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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미국, 워싱턴DC

On the way to the america

by 레이다

워싱턴DC는 가는 길부터 험난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직항 비행기를 타면 쉽게 갈 수 있었지만, 비용이 문제였다.


여정에 근접해 항공권을 찾다보니, 인천-워싱턴 대한항공 왕복 항공료가 500만 원 가까이 계산됐다. 절대 불가능. 그리하여 며칠을 고민하고 알아보고 문의하며 대체 방안을 마련했다.


내가 찾은 방법은 일단 인천에서 LA까지 아시아나항공을 타고 가서, LA에서 국내선 유나이티드항공을 타고 볼티모어로 이동하는 것.


이어 볼티모어에서는 순환버스를 이용해 인근 마셜 기차역으로 간 뒤 기차를 타고 DC의 유니온역으로 가고, 유니온역에서는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가는 것이었다. 국제선, 국내선, 기차, 버스, 지하철을 모두 활용하는 방식이었다.


볼티모어 국제공항 계류장


오랜 소요시간과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LA 톰브래들리 공항에서는 미국 국내선을 환승해야 했는데, 짧은 대기시간으로 인해 초조하게 시계를 들여다보며 입국 심사 줄이 줄어들기를 기다려야 했다.


LA국제공항은 입국심사에 오랜 시간이 걸리기로 악명이 높다. 각국의 사람들이 미국을 찾는 가장 큰 관문이 바로 LA이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입국자들이 많은데, 내가 인천에서 타고 간 아시아나항공의 기종은 A380이었다. 비행기 2층까지 가득 채워 왔으니, 인천발 입국자만도 수백 명이다.


입국심사를 마치자, 국내선을 타기 위해 남은 시간은 40분 남짓. 그냥 미친 듯이 뛰어야 했다. LA 공항 내 국제선 터미널과 국내선 터미널 간 거리는 항공사마다 차이가 있다.


국제선 터미널을 중심으로 국내선 항공사 터미널들이 긴 동그라미 원탁처럼 좌우로 늘어선 형태다. 내가 타야 할 유나이티드항공은 저 끝에 있다. 수화물로 부쳐야 하는 캐리어가 없기에 망정이지, 조금만 늦었어도 비행기를 놓쳤다.


볼티모어에서 버스와 기차를 타기 위해 한국에서 미리 노선을 확인했었다. 기차는 MARC 어플을 설치해 계산된 시간대에 맞춰 사전에 기차 티켓을 예약했다.


기차도 무사히 탑승. 그제야 한숨 돌렸다. 어쨌든 DC에는 가게 되었기에 마음이 놓였다.


워싱턴DC 유니온역(왼쪽)과 지하철(오른쪽). 유니온역에서 기차를 타면 뉴욕까지는 4시간이 걸린다.


그렇게 DC까지 직항으로 14시간이면 될 것을 20시간이나 걸려, 그것도 강도 높은 긴장과 초조함 속에 도착했다.


대신 항공료는 절반 이하로 줄일 수 있었다. 국제선, 국내선, 기차요금까지 다 합쳐 왕복 기준 250만 원을 넘지 않았다. (한국으로 다시 돌아올 때는 이미 경험이 있어서인지 과정이 순조로웠고, 출국심사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


좋게 생각해서.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하고 여러 도시를 거치며 여행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정신 승리랄까.


시간보다 돈이 더 중요했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일행이 없이 혼자 하는 여정이었기에 큰 긴장감을 유지했고, 문제없이 도착할 수 있었다.


DC는 평화로웠다. 방문했던 시기는 지난해 10월 말경이었는데, 당시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이었다. 대선이 있는 미국의 수도라는 데서 복잡하고 어수선할 것으로 걱정했는데 딱히 시끄럽지 않았다. 오히려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평온하기까지 했다.


아침, 저녁으로 쌀쌀하면서 한낮에는 따뜻해 돌아다니기 더없이 좋았다. 날씨가 다했다고 할 정도였다. 체류했던 일주일 내내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었다.


DC여행은 큰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중심부에서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내셔널몰이라고 불리는 일대를 중심으로 주요 시설이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내셔널몰은 아침에 조깅하는 사람부터 오후에 피크닉과 저녁에 산책하는 사람까지 많은 시민들이 찾는 곳이다.


왼쪽부터 링컨기념관에서 바라본 워싱턴기념탑, 자연사박물관 내부, 내셔널몰 산책로


워싱턴기념탑(모뉴먼트)을 중심으로 북쪽에 백악관이 있고, 좌우에 각각 링컨기념관과 국회의사당이 있는 구조다. 그 사이사이에는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 '내셔널 갤러리' '항공우주 박물관'이 있다. 이외에 다양한 기념관/박물관과 미국 정부 부처/기관 청사도 많다.


워싱턴에 있는 동안 캐피털 바이크쉐어를 몇 번 이용했는데 매우 유용했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따릉이 같은 공유 자전거인데, DC는 한국보다 자전거도로가 잘 돼 있고 대여요금도 저렴해 편리한 교통수단이다.


DC를 감싸는 포토맥 강을 따라서는 산책하기 좋고, 특히 아침에는 런닝하기에 제격이다. 조지타운 대학교와 그 주변도 구경하기 좋다. 조지타운대 인근은 마치 서울 성수동처럼 감각적인 카페와 상점을 비롯해 인기 있는 컵케익 가게도 있다.


DC 여정에서 가장 기대했던 곳은 자연사박물관과 수코타쉬(SUCCOTASH) 레스토랑이었다. 그 유명한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을 직접 관람한다는 기대와 당시 넷플릭스 흑백요리사로 유명세를 치르던 에드워드 리 셰프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설렘이었다.


두 곳 모두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자연사박물관은 내셔널갤러리와 더불어 관람하는 데만 각각 한나절이 걸렸다. 그만큼 볼 것이 많았다. 어릴 적 호기심 많던 아이가 된 것처럼 전시물 모든 것이 신기했다. 영화에서나 봤던 티라노사우르스 뼈 조형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내셔널 갤러리도 엄청난 규모의 작품으로 하나하나 둘러보는 데 온종일 걸렸다. 세계 주요 미술관이라는 이름값을 충분히 했다.


수코타쉬도 즐거움을 선사했다. 물론 에드워드 리 셰프가 직접 음식을 만들진 않지만, 넷플릭스 영상에서 보고 듣던 그의 영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곳은 두 번 방문했는데, DC 도착 첫날 예약 없이 바로 찾았다가 자리가 없어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틀 뒤 오픈 시간에 맞춰 찾아가 요리를 맛볼 수 있었다. 수코타쉬는 미국 남부 가정식 느낌의 평범하면서 재미있는 메뉴들이다.


그중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에서 에드워드 리 셰프가 선보였던 두부요리를 갓 출시한 때라, 그것을 주문할 수 있었다. 요즘 말로 완전 럭키비키. 스타터로 두부튀김(KY FRIED TOFU, Soy dip & pickled peppers)이라는 메뉴를 주문했는데, 15달러였다. 이것과 함께 치킨&와플(CHICKEN&WAFFLES)을 메인으로 시켰다. 이건 22달러. 혼자 먹기에는 양이 꽤 많았다.


수코타쉬 레스토랑. 두부튀김과 치킨와플.


어떤 나라를 처음 가게 되면 수도부터 가는 편이다. 아무래도 수도를 먼저 보고 다른 지역으로 가는 것이 순서라는 고집 때문이다. DC와 경계선을 맞대고 있는 지역은 볼티모어와 버지니아가 있다. 뉴욕까지는 기차로 4시간이면 간다.


워싱턴 만을 위한 여행도 좋고, 동부 일대를 묶어서 둘러보기도 좋은 이유다. 이번 여정은 워싱턴에서 시작하고 끝났지만, 기대 이상의 만족감이 주변 도시를 찾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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