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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록 Dec 13. 2020

열린 대화, 닫힌 화술

대화의 관계와 보들레르의 산문시

‘열린 대화’를 잘하는 사람이 있다. 어떤 대화를 어떻게 꺼내든 상대 언어에 자신의 감각을 섬세하게 포갠다. 함부로 말하는 법 없이 사려 깊고 편안하게 대화한다.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기보다, 어떻게 하면 대화를 여러 방면으로 나눌 수 있을지 방식을 찾는 데 열중한다. 상대의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서로의 동질감은 극대화한다. 상대 언어를 적극적으로 존중하기 때문에 전혀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래서 여러 방향으로 대화가 흐른다. 때로 직선적이다가도 때로 순환하는 원형이 되기도 하며, 이리저리 만났다가 헤어지고,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가 사라진다. 그와의 대화는 편안하면서도 활기를 띤다. 비슷한 모습으로 대화를 시작하지만 마지막은 제각각이다. 이러저러하게 해석할 여지가 많아서, 좀 부지런하다면 의미를 확장할 수도 있다. 그와 대화하다 보면 내가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기도 한다.

‘닫힌 화술’를 즐기는 사람도 있다. 특정 화두를 강하게 제시해서 대화를 주도한다. 어떤 화제든 자신의 신념과 통찰로 뚜렷한 상을 제시한다.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낼지, 이렇게 말하면 상대가 어떻게 반응할지, 머릿속으로 먼저 생각하는 편이다. 그의 말은 때로 명쾌하다가도 때로 외곬처럼 느껴진다. 그의 언어는 직선적이라, 대화의 논리와 인과율이 중요해진다. 상대 언어를 자신의 방식으로 해석해서 구체적인 상으로 정리한다. 화제에 따라 명료하게 결론을 내린다. 상대가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그의 결론은 질서정연해서 명확하게 와 닿는다. 그와의 대화는 간명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답답하다. 간혹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에 위계가 생긴다. 느낄 점이 많은 통찰을 주기도 하지만, 섣부른 단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누구도 완전하게 ‘열린 대화’를 나누거나 ‘닫힌 화술’만 구사하진 않는다. 대부분 상대와 상황에 따라 ‘열린 대화’와 ‘닫힌 화술’을 적절하게 섞는다. ‘열린 대화’의 비중이 많은 사람이 있고 ‘닫힌 화술’을 주로 구사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전자는 대화의 의미와 관계에 집중하고 후자는 대화의 결론과 대안에 힘을 쏟는다. 내 취향을 말하자면, 전자가 끌린다.

보들레르 (위키백과)

41. 항구


항구는 생활 전선에서 지친 영혼이 머무를 수 있는 매혹적인 자리이다. 하늘의 광활함, 구름의 움직이는 건축, 바다의 변화 많은 채색, 등대의 번쩍거림은 눈을 즐겁게 하면서도 지치지 않게 하기에 희한하게도 알맞은 프리즘이다. 복잡한 항해 설비를 갖춘 선박들의 날씬한 형태는, 물결의 힘을 받아 조화롭게 흔들거리며, 율동과 아름다움에 대한 흥취를 영혼 속에 간직하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특히 호기심도 야심도 더 이상 품지 않은 사람에게는, 망루에 기대서, 혹은 방파제의 난간에 팔꿈치를 고이고, 떠나는 사람들과 돌아오는 사람들, 아직도 멀리 떠나고 싶거나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을, 의욕의 힘을 지닌 사람들의 그런 온갖 거동을 바라보면서 얻는 어떤 종류의 신비롭고 귀족적인 쾌락이 있다.


-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파리의 우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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