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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lamola Feb 24. 2020

코로나일 까 봐 식겁한 이야기

런던과 이별하는 일 D-12


아프기 시작한 지 6일이 지났는데도 도저히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코로나 헬프라인(111)에 전화했다. 위험 지역 아무 데도 가지 않았고, 코로나 걸린 사람 누구도 만나지 않았는데 계속 고열과 기침이 나고, 숨이 차오르는 증상까지 있다고.


나한테는 이 세 가지 모두가 너무나 코로나처럼 들려서 사실 자가격리를 하고 있으면서도 무서웠는데, 헬프라인에서는 너무나 코로나처럼 안 들렸는지 가까운 병원에 당일 예약을 잡아줬다. 병원 예약 시간은 8시 반이었으나, 혹시 나가 역시나, 도착해서도 1시간 넘게 기다려야 했다. 슬슬 짜증이 날 무렵 의사가 진료실로 불렀다.


다행히 이번에 진찰을 한 의사는 무지 꼼꼼하고, 친절하게 모든 검사를 진행했다. 숨을 잘 못 쉬겠다는 말에 산소 체크를 하고, 혈압을 기계로 한 번, 수동으로 한 번 체크했다. 한국에서만 하는 줄 알았던 배 꾹꾹 누르기도, 입 벌리고 '아' 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영국에서 비슷한 증세로 병원에 간 적이 몇 번 있었지만, 이렇게 세심하게 봐준 의사는 처음이었다.


영국 병원과 한국 병원의 치료법이 매우 다르진 않겠지만, 어쨌거나 한국에선 너무 당연하게 받는 진찰을 영국에선 얼마나 못 받았던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헬프라인에 전화했을 때도, 나는 설마 코로나일 까 봐 패닉이었는데, 수화기 너머의 NHS 직원은 딱히 놀란 기색 없이 기계적으로 질문을 우다다 쏟아냈다.


그래도 진료 잡기 오래 걸리는 영국에서 한 시간 만에 예약을 잡아주고, 나랑 덩달아 패닉 하지 않아 줌에 감사해야 하는 걸까?


병명은 바이러스 감염, 수분 부족, 저혈압으로 인한 면역력 저하였다. 코로나가 아니라서 천만다행이다. 그렇지만, 6일 내내 밥 한 끼도 제대로 못 먹고, 열이 너무 많이 나서 이렇게 며칠만 더 지속되면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할 수도 있다는 말이 여전히 두렵긴 하다.


정말 안되는데 짐도 싸고, 이제 당분간은 못 볼 얼굴들도 봐야 되고, 브런치도 써야 되는데... 난데없이 찾아온 건강 적신호에 정말 당혹스럽고, 괴로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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