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서평 이야기
* 이 글에는 글쓴이의 주관적인 생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 Oliver Sacks
신경과 전문의이자 이론가이자 극작가인 한 남성의 인간을 관찰하고 탐구하는 이야기. 이렇게 이 책을 정리해볼 수 있겠다. 책을 읽게 된 이유가 너무도 간단했다. 그리고 그만큼 나 자신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에 충분히 가치있었던 책이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기도 하다. 최근 책을 읽을 여유조차 없이 쓰는 행위에 지칠대로 지쳐있었던 나는 한 서점에 방문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책을 읽으려 방문한 건 아니었고 몇년 묵은 나의 맥북 키스킨을 구매하러 갔다 들른 것이었다. 스스로를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하나같이 다 비슷한 제목의 베스트셀러를 보다보니 ‘난 책을 좋아하는 게 아니야, 편식이 심해.’ 하는 자기 반성같은 것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고, 뒤돌아 나오려던 때에 푸른색의 표지 위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 맨 처음 드는 생각이 '어떻게 저런 제목을 뽑아냈지? 네이밍 미쳤다.’여서 조금 서글펐지만 아무튼 제목만으로 이 책은 나 라는 독자 하나는 순식간에 얻은 셈이었다.
상실과 과잉, 이행, 단순함의 세계라는 4가지 챕터로 구성된 이 책은 이성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이 감성적으로 그들의 역사와 사건을 관찰하여 서술하고 있다. 그의 연구를 이렇게 판단내려버려서 죄송할 따름이지만 그는 엉뚱하면서도 뛰어난 신경과 전문의였다. 인간은 인간 자체를 스스로 정의내리고 구분내릴 수 없다. 그러나 가끔은 신경정신학적으로 질환에 관련해 진단을 내려야하는 경우는 예외인 것 같은데 이또한 그랬다. 이 책에 나오는 인식 불능증, 투렛 증후군과 같은 신경학적 소견이 어떠한 사건을 초래하고 그로 인해 인간간의 갈등이 벌어진다. 대표적인 에피소드가 바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인 것이다. 그가 치매라고 생각하고 사람들은 그를 의사 앞에 데려오지만 그는 치매가 아니라 도형, 물체의 형태를 인지하지 못하고 3차원 이상으로 추상적인 인지만을 표현한다. 그에게 현실의 시각적 자아가 없었다고 한다. 결국 그는 아내를 모자로 알아보는 내면적인 인식불능증에 걸린 것이었다.
‘기억을 조금이라도 잃어버려야만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기억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억이 없는 인생은 인생이라고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의 통일성과 이성과 감정, 심지어는 우리의 행동까지도 기억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을. 기억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기억상실에 관한 에피소드는 생각보다 충격적으로 와닿았다. 막장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소재라고 생각했던 기억상실은 현실에서 더 잔인했다. 머리 뒤쪽으로 통하는 혈관이 막혀 뇌의 시각을 담당하는 부분이 죽어버려 시력을 완전히 상실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시각적 상상력과 기억을 몽땅 잃어버렸다고 한다. ‘본다’는 관념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에 시각에 관련된 기억까지 모두 상실해버렸다는 것이다. 이런 끔찍한 일이 내게 일어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 여기며 사는 것이 맞는 것일까. 그를 동정하고 연민하며 앞으로 남은 나의 삶을 가치있게 살겠다 다짐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중요한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영역 밖을 벗어난 것에 대해 우리가 지나치게 손쓰려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결국 상실과 과잉 그 경계를 넘나들며 인간은 단순해지기 마련이다. 그래도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모자로 착각하지 않을 수 있음에, ‘본다’는 것에 행복함을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할 수 있어 조금은 다행이다.
2020. 08월에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