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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lamola Feb 20. 2020

영국에서 아플 때

런던과 이별하는 일 D-16

타지에서 아프면 정말 서러운 데다가, 머피의 법칙이라고 꼭 아플 때 일도 많아진다. 그럴 때면 그냥 한국처럼 예약 없이 바로 진료가 가능한 내과에 가서 주사 한 대 맞고, 본죽 가서 호박죽 한 그릇 먹고, 집 천장 무늬를 세다가 잠들고 싶어 진다.  


오늘이 딱 그런 날이었다. 몸은 으슬으슬 춥고, 감기 기운이 도져서 너무 아파 쉬고 싶은데 3주가 넘게 안 잡히던 방 뷰잉이 갑자기 잡히던 날. 뷰잉을 당일 날 통보받는 바람에 황당했지만, 어쨌든 집주인분도 얼른 다른 임차인을 찾고 싶을 테니 알겠다고 하고 일어나서 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는데 몇 시간 뒤에 뷰잉이 또 취소된 날, 하하.


집주인분도 아픈데 미안하다며 사과하셔서 기분이 나쁘진 않았는데, 집에서 맘대로 쉬지 못하는 상황도, 아픈 몸 이끌고 이리저리 방을 치우고 다닌 게 수포로 돌아간 것도 너무 허탈했다. 그러다가 생각해보니 영국에서 아플 땐 늘 이런 식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픔-> 쉬려고 누움 -> 외부의 방해 -> 제대로 못 쉼 -> 아픔의 연장 -> 좀 나아져 마침내 약국이나 슈퍼 방문해서 약 사기-> 약 먹으면서 병원에 전화를 걸어 진료 예약 -> 약이 한국처럼 강하지 않아서 며칠 동안 더 아프기 -> 다 낫고 나니 진료 예약 날


이럴 땐 꼭 무료로 받는 헬스 케어가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암 같이 심각한 병의 경우 평생 무료로 치료받을 수 있다는 게 굉장히 좋은 복지겠지만, 그로 인해 환자수가 넘쳐나고 내가 필요할 때 즉시 치료받을 수 없다는 건 큰 단점. 그래서 아픈 김에 영국에서 병원 가는 법을 한 번 정리해 보기로 했다.


이미지 출처: Rex Pickar on Unsplash


영국에서 모든 진료는 공짜?


영국은 NHS (National Health Service)라는 게 있는데, 영국의 모든 국민에게 무료로 제공된다. 무료로 제공되지 않는 병과도 있는데 예를 들면, 치과(일부 비용 청구), 피부과 시술 등이다. 만약, NHS에서 제공하지 않는 병과에 대한 증상을 가지고 있다면 Private Doctor를 방문해야 한다.


영국에 워홀이나 유학 올 때, 한국인도 아예 100% 무료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고 NHS에 건강 보험금을 내야 한다. 내 기억으론 유학 3년 동안 약 100만 원 정도 했었고, 워홀 때는 조금 더 올랐다. 보험금을 내고 영국에 입국한 뒤에는 영국 국민과 동일하게 무료로 GP(General Practitioner)를 필요할 때마다 만날 수 있다.


GP는 무엇이고, 어떻게 등록하는지?


영국에 처음 온경우, GP라는 개념이 한국인에게는 생소한 개념이라 이해하는데 다소 시간이 걸린다. GP는 아플 때 만나는 1차 의사라고 생각하면 된다. 원한다면 같은 GP를 계속 만날 수도 있고, 스케줄에 따라서 다른 의사로 변경해서 만날 수도 있다.


한국처럼 예약 없이 바로 진료가 가능한 게 아니고, GP를 만나기 위해서는 동네마다 1-2개씩 있는 Medical Centre에 GP등록을 해야 한다. 이때 필요한 건, 본인이 살고 있는 곳의 주소를 증명할 수 있는(Proof of address) 뱅크 레터나 유틸리티 빌, BRP 카드 정도다.


메디컬 센터를 방문해서, GP를 등록하기 위해 왔다고 하면 리셉션에서 Registration Form을 준다. 폼을 작성해 리셉션에 제출하면 2-3일 내로 GP 등록이 된다. 그 후부터는 예약을 통해 해당 메디컬 센터에서 진료를 볼 수 있다.


유학생이라면, 입학 시 학교에서 GP 등록하는 폼을 주기도 하는데 그때 학교를 통해서도 등록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에  학교에서 정한 메디컬 센터에 일괄적으로 등록될 수 있어, 학교에서 먼 곳에 거주하고 있다면 본인 동네에서 직접 등록하는 게 나을 수 있다.


어떨 때 GP를 보러 가야 하는지?


GP는 만성적으로 가지고 있는 질병에 대해서 처방하거나 아주 심각하지는 않은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들이고, 병의 정도가 심하거나 외상이 심할 경우에는 호스피탈로 옮겨져 치료받는다.


보통 몸살감기 정도의 증상은 GP를 만난다고 해도, 약을 처방해주거나 조치를 취하는 게 없기 때문에 집에서 해열제나 Lemsip 같은 감기약을 먹고 자가 치료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GP를 보러 가면 하는 말은 "물을 많이 드세요, 레몬티를 마시세요." 같은 인터넷에 '감기 낫는 법'이라고 치면 나오는 팁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감기 몸살이 아니고 건강에 염려가 되는 부분이 있다면 기왕 보험료도 낸 것 GP를 방문해서 진료받기를 추천한다.


이미지 출처 : Zhen Hu on Unsplash




갑자기 너무 아프면 어딜 가야 되는지?


응급 상황에 경우 999에 전화를 걸어 AE로 가야 한다. AE는 우리나라의 응급실 같은 곳으로, 예약 없이 바로 갈 수 있지만 무지하게 대기 환자가 많다. 나도 며칠 내내 밤낮으로 코피가 미친 듯이 나고, 열이 올라서 응급실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때 한 4시간 정도 기다려서야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짐작컨데 병명을 듣고, 아주 긴급환자 > 덜 긴급 환자로 판단해 진료를 진행하는 것 같으나 이에 대해서 정확히 아는 바는 없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만난 의사는 고작  '레몬티를 많이 마시세요. 무슨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 같네요, 지금 집에서 드시는 약을 계속 증상이 호전될 때까지 드세요.'라는 말만 남겼지만, 그다음 날 기적적으로 나았다는 후문.


예약을 안 하고 갈 수 있는 병원은 없는지?


있다. Walk-in 센터가 동네에 간혹 있는데, Walk-in 은 병원 예약 없이 급할 때 갈 수 있는 메디컬 센터다. AE를 갈 정도로 응급 상황은 아니지만, GP 예약을 일주일~2주 동안 마냥 기다릴 수는 없는 상태일 때 방문하면 된다. 나도 워크인을 추천받은 적은 있는데 한 번도 방문한 적은 없어서 정확히는 어떻게 운영되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갑자기 외상을 당했거나, 당장의 처치가 필요한 질병/증상일 때 갈 수 있는 보건소 같은 곳이라고 알고 있다.


아플 때 학교는 어떡해야 하는지?


학교마다 EC(Extenuating Circumstance)라는 정책이 있는데, 학교마다 어떻게 처리하는지는 상이할 테니 담당 교수와 상의하는 게 좋다. EC는 가벼운 감기일 때마다 받을 수 있는 게 아니고, 난독증, 우울증, 큰 수술 후 회복 기간 등 본인의 지병이 학업에 큰 지장을 주는 경우, 이 상황을 참착받을 수 있는 제도다. 보통은 병원에서 증빙 서류를 받아 학교에 제출하면 된다. 나의 경우는 Doctor's Note를 제출했었다. EC를 받으면 시험이나 데드라인 등을 연장해주는데, EC를 받는다고 성적에 대한 불이익은 없다.




타지에서 아픈 것만큼 서러운 게 없다. 영국에 거주하는 분이라면 당장 아프지 않더라도, 아플 때 더 오래 기다리지 않기 위해 미리 GP 등록하는 것을 권장하고 싶다. 유학생이라면, 학교에서 받을 수 있는 헬스 케어들을 잘 알아 놓고 이용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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