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과 이별하는 일 D-15
브런치 글을 발행하면서 매번 가장 걱정되는 건 '혹시나 내 글이 런던과 사랑에 빠져 반쯤 허우적 대는 사람의 영국 예찬론으로 보일까'다. 개인적으로는, 세계 어느 나라도 좋은 나라, 나쁜 나라로 구분 지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거주지에 자부심을 느끼는 건 상당히 위험한 생각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어떤 장소에 대해 선호가 아니라 우열을 나누는 건 쉽게 인종차별과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대의 삶을 런던에서 시작했기에 런던이라는 도시와, 영국이라는 나라에 애정은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내 애정은 살아본 적 없는 이탈리아에도 있고, 최애 음식들의 본고장인 태국에도 있고, 태어나고 자란 한국에도 있다.
히드로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느끼게 되지만 런던은 다양한 인종,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상생하는 도시다. 수많은 다양한 문화들이 제 모습을 지키기도 하고, 현지화가 되기도 하면서 런던이라는 상당히 작은 도시에 밀집해서 산다. 멀리서 보면 상생을 잘 이루고 있는 것 같고, 이런 다문화 국가에서는 인종차별을 당하지 않을 것 같지만 아쉽게도 영국에는 인종차별이 존재한다.
우스운 게, 인종차별을 하는 덜 떨어진 인간들에게도 갓 영국에 온 사람은 티가 나는지, 인종차별을 가장 많이 당했을 때는 유학을 하러 왔던 2015년 첫 해였다. 그때는, 걸어가는데 '니하오'나 '곤니찌와'라고 손을 합장하고 내 앞을 지나가는 건 예사로운 일이었고, 뒤에서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놀라게 한다거나, 택시를 타고 가는 차 안에서 원숭이 흉내를 내면서 지나간다거나 하는 일도 있었다.
21살의 나는 적잖은 상처와 충격을 받았다. 가뜩이나 ISIS 테러가 유럽 내에서 심심치 않게 발발하던 때라 영국이 안전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데다가, 인종 차별까지 당하니 영국에서 사는 게 꽤 무섭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때 내가 생각했던 해결 방법은, 지금 생각하면 짠하고 안쓰럽지만, 머리를 탈색하는 일이었다. 미용 목적도 있었으나, 금발을 하면 최소 뒤에서 깜작 놀라게 하지는 않을거라는 작은 기대가 있었다.
아마 '여기 사람'이 되고 싶었던 어린 나의 필사적인 노력이었던 것 같다. 슬프게도, 금발을 하니 최소 백인을 우상하는 아시안이라고 생각했는지 (금발을 하는 게 백인을 우상 해서 하는 거 절대 아닌데! 예뻐서 하는 건데!), 길거리에서 갑작스럽게 인종차별을 당하는 일이 1/10 정도로 줄었다. 어쩌면 그땐, 20대 초반이라 더더욱 어리고 여린 동양 여자애라는 생각에 그렇게 심한 인종차별을 당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이유야 어쨌건 차별을 당하는 쪽에 있지 않다는 건 분명하다.
그다음, 내가 겪었던 인종 차별의 종류는 마이크로 어그레션(Microaggression)이었다. 마이크로 어그레션은 일상생활에서 의도와 상관없이 말이나 행동으로 특정 집단에 대한 적대감, 경멸, 무례함, 부정적인 편견을 보이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차별은 정말 미묘하고, 약아서 처음에는 알아차리기 힘들다. 그러나 누군가가 '너는 아시안이라서 다르니까, 직장 구하기 더 쉬울 거야! 요즘 다양성이 대세잖아' 라던가, '넌 그럼 영국 남자랑 결혼해서 영국에서 사는 게 꿈이야?' 같은 편견 어린 개소리를 들었다면 이는 마이크로 어그레션에 해당될 수 있다. 마이크로 어그레션이 꼭 인종차별적인 개념만은 아니지만, 이런 언사의 경우는 특정 인종에 대한 무시, 까내림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므로 인종차별이라고 볼 수 있는 것.
말뿐 아니라 행동으로도 마이크로 어그레션을 보일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이렇다. A-B-본인-C 이렇게 앉아있는 상황에서 본인만 아시안이고, 나머지는 서양인일 때, 의견을 묻는 자리에서 본인만 쏙 빼놓고 얘기하는 일 같은 것이다. 이런 종류의 차별이 학교에서 특히 자주 일어나는데, '아시안은 조용하고, 쑥스러움을 많이 타고, 영어를 잘 못한다'는 편견을 가지고 하는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다수의 사람이 나를 무시하는 게 꽤 두렵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그럴수록 기죽지 말고 더 참여를 해야 그 편견의 벽을 깰 수 있다. (그러나, 그 편견을 부수지 못한다고 해도 그게 당신 잘못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을 할 때 참여시켜주지 않는 게 인종차별이 아니라 언어 차별이라고 하기도 한다. 언어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사람과, 쓰지 못하는 사람과의 어쩔 수 없는 차이라고. 하지만 어떤 차별이 됐든 간에 차별은 차별이며,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게 개인적인 소견이다. 혹시나 언어 능력의 차이라고 하더라도, 그 자리의 구성원인 이상 무시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것과 같은 존중과 대우를 보이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
지금 나는 새까만 머리를 갖고 있다. 검은색도 염색을 거친 머리색이긴 하지만, 까만 머리로 영국에 다시 돌아온 건 일종의 선언이었다. 내 백그라운드를 존중하고,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으면서 살겠다는. 스스로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차별받지 않겠다는 혼자만의 약속이었다.
한국의 입지가 런던에서 커지기도 했고, 그동안 시간이 더 지났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런던에서의 차별은 체감상 많이 줄었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게 된 건, 코로나 19로 인해 각국에서의 참았다는 듯 터지는 아시안에 대한 혐오, 차별적인 행동들에 마음이 많이 상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코로나에 의한 차별을 런던에서 느끼고 있지는 않지만, 이 사태가 조속히 해결되어 누구나 걱정 없이 해외여행을 가고, 걱정 없이 해외에서 거주할 수 있는 날이 다시 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