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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ina Mar 12. 2020

언어와 편견

"우와, 영어 잘하시네요!" 에 대응하는 법

밴쿠버에서 살다 보면 나의 배경 (한국에서 영어교사를 했다거나 캐나다의 대학원에 다니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게 될 때가 많은데, “Your English is very good” 라는 말을 꽤 자주 듣는다. 언뜻 들으면 칭찬 같고 처음에는 원어민에게도 인정받은 나의 영어 실력이라고 우쭐하기도 했지만, 사실 저 말은 칭찬 보다는 인종 차별적인 언어에 가깝다. 


내가 영어를 원어민과 비슷하게 완벽하게 구사하는 것도 아니다. 저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밴쿠버에 온지 얼마 안되는 동양인은 영어를 못할 것이라는 편견이 있고, 내가 그 고정 관념을 깨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의 영어 실력에 코멘트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는" 영어를 잘하네요에 더 가깝다). 이는 우리가 일상 대화에서 어떤 사람을 처음 만날 때 ‘한국어 참 잘하시네요’라고 말을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상대방이 한국인일 때 한국어를 잘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기 때문이다. 한국어를 잘한다고 코멘트 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한국인이 아니라고 생각할 때 인데, 이는 대부분 그 사람의 외모로 부터 오는 편견과 고정관념에서 기인할 때가 많다. 이국적인 외모를 가진 모델 한현민에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국어를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영어로 말을 걸거나 한국어를 할 줄 아냐고 물어보는 것이 그 예이다. 


                                                                (출처: TvN)



언어랑 관련된 고정관념에는 크게 두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말하는 사람의 언어적 특성(억양, 발음, 방언 등)이 듣는 사람의 고정관념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를, 언어적 고정관념 (linguistic stereotying)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렌트를 구하기 위해 전화하는 사람이 흑인이 주로 쓰는 억양이나 동양계, 히스패닉계가 많이 쓰는 억양으로 전화를 할 경우에는 집이 없다는 대답을 들었지만 마지막에 중산층 이상의 백인들이 쓰는 표준 미국어로 전화를 걸었을 경우에는 집이 여전히 가능하다는 대답을 듣는다 (아래 비디오). 실제로, John Baugh 교수가 진행한 실험에서 집값이 높은 지역에서 이러한 현상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하였다. 특정 언어적 특징이 그 사람이 어떤 그룹에 속하는 지를 판단하게 하는 근거로 작용하게 하고, 고정관념에 따라 판단하도록 만든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집을 구할 때 뿐만 아니라 잡 인터뷰 등에서도 차별을 일으키는 요소라고 한다. 특히, 비주류에 속하는 그룹의 언어를 사용할 경우에 받는 차별을 언어적 프로파일링 (linguistic profiling)이라고도 부른다. 언급된 실험과 언어적 프로파일링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John Baugh 교수가 진행한 TED 강연을 참조할 수 있다.(The Significance of Linguistic Profiling: https://youtu.be/GjFtIg-nLAA)


언어적 고정관념 예시: Fair Housing을 위한 광고 https://youtu.be/YXxCYkquRYs 


두번째는 말하는 사람의 외모적 특성 (인종, 성 등)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편견을 가지고 그 사람의 언어 능력을 평가하는 경우에 나타나는데, 위 언어적 고정관념이 반대 방향으로 나타난다고 하여 역방향 언어적 고정관념 (reverse linguistic stereotyping)이라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의 한 대학에서 진행된 실험이 있다. 학생들은 녹음된 강의를 듣고 듣기 능력을 점검하는 테스트에 참여하고, 진행된 강의에 대한 교수 자질, 억양을 평가했다. 강의는 한 사람이 녹음한 같은 파일로 진행되었는데,  한 번은 백인 강사의 사진과 함께 듣기가 진행되었고 또 한 번은 아시안계 강사의 사진과 함께 듣기가 진행되었다. (중간에 같은 사람인지 알 수 없도록, 아시안계의 억양을 사용하는 강의가 아시안계 강사 사진과 함께 재생되었으나 그 결과가 실험 진행에 사용되지는 않았다).

두 강의 모두 '같은 사람'이 표준 미국어 억양으로 녹음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평가한 교수 자질이나 억양, 그리고 심지어 듣기 평가의 결과도 달랐다! 학생들은 백인 강사의 사진과 함께 들은 강의의 질이 더 높고, 표준 억양을 사용한다고 평가했다. 학생들이 직접 평가한 결과에서 뿐만 아니라, 듣기 평가 (빈칸에 들어갈 단어를 받아 적는 형식)에서도 백인 강사의 강의에서 더 높은 점수를 얻었다. 이는 우리가 의식해서 평가하는 분야 외에도 무의식적으로 강사의 인종이나 보여지는 외모에 따라, 다른 주의력을 사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용된 실험 출처:  Kang & Rubin (2009) Reverse Linguistic Stereotyping: Measuring the Effect of Listener Expectations on Speech Evaluation) 


이렇게 언어에서 유발되는 편견은 우리의 삶과 영어교육에 깊게 박혀있다. 몇년 전, 개그 콘서트의 황해라는 코너에서 보이스 피싱을 하는 사람들이 조선족 억양을 쓰는 것을 개그화 한 적이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보다보면 '조선족 억양을 가진 사람들' = '보이스 피싱을 하는 사람들' 이라는 고정관념이 무의식적으로 생기는 것은 아닐까? 또 우리는 이러한 고정관념 때문에 받는 차별을 당하고 싶지 않아서, 우리가 영어를 할 때 억양을 없애기 위해 많은 시간을 '표준 영어'를 발음 하기 위한 발음과 억양 교정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아닐까? 영어를 잘 한다는 칭찬에, 우리는 thank you 라고 대답해야 하나 아니면 그런 칭찬은 당신의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해주어야 하나? 


한국의 영어교육의 교재는 대부분이 표준 발음으로 생각되는 억양으로 구성되어 있고, 학습자들은 다양한 언어적 특징에 노출될 기회가 적다. 이는 '영어'라는 것은 특정 그룹의 사람들 (예를 들어, 표준어를 사용하는 백인)이라는 편견을 갖게하거나 다른 억양을 사용하는 그룹의 사람들을 만났을 때 이해하는 정도를 낮출 수 있다. 영어가 기존의 영어권 국가 외에 더 많은 곳에서 사용되는 추세에서, 우리가 영어교육에서 추구해야 할 발음과 억양에 대해서 더 곰곰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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