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직 장병 추모 영상 제작기
2003년 3월, 매일 아침에 학교에서 주는 우유가 먹기 싫어 선생님 몰래 가방에 넣어두고 집에 도착하면 다 터져있었던 시절, 그 덕에 교과서가 불어 쭈글쭈글 해지고 가방에는 비릿한 냄새가 가득하고 엄마는 오늘 또 왜 우유를 안 먹었냐며 키 크려면 우유를 먹어야 한다고 작은 잔소리를 했던 시절. 고작 우유 급식과 큰 사투를 벌였던 17년 전의 나. 그리고 그때, 내가 지금 있는 이 곳 동티모르에서 평화유지 작전을 벌이다 순직한 상록수 부대 5명의 장병들. 17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이젠 우유 급식 따위와 사투를 벌이지 않을 만큼 컸지만, 이 곳 동티모르에선 17년 전과 변함없이 그들을 기리는 추모비가 서있고, 그들이 남긴 많은 것들은 아직 이 곳에서 잊히지 않은 듯하다. 우유 급식을 받던 초등학생이 다 커 지금 동티모르에 봉사를 왔고 그들을 추모하는 행사에서 추모영상 제작까지 맡게 되었다.
나는 취미로 영상을 만들고 있고 (어디 내다 놓을만한 실력은 절대 아니다) 간간히 기록도 할 겸 해서 유튜브에 올리고 있다. 운이 좋게 작년 여름에 동티모르에 도착한 지 두 달만에 열린 KOICA 해외봉사단 유튜브 콘텐츠 공모전에 나가 소정의 상금을 받았고 그 덕에(?) 주 동티모르 한국대사관의 대사님까지 나의 유튜브 채널을 알게 되셔서 주변 분들의 응원도 받았다. 그러던 찰나에, 대사님께서 올해 5월에 열리는 ‘동티모르 상록수부대 순직 장병 추모행사’에서 추모영상이 필요한데 이 부분을 제작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주셨다. 사실 내가 유튜브에 올리는 것들은, 내 이야기의 조각들을 내 느낌대로 편집한 것들이라 사실 부담이랄 게 별로 없다. 근데 이번엔 다른 사람의 이야기고 심지어 추모영상이며, 큰 행사에 등장하는 영상이라고 생각하니 부담이 팍팍되었다. 내가 잘할 수 있을지, 혹시나 옳지 못한 단어나 느낌이 들어가 버려서 의도치 않게 상처를 받는 사람이 있다면 어쩌지, 어떤 영상이 나와야 너무 슬프진 않게 동시에 위로를 드릴 수 있을지...
내 긴 걱정과는 관계없이 TF팀의 발대식은 예정대로 진행이 되었고, 걱정이랄 게 있었냐는 듯 나는 어느새 관저에서 진행된 만찬에서 잡채와 수육을 한껏 먹으며 신나 있었다. 맛있는 한식이 배를 채워옴과 동시에 내 자신감도 점점 채워지며 ‘그래 한번 해보자. 그래도 내가 제일 잘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불러주셨겠지. 못할 것 같으면 이런 큰 일을 나에게 맡기셨겠나. 난 할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번 기회가 내 봉사활동 기간 동안에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란 생각도 했다.
대부분의 일상이 그렇듯, 멀리서 보면 항상 똑같아 보인다. 멀리서 본 내 일상은 아침에 일어나 학교를 출근하고, 한국어 수업을 하고, 공부 안 하는 아이들과 실랑이도 하고, 집에 돌아와 집착적으로 한식만 해 먹는 일상을 살고 있고, 심지어 오늘도 그렇게 보냈다(한국에선 양식, 중식, 일식, 그 외에 세계 각국의 모든 요리를 참 좋아했는데, 동티모르에 오니 다른 나라 요리 다 모르겠고 그냥 김치찌개에 쌀밥이 가장 맛있다). 물론 안을 들여다보면, 매일 내가 깨닫는 것들이 다르고 먹는 것도 다르고 읽는 책들도 다르고 공부하는 것도 다르지만, 틀 안에 넣고 보면 비슷한 이 일상 속에 추모 영상 제작을 맡게 되면 새로운 종류의 열정이 나오는 기폭제가 될 수 있을 거란 내 이기적인 욕심도 있었다는 것엔 부정을 할 수 없다.
그렇게 맡게 된 일. 시작하기 전 열정과는 다르게, 처음 시나리오를 쓰려고 노트북을 켜고 워드를 열었을 땐, 하얀 빈 페이지를 몇 십분 동안 멍하니 바라보며 내 손은 그저 아무렇게나 알아볼 수 없는 글자를 타이핑했다. 무엇을 써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유튜브에서 추모영상이란 추모영상은 모두 다 보고 심지어 외국 영상까지도 봤는데, 모두 그럴듯한 소스들이 많이 있는 상태에서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대부분 유명인들의 추모영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건 몇 십장의 사진들 뿐. 나 영상을 만들 수 있을까. 머리가 복잡했다. 아니, 어쩌면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었을지도. 뭐라도 하긴 해야 하니 일단 남들이 만들어 놓은 것을 계속 다시 봤다.
다시 보면서 공통점을 잡아내 틀을 잡았다. 어떤 구성으로 많이 움직이는지, 어떤 식으로 효과를 넣는지, 자막은 어떤 식으로 넣는지. 멘트들의 느낌까지도 봤다. 추모영상을 잘못 만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시작하기가 더 어렵기도 했다. 그래서 너무 오버만 하지 말자는 느낌을 잡고 하나하나 사진들을 골라냈다. 기존의 것들을 분석하고 나니 대충 어떤 식으로 나도 구성을 해야 하는지 느낌이 왔다. 그리고 마치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컴퓨터 앞에 엉덩이가 아플 때까지 앉아 사진을 이리 넣어보고 저리 넣어보고 노래도 틀고 가사도 맞춰가며 시나리오 작성을 시작했다. 막상 시작하니 아예 할 수 없는 작업은 아니었다. 일어나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있고 엉덩이가 아프고 눈도 시큼시큼했지만 20페이지 가까이 넘어간 워드를 보며 뿌듯함에 젖었다. 그리고 행사에서 이 영상을 마주할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벅찼다. 그들이 내가 만든 영상을 보며 슬퍼하기도, 위로받기도 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라게 됐다.
현재 내 시나리오 초고는 많은 수정 작업을 거치고 있다. 다음 달이면 본격적으로 영상제작에 들어갈 것인데, 부디 내가 끝까지 잘 해내길 바란다. 이제 시작이다. 5월 중순에 있을 상록수부대 순직 장병 추모행사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