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서평 이야기
* 이 글에는 글쓴이의 주관적인 생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 / 한 수 희
“자신은 하찮은 존재라는 생각 때문에 느끼는 불안의 좋은 치유책은
세계라는 거대한 공간을 여행하는 것,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예술작품을 통하여 세상을 여행하는 것이다.”
- 알랭 드 보통 ‘불안’ -
삶은 무수히 많은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보고 느끼는 세계를 제외한다면 세상은 내가 모르는 것들로 가득하다. 인간으로서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한 방법들 중에 나에게 가장 쓸모 있는 방법은 예술작품을 통해 세상을 여행하는 것이다. 다양한 장르와 분야가 있지만 나는 특히 영화와 책을 사랑한다. 그리고 영화와 책에 대해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나와 같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 2차원, 3차원적으로 그 세계를 여행하는 기분이 들어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곤 한다.
이 책이 그랬다. ‘아, 내가 이런 세상을 살고 있구나.’ 숨을 내뱉게 만들었다. 나는 에세이를 서평 하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 그럼에도 이 책은 내가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어 읽고 읽었던 페이지를 다시 넘겨보게 만들었다. 에세이라는 장르는 기본적으로 자서전적 성격을 띠고 있다. 저자가 자신이 살아온 배경, 환경을 바탕으로 세계관, 사상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감히 나라는 한 사람이 타인의 세계를 논할 수 없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나에겐 여전히 에세이가 어렵다. 그러나 이 책은 가벼우면서도 가볍지 않은 책이다. 문장과 사용한 단어는 명료하고 깊다. 수많은 경험을 통해 느낀 생각들이 절대 하나의 편견으로 굳어지지 않았고, 생각을 다듬고 말을 다듬어 살아가는 모습이 독자인 나에게까지 짙은 향기처럼 전해져왔다. 멋있게 나이든다는 것은 이런 것일까. 책을 통해 멋지게 나이 들고 있는 언니를 아무도 몰래 한 명 알게 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결혼은 별다른 특징 없는 이천 번의 아침을 먹으면서 나누었던, 별다른 특징 없는 이천 번의 대화이며 바로 거기서 친밀감의 바퀴가 서서히 굴러간다. 누군가에게 그렇게 친밀한 존재가 되는 것은 가치를 매길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일이다. 서로를 잘 알고, 눈만 돌리면 곁에 있어서 공기에 버금갈 정도로 필수불가결한 존재.”
“사람은 자신이 질서라고 믿는 한계 바깥에 더 큰 질서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 ‘낯선/모르는 것’과의 만남을 통해 성장할 수 있다. (중략) 다른 말로 하면 이런 배움의 과정은 끊임없이 새로운 타자를 만나고, 그 타자를 통해 자신의 세계를 넓혀 가는 과정이다. 여기서의 원칙은 단 하나다. 내가 질서라고 알던 질서의 바깥에 무질서가 아닌 더 크고 아름다운 질서가 있다고 여기고 그 새로운 질서에 흥미를 가지는 것이다."
- 엄기호 ‘단속사회’ -
결국 삶은 타인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일련의 과정이고, 나의 오만한 잣대로 판단하기엔 더 크고 아름다운 질서로 이루어진 세상과 마주해야 우리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된다는 것을 저자 또한 책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설명한다. 감명 깊고 와닿았다. 트렌드처럼 추구하는 개인주의는 개인주의가 바탕인 사회에서 빛을 발한다.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을 고립되게 놔두지 않는다. 보다 멋지고 우아하게 실패하고 좌절하고, 때로는 져주면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말처럼 살아지진 않겠지만 삶이란 슬프고도 아름답다.
비록 자신의 고집스러운 주장이 담긴 대목도 있지만 이 또한 현재를 살아가는 자신이 하고 있는 생각이라 여긴다고 저자는 말한다. 맞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고 모든 것을 만족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 책을 알게 되고 나와 비슷한 사상을 가진 윗사람을 하나 더 알아간다는 것은 감출 수 없는 기쁨이다. 나 또한 열심히 살아내야겠다. 모든 것을 단정 짓지 말고, 함부로 재단하지 않고.
2019. 11월에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