 마주하며 한동안 아주 깊은 어둠의 시간을 홀로 보내기도 했다. 나에게는 많은 고통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나의 일부로, 우리 사회의 일부로, 이 세상의 일부로 깊게 각인되어 버린, 그래서 윤리적, 도덕적, 관습적 잣대로 어떤 것을 감정적으로 판단하고 비판할 수밖에 없었던, 그로 인해 누군가는 가해자가 되고 누군가는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혹은 자신을 자책하고 책망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고통 말이다. 


그런 것들과 멀리 거리를 두어 공간을 만들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삶은 조금씩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그 고통의 대부분은 나도 모르게 화석처럼 굳어버린 신념, 나도 모르게 내 무의식에 뿌리 깊게 각인된 믿음, 정작 나조차도 어찌할 수 없었던 부정적 감정 등으로 말미암은, 어떤 타당하고 합리적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한 사실을 알게 되면서 처음으로 멈춰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남 탓’이었다. 나를 사랑해 주지 않고 아들만 사랑해 준 부모님 탓, 나를 인정해 주지 않는 멍청한 상사 탓, 불공평하고 정의롭지 않은 사회 탓 등등… 

그리고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춰 살려 애쓰는 것도 인제 그만 하기로 했다. 남들 보기에 좋은 직장, 남들 보기에 좋은 취미, 남들 보기에 좋은 물건 등등… 

 

남들의 인정에 목을 매기보다 ‘나’ 자신을 라이프스타일의 기준으로 삼기로 하면서, 자투리 시간에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나 자신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고유의 즐거움, 설렘, 흥미 등의 단서들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기 시작했다. 


점점 난 남들의 평가와 인정보다는 내 취향과 가치관을, 남들이 나를 보는 시선보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가치를 소중하게 돌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나를 겹겹이 둘러싼 어둠의 단단한 껍질을 조금씩 벗겨내기 시작했다. 







빛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다만 이것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사람만 있을 뿐이다.”


그동안  켜켜이 묵혀 방치된 뿌리 깊은 피해의식, 열등감, 남 탓  등은 아직도 내 안에 무수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렇게 자욱한 먼지들이 그곳에 있음을 알아채는 순간, 그것을 청소할 기회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뿌연 먼지 속에서 숨을 참아가며 괴로워하지 않고, 보이는 먼지를 털어내면 그만이다. 


그렇게 계속 먼지를 털어내다 보면 아주 미비한 수준이라 할지라도 내 안의 희미한 ‘빛’을 가끔 느끼게 된다. 그것은 때로는 ‘사랑’으로, 때로는 ‘감사’로, 때로는 ‘연민’으로 느껴지곤 한다. 이렇게 내 안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순간은 대부분 고요하게 ‘마음챙김 명상’을 할 때다. 밖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잡음들, 매몰차게 들이대는 가차 없는 판단들, 불같이 타오르고 꺼지고를 되풀이하는 무수한 감정의 찌꺼기들을 걷어내고 오로지 현재에 집중하는 그 순간들 말이다. 


그 순간은 무거운 가면을 쓴 ‘거짓 나’가 아닌, 너무 아름답게 빛나는, 그동안 드러내 주기를 간절히 바라왔던 진짜 내 모습을 마주하는 감동을 주는 순간이다. 그리고 나뿐 아니라 상대의 빛나는 모습을 발견하고 진심으로 존중할 수 있는 축복 가득한 순간이다. 또한 점차 나를 둘러싼 모든 존재들에게 연민, 사랑, 배려, 친절, 감사, 겸손과 같은 가치를 발견하게 되는 신성한 순간이다. 


더 나아가 급속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인간이 태어난 이유와 목적, 인간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 나와 당신이 추구해야 할 숭고한 가치, 그리고 이렇게 서로 다른 우리가 지구라는 한 지붕 아래서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그 이유를 느낄 수 있는 가슴 뭉클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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