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람은 안된다던 그들
저번 주 목요일, 동티모르의 수도 딜리에서 휴가를 마치고, 파견지인 판테 마카사르(오에쿠시)로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판테 마카사르는 동티모르의 영토와 조금 떨어져 인도네시아 영토 사이에 위치해있다. 그래서 국경을 지나쳐가지 않기 위해 배를 타거나 경비행기를 이용해서 다니는 게 편리하지만, 경비행기가 2주 전부터 수리에 들어가 도통 언제 다시 뜰 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고, 배는 14시간이 걸릴뿐더러, 많은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 옹기종기 타고, 아래층에는 가축들도 함께 이동하기 때문에 코로나의 위험이 있어 타기가 꺼려졌다. 결국 차를 이용해 인도네시아를 가로질러 가기로 결정이 됐다. 여러 서류들이 준비되어야 해서 복잡하지만 그게 최선이었다. 티모르섬 자체가 작기 때문에 한국 같은 도로가 깔려있다면 금방 갈 수 있을만한 거리지만 여기는 길이 좋지 않아 장장 6~7시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우리는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8시 30분에 출발을 했다. 차를 오래 타는 건 괜찮았지만 중간에 멀미가 정말 심하게 왔다. 40,50km 속도로 구불구불한 길을 계속 달리니 그럴 만도 했다. 3시간 30분 정도를 달리고 나니 국경이 보였다. 같은 티모르섬이지만 나름 다른 나라라고 사뭇 다른 느낌이 들어 신기해 옆에 현지인들을 따라 기념사진을 몇 장 남겼다. 국경선을 넘어 인도네시아로 가니 언어가 갑자기 달라져 내가 다른 나라에 와있음을 실감하게 했다. 또한 에어컨도 빵빵 나오고 동티모르에 비해 나름 현대적인 건물이 지어져 있어 새삼 현대 건물에 놀라고 있었다. 이때까지는 모든 게 수월하게 흐르는 듯했고 그저 차로 다른 나라를 왔다는 신기함만 있을 뿐이었다.
인도네시아로 들어가 입국 신고서를 쓰고 여권 검사를 하는데 갑자기 직원이 와서 사무실로 들어오라는 거다. 우리는 총 3명이었는데, 3명 다 연유도 모른 채 사무실로 불려 갔다. 인도네시아 입국은 무비자라 비자 문제도 아닐 터였고, 또한 우리는 단순히 동티모르를 가기 위해 인도네시아 국경을 지나는 것이기에 별 다른 서류가 필요 없다고 들었는데 대체 우리를 왜 부르는 거냐며 들어갔다. 들어가니 꽤 직급이 높아 보이는 나이 든 남자가 한 명 앉아있었다. 그는 우리의 여권을 보여달라고 했고, 우리는 세 개의 여권을 모아 넘겨줬다. 그는 우리의 여권을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고 갑자기 핸드폰을 꺼내 무언가 찾는 듯하더니 다짜고짜 우리 앞에 턱 내려놓았다. 화면에는 나라별로 코로나 19 바이러스 감염자 수가 적혀있는 표가 떠있었고, 그는 ‘한국에 27명이나 감염이 됐다. 너네는 우리나라에 들어올 수 없다. 다시 동티모르로 돌아가라(Go back to Timor-Leste)’라고 말했다. 뒤로 따라 들어온 몇 명의 직원들은 우리를 보면서 모두 빵 터지며 비웃었고 이 상황을 굉장히 웃겨했다. 그리고 서로 중국, 대만, 한국 사람들은 지금 코로나라며 막 낄낄댔다. 굉장히 기분이 나빴다.
처음엔 침착하고 ‘우리는 동티모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코로나 관련된 어떠한 증상도 없다’고 설명했지만, 그는 완강했다. 그저 ‘우리나라(인도네시아)에 들어올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하며 코로나 19 감염자 수가 적힌 표만 자꾸 들이밀었다. 만약 국경에서 열을 재고 우리가 열이나 증상이 있었다면 그런 거절이 마땅하겠지만, 국경에는 열을 검사하는 장치조차 없었으며, 우리가 동티모르에 6개월 이상 산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30분 동안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그들은 우리의 말을 아예 들으려고 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한국 대사관에 이 상황에 대해 얘기해보겠다고, 코로나로 인해 한국인이 입국 거절을 당하고 인도네시아에 갈 수 없는 것인지 제대로 확인해보겠다고 이야기하니 그제야 본인들이 상사에게 물어보겠다고 하며 전화를 걸고 또 서로 이야기를 나누더니, 갑자기 이제 12시 점심시간이 되었다며 점심시간이 끝나는 1시까지 앉아서 기다리라고 했다. 이제 우리가 들어갈 수 있는 게 확인된 것 아니냐며 들여보내 달라고 했지만, 그들은 ‘1시간만 기다리면 되잖아. 1시까지 저기에 앉아있어’라고 말했다.
꼼짝없이 그렇게 한 시간을 기다린 뒤에 국경을 통과할 수 있었다. 우리가 열이 있거나 증상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들은 어떠한 검사의 장비조차 갖추고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한국인이란 이유만으로 입국을 거절당했다. 다른 사람들은 바로 통과가 되었지만, 우리 셋은 한국인이란 이유로 잡혀있었고 심지어 ‘인도네시아에는 감염자가 아무도 없다. 그래서 감염자가 많은 한국인들은 들어올 수 없다’는 말도 들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동티모르에서 타고 온 차 렌트업체의 실수로 국경 통과에 필요한 어떤 서류가 누락되어 그 서류를 다시 받고 처리하기까지 또 4시간이 걸렸다. 꼼짝없이 국경에 5시간을 앉아있었다. 오래 기다린 것까진 괜찮았다고 치자. 근데 그땐 대략 4시였고, 문제는 인도네시아 땅을 얼른 가로질러 다시 동티모르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 국경이 5시에 닫는다는 것이었다. 다시 동티모르의 국경까지 한 시간 반이 걸리는 상황이었다. 5시까지는 절대 도착할 수 없었다.
결국 인도네시아에서 하룻밤을 자고 가기로 했다. 하지만 아까 입국 신고서에 입국 이유가 트랜싯이라 머물지는 않을 것이라고 적었기에 우리는 다시 사무실로 가서 ‘국경 통과를 못해 우리가 하룻밤을 머물고 가려한다. 다시 작성하겠다.’ 고 말하니, ‘트랜싯이라 너희가 들어갈 수 있는 거지, 우리나라에 머무는 건 절대 안 된다’며 또 거부를 당했다. 그저 한국에 코로나 감염자 수가 많다는 게 또 그 이유였다. 또다시 우리에게 그 작은 휴대폰에 뜬 감염자 수 표를 보여줬다. 나는 우리가 무슨 말만 하면 자꾸 그 표를 보여주는 그 행동에 기분이 정말 나빴다. 마스크를 코 끝까지 올려 쓰고. 마치 우릴 코로나 바이러스 보듯이 하면서.
우리도 점점 화가 나 격앙된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하고, 우리는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다, 동티모르에 작년 여름부터 살았고 어느 곳도 다녀오지 않았다고 말하며 지금 우리가 국경 문을 닫아 인도네시아에서 어쩔 수 없이 하룻밤을 자고 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하니 그제야 이젠 실랑이하기 싫다는 듯, 너네 마음대로 하라는 듯, 우릴 내보내 줬다.
약 5시간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우린 국경 근처에 위치한 아땀부아 라는 작은 마을로 갔다. 자꾸 생각할수록 억울한 마음만 들었다. 상황이 상황인 건 알겠지만 다짜고짜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그런 일을 당해야 한다니, 왜 한국인이 그런 취급을 당해야 하는지 억울하기도 했고 마음도 굉장히 안 좋았다. 뉴스에서 코로나로 인한 인종차별이 세계 곳곳에서 많이 생기고 있다는 걸 보았는데, 그 일을 직접 당하니 뭔가 기분이 정말 별로였다. 세계 곳곳에 계시는 많은 한국인들이 이와 같은 상황을 겪고 있을 거란 걸 생각하니 다들 정말 힘들겠다는 마음도 들었고, 조속히 코로나 사태가 안정화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강하게 들었다. 단순히 이러면 안 되는 걸 알지만, 덕분에 나에게 인도네시아 첫인상이 좋지 않게 남아버렸었다.
인도네시아 아땀부아에서 달러를 루피아로 환전하고 부랴부랴 모텔도 잡고 식당에 갔다. 저녁을 먹으러 갔는데 식당 주인분께서 우리에게 자꾸 중국어를 할 줄 아냐고 물어보셨다. 우리가 한국인이라고 몇 차례 설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어를 할 줄 아냐, 일본과 비슷하냐 이런 말을 하시는 걸 보니 한국, 중국, 일본이 모두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는 듯했다. 그러다가 한국 노래를 틀어주시겠다며 갑자기 블랙핑크,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틀어주셨다. 알다가도 모를 아저씨였다. 어찌어찌 다행히 아땀부아에서 하룻밤을 안전히 머물고 다음 날 아침 7시에 빠르게 동티모르로 들어왔다. 쌩쌩했던 몸이 1박 2일 동안 멀미에 계속 시달리고 여러 일들을 겪고 나니 몸살기가 돋아버렸다. 정말 길고 긴 1박 2일이었다.
한국에 계신 모든 분들, 코로나 19 조심하시고, 외국에 계신 모든 분들도 코로나 19 조심 또 조심하시고, 이로 인한 인종차별적 범죄도 늘어났다고 하니 모두 그 부분도 조심하셔서 모두 안전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