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과거의 기억 그러나 현재 진행형이기도 한 크고 작은 기억들로 인한 휴유증이 나를 계속 피해 의식 속에 머물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피해 의식으로 인한 뿌리 깊은 분노는 내 삶에 '무기력'으로 빈번히 나타났고, 이 무기력함은 대부분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적당히 사회에 맞춰주는 삶을 살아가게 했다.
• 어린시절
또래보다 조금은 무겁고 진중했던 아이. 친구들과 어울려서 천진난만하게 뛰어다니며 놀기보다 홀로 있는 것을 더 좋아했던 아이. 그러한 탓에 친구 사귀기가 녹록지 않았던 아이. 가벼운 농담도 다큐를 만들어버리는 그런 아이. 물론 순진무구하고 해맑고 가벼운 면모도 있었지만, 내 기억 속의 나는 어린 시절의 나를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학창 시절 또래 친구들과 놀이를 그다지 즐기지 않다 보니 학교 점심시간에 같이 도시락 까먹을 친구를 만드는 일, 인적 사항 에 친한 친구를 적는 공란을 채우는 일이 큰 고민 중 하나였다. 이런 성향은 가족들 간에도 마찬가지였던지, 또래 사촌들로부터 내게 혼자만 고고하고 고상하게 있지 말라는 핀잔을 종종 듣기도 했다.
• 가족에서
난 꽤 보수적인 종갓집에서 1남 3녀 중 셋째 딸로 태어났다. 요즘 세상에 상상조차 할 수 없겠지만 우리 집은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을 구호처럼 외쳤고, 난 ‘여자가’라는 소리를 매번 입버릇처럼 들어야 했다. 엄마는 아들인 종손을 낳아 종부로서 집안의 대를 이어야 했고, 언니 2명도 모자라 세 번째로 이 세상에 나온 여자 사람인 나는 당연히 태어날 때부터 천덕꾸러기였다. 나와 남동생 도시락 반찬의 질은 사뭇 달랐고, 나는 구경조차 해보지 못한 유치원이란 곳에 남동생은 내가 사는 지역에서 최고가는 유치원에 버젓이 다니곤 했다.
이런 탓에 한동안은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이가 없게도) 유치원을 다니지 않았다는 게 숨기고 싶은 과거 중 하나였고, 이것은 마흔쯤이 다 되어서야 겨우겨우 치유될 수 있었던 나의 깊은 트라우마이기도 했다.
• 직장에서
일일이 열거하긴 어렵지만, 이런 ‘여성'에 대한 피해 의식은 유독 남성 중심의 권위주의적 문화가 지배하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더해만 갔다. 여성으로서 아주 당연시되는 여러 종류의 비합리적인 피해를 겪으면서도 이상하리만큼 놀라운 사실은, 내가 이런 종류의 피해를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합리적 수준에서 정당한 보상을 요청했거나 나를 충분히 PR 할 수 있었던 상황에서조차, 난 정말 어이없게도 겸손과 배려가 지나치고 성실하기 그지없는 착한 여자 직원이었다. 우리 사회가 좋아하는 실행력은 어느 정도 인정을 받기도 했지만, 이 역시 너무 쉽게 이용당하기 일쑤였다.
이러한 피해의식에 더해, 사회에 나와서 경험한 외부적 환경은 내 삶을 더욱 퍽퍽하게 했다. 그야말로 살벌한 경쟁이 끊이지 않는 야생과 다를 바 없는 전쟁터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다. 어느 정도 네임 밸류 있는 회사에서 일도 잘하고, 우수한 성과도 내고, 사람도 좋다는 평가를 받으며 남들에게 그럴싸하게 보이고 싶어서 매진했던 시간이었다.
그런데 사회가 요구한 기준에 맞추려고 노력할수록 이상하게 삶이 더 나아지기는커녕 더 지쳐만 갔다. 항상 노력은 더 큰 노력을 요구하게 되고, 남을 위해 행했던 배려나 선행은 곧잘 희생으로 이어지곤 했다. 그렇게 나는 어느새 완벽한 피해자가 되어 있었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서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밤
저 안에 땡볕 두어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달이 들어가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 장석주 시「대추 한 알」
흐르는 시간은 흐름과 함께 마땅히 자연을 영글게 한다고 하지만, 태풍과 천둥과 벼락이 나에게 불어닥치는 그 순간만큼은 세월이 나를 영글게 하려는 그 의미는 전혀 찾지 못한 채 그것이 고통이나 시련으로만 느껴질 뿐이다. 비로소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보이기 시작하는 때는 태풍과 천둥과 벼락을 모두 다 맞고 그것이 지나간 이후라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뒤를 돌아서 내가 지나온 발자국이 어떤 궤적을 남겼는지 바라보기 전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한 알의 영글어진 대추를 만들기 위해 비바람의 모진 시련의 시간이 필요하듯, 세월 또한 단단하게 영글어진 우리 모습을 만들기 위해 지금 당장은 이해할 수 없는 사건 사고가 필요했던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