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겨울 끝자락에 떠난 제주 여행은 무엇보다도 휴식을 위함이었다. 쉼을 위한 여행일 땐 머물며 생활할 수 있는 곳을 숙소로 정한다. 그 해 겨울 여행의 숙소도 머무름 자체로 여행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차귀도 섬이 보이는 제주 서쪽 끝을 지나 약 25분을 더 달려 도착하였다.
시가지와는 조금 떨어진 한적한 곳에 위치해있었다. 숙소 앞 갈대밭과 몇 그루의 야자수가 묘하게 어우러져서일까? 제주도에 왔다는 느낌이 물씬 났다. 내 키의 두배는 될법한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실내가 나올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중정이었다. 모던한 콘크리트 외관에 한옥에서나 볼 수 있는 중정이라니!중정에서 올려다보는 네모난 하늘이 설렌다.
이윽고 실내로 들어선 순간 은은한 향기가 미소 짓게 만들었다. 비를 머금은 숲의 향기 같달까. 향은 참 알 수 없는 힘을 갖는다. 누군가의 향이 그러하듯 공간이 품은 향도 그 공간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갈대밭이 보이는 침실은 아늑했고, 곳곳의 그림과 포스터는 호기심을 자극했다. 주방의 큼지막한 정사각형 조리대 때문일까? 이곳에서는 음식을 만드는 일도 더 즐거울 것 같았다.
통유리의 발코니가 있던 또 하나의 방. 낮은 토퍼 매트리스와 베이지색 빈백이 놓여있었다.
"이 빈백, 진짜 편하다. " 나는 감탄하며 말했다. "오, 진짜! " 그도 털썩 등을 기대더니 눈을 감았다. 빈백은 보통소파와는 달리 작은 충전재가 채워져있어 몸에 맞춰 누울 수 있었다. 대형 쿠션 같은 푹식한 의자라고나 할까. 생각해보니 우리 집에는 침대 외엔 편하게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 없네. 거실의 소파는 등받이가 낮아 좀 불편하잖아. 빈백에 계속 누워있고 싶어 졌다.
제주 여행의 많은 순간이 좋았다. 저녁을 먹으며 바라본 해 질 녘 풍경, 편백나무 탕에서 노곤노곤 피곤을 풀면서 느낀 서늘한 바람, 갈대밭을 보며 아침 먹는 시간까지.
여행에 돌아와서도 계속 생각나던 것은 빈백에 기대어 프로젝터로 영화를 봤던 시간이다. 좋아하는 배우가 출연하지만 매우 혹평을 받았던 영화였다. 사실 영화 내용은 아무래도 좋았다. 칠흑같이 어두워진 시간, 그냥 편안히 기대어 좋아하는 치즈를 먹으며 즐긴 느슨한 분위기가 좋았다. 그 시간이 잊히지가 않았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나도 모르게 미소 지어지는 순간'을 종종 만난다. 그런 순간은 찰나와 같아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냥 흘러가 버린다. 좀 더 촉수를 세우고 있다면 그런 순간을 맞이했을 때 그 순간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설렘, 안도, 뿌듯함, 즐거움 혹은 편안함. 그 순간의 감정이 어떤 모습이든 지속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든다.
이 즐거움을 일상으로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집 소파 빈백으로 바꿀까? 그에게 말했다. 아이보리색 소파는 낮은 등받이, 딱딱한 쿠션으로 예쁜만큼 편하진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와 나는 거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적었다. 집에서 가장 넓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소파와 수년간 함께하였기에 헤어짐이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구를 바꿈으로 써 공간을 충분히 즐길 수 있게 된다면 괜찮은 결정 아닐까?
새로 사는 것은 빈백이었지만 사실 내겐 공간을 사는 것이었다. 그 공간에서 만들어갈 즐거움을 사는 것이었다. 이미 살고 있는 공간을 사겠다니 모순이다. 하지만 누리지 못하는 공간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같았다. 결국 아이보리 소파를 보내주었다. 그 자리엔 그레이 색 빈백이 들어왔다. 빈백에 앉았을 때 시선이 닿는 곳에는 좋아하는 그림을 두었다.
가구는 라이프스타일을 바꾸기도 한다
가구를 바꾸고 공간의 공기가 바뀌었다. 늘 빳빳한 정장을 입던 사람이 스웨터를 입은 것처럼 거실은 느슨하고 더 편안해졌다. 정말 신기하게도 우리는 더 많은 시간을 거실에서 보내기 시작했다. 거실은 입식에서 좌식이 되었고, 동선이 바뀌었으며 생활 패턴도 변했다. 퇴근 후 각자의 공간 대신 함께 빈백에 늘어지기도 하고, 주말에는 기대어 영화를 보기도 하였다. 마음에 드는 노트가 생기면 기록을 더 자주 하게 되는 것처럼 마음에 드는 가구로 그 공간을 더 충분히 누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