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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젤리매니아 Sep 11. 2017

[외국영화]바닷마을 다이어리

서정적이면서 단조롭다

일본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별 내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여운이 깊게 남는다는 것일 것 같습니다. 현실성 있는 영화를 내며 호평일색을 유지해 오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2015년 작 [바닷마을 다이어리] 역시 높은 평점으로 그의 명성을 이어갑니다. 개봉 당시 생각보다 상영관이 적었던 탓에 나중에 봐야지 미루어 놨다가 2년이 넘어서야 보게 되었네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전작들을 보면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아무도 모른다] 등 가족 영화가 많은 편입니다. 전 아직 감독의 세 작품 밖에 보지 못 했는데 가장 최근 개봉 한 [태풍이 지나가고]도 찾아 볼 예정입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평범한 일상을 이어가던 중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들은 세 자매가 장례식에 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고요한 아침을 알리는 듯한 시작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서정적인 오프닝입니다. 


너무 평범하게 흘러가는 세 자매의 대화 속에서 튀어 나온 아버지의 장례식이라는 단어는 정말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바람처럼 지나가 적잖은 충격을 줍니다. 또한 일본스러우면서 일본스럽지 않은 대사들이 그 전작들과는 사뭇 느낌이 달라 당황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장례식에 간 사치(아야세 하루카), 요시노(나가사와 마사미), 치카(카호)는 그 곳에서 자신들의 이복 동생 스즈(히로세 스즈)를 만납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새엄마와 동생 사이에서 어른스러워졌어야만 했던 어린 소녀 스즈. 그런 스즈와 함께 살기로 한 세 자매. 여기서 집중해서 보아야 할 점은 스즈의 엄마가 세 자매의 아빠와 불륜을 저질른 여자라는 것입니다. 스즈의 엄마로 인해 자신들의 가정이 깨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은 스즈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라며 오히려 스즈를 감싸 안습니다. 


하지만 트러블이 없을 수는 없는 상황이기도 하죠. 아버지와 이혼 후 자신들을 할머니에게 맡기고 집을 나가 버린 엄마에게 반항이라도 하듯, 오기를 부려 스즈를 데리고 온 사치는 결국 동생 요시노에게 한 소리를 듣습니다. 장녀로서 가져야만 했던 책임감에 자신의 청춘을 잃어간 사치. 어쩌면 사치는 병에 걸린 아버지를 새어머니를 대신 병간호한 스즈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투영 시켜 보았을 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열심히 동생들을 돌보아 왔고, 집을 지켜 왔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을 때의 상실감이 사치를 힘들게 합니다. 그러나 그런 점을 알고 있기에 그녀는 스즈의 상황을 가장 먼저 눈치 챘을 것입니다. 영화는 사치, 요시노, 치카, 스즈 네 자매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만 이끌어가는 것은 거의 사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치에게서는 그녀의 엄마, 스즈의 엄마, 스즈까지 여러 사람의 감정을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엄마에 대한 오기와 반항 때문에 스즈를 데리고 온 것도 없지 않아 있을테지만 그녀는 어쩌면 스즈에게서 투영되는 자신의 모습을 동정하며 손을 내밀었을 지도 모릅니다. 


자칫하면 사랑과 전쟁이 될 수 있는 내용들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만의 느낌으로 바꾸어 따뜻하면서 훈훈한 가족영화로 만들어갑니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 자체가 아주 괜찮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매 장면 장면이 괜찮을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만 영화 자체는 생각보다 너무 단조해서 살짝 지루함을 느끼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게 서정적인 일본 스타일의 영화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전작들에 비해서 임팩트가 적은 것도 사실입니다


살짝 꼰대 같이 느껴지는 사치의 행동들이나 철 없이 말을 툭툭 내 뱉는 요시노의 모습들은 짜증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후반부에 들어간 배 위에서 본 불꽃놀이 장면 같이 아주 사소하지만 임팩트 있는 장면들이 조금 더 나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특히 바다 위에 떠 있는 배를 위에서 찍은 것은 신의 한수였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배우들의 모습과 터지는 폭죽을 위주로 찍는다면 이 작품은 바다 한 가운데에 떠 있는 배를 내려다 보며 서정적 느낌을 잃지 않으면서 영상미를 돋보이게 만들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만의 영상미를 느껴보는데는 아주 좋은 영화였습니다. 단조로운 영화 한 편을 봤으니 다음 영화는 임팩트가 제대로 터지는 영화를 한 편 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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