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찔러보고 있는 전직 마케터의 퇴사병 치료기 #2
갑자기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충동적으로 표를 예매하고 집 앞 KTX 역으로 갔다.
월요일도 주말 같은 퇴사자는 하필 일요일에 혼자 강릉으로 향했다.
매우 즉흥적으로 결정된 떠남이라 혹시 날씨가 안 좋으면 어떡하지 하는 조바심이 생기지 않아 좋았다.
오전 10시 30분쯤 강릉역에 내려 목적지는 초당마을로 정했다.
여행지에서 뭘 할지 뭘 먹을지 정하지 않아 많은 여행자들이 향하는 곳으로 나도 따라 가보기로 했다.
일요일이라 강릉여행하면 빠질 수 없는 코스 중 하나인 초당마을 대부분의 음식점이 붐빌 것 같았지만
한 자리가 남아있어 바로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여행의 시작이 좋았다.
주말의 시끌시끌한 식당에 혼자 온 손님은 나뿐이었고 짬뽕순두부는 엄청나게 맛있지는 않았지만
생각보다 거센 바닷바람에 아 겉옷 챙겨 올걸… 후회하던 나에게 따뜻한 온기가 돌게 해주었다. 첫 식사로는 만족스러운 선택이었다.
(5월 중순의 강릉 공기는 꽤 차가우니 얇은 겉옷을 챙기시길!)
밥을 다 먹고 지도를 켰다. 어디로 갈까 하다 근처에 허난설헌 생가가 있어 다음 목적지를 정했다.
바다 공기가 차가웠지만 햇살은 눈부셨다. 생가를 천천히 둘러보고 경포호를 지나 바다를 향해 걸어보기로 했다.
1) 허균 허난설헌 기념관 (무료입장)
허난설헌과 허균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고택은 봄의 절정을 맞아 만개한 작약과 꽃들로 아름다웠고
몇 백 년 전 차마 뜻을 다 피우지 못하고 잠들어 버린 한 여성의 생애에 가련함이 느껴졌다.
고택과 작은 기념관을 둘러보고 경포호로 발걸음을 옮겼다.
2) 경포호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어 경포호를 한 바퀴 둘러 돌아보아도 좋을 것 같았다.
강릉 바우길이 있어 다음엔 이 길들을 따라 걸어보러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포호를 잠시 구경하고 강문해변이라고 표시된 이정표 방향을 따라 걸었다.
걷다 보니 산책로에 나 혼자 뿐이었고 아카시아 꽃이 핀 풍경을 열심히 사진으로 남겼다.
감자밭에는 감자꽃이 피기 시작하는 것 같았고 오랜만에 마스크를 벗고 아무도 없는 길을 한참 걸었다.
3) 강문 - 송정 - 안목
강문해수욕장에서 안목 카페거리까지 소나무길을 따라 걸었다.
드문드문 한적한 해변가가 있어 잠시 앉아있기도 했다.
힘들면 멈춰서 잠시 바다 멍을 때리고 또다시 일어나 걷다 보니 안목 카페거리에 도착했다.
해변을 따라 계속 걸을 수 있어 강릉은 걷기 좋은 여행지 같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 길들여진 나에게 버스 배차간격이 다소 잔인했지만
안목의 한 카페에서 카페인을 충전하며 버스를 기다렸다.
때로는 목적지에 돌고 돌아 도착하는 버스가 타고 싶어 질 때가 있다.
카페에서 찾아본 소품샵을 들리고 순두부 푸딩을 사러 가보았습니다만…
조기마감…! 이렇게 강릉에 또 와야 할 이유가 생겼다…
이번 주에 3곳에 지원을 해보았는데 결과는 모두 불합격...
고 연차를 뽑는데 슬쩍 넣어본 곳도 있고 내가 해오던 직무와 조금 다른 방향의 업무도 있어
기대감은 0에 가까워서 타격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탈락의 맛은 쓰다^^…
취준생 때 탈락의 맛에 많이 무뎌졌다고 생각했는데 탈락의 맛은 여전히 쓰구나…
내가 쌓아온 경험들과 회사에서 원하는 직무 적합성이 맞지 않았을 거라
소소한 위로를 해보며 나에게 맞는 회사를 좀 더 찾아보기로 한다…
아니면 아직 내가 준비가 되지 않았으려나… 더 쉬고 싶은가…?
그래도 여행을 하며 한 차례 생각을 비워낼 수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