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은의 트렌드 스크랩 #1 - 패션포스트 정기기고
본 아티클은 패션 전문 미디어 <패션포스트> 41호에 기고 되었습니다. (2020년 10월 12일)
2020년 10월부터, '박병은의 트렌드 스크랩'을 월간 기고합니다.
원문주소 : http://abit.ly/gdpyle
코로나19로 인해 소비행태, 산업구조 등 비즈니스 환경이 급변한 동시에 원격근무, 화상회의 등 ‘일하는 방식’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카카오톡으로 업무와 사적 대화를 섞어서 하고, 하루에 몇 번 회의실에 모여 논의하고, 결재 받는 데만 며칠이 요소 되는 방식으로 일해 온 기업들은 정부의 재택근무 권장에 적응하느라 만만찮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사실 스마트워크, 소프트웨어 활용, 원격 근무 등은 코로나19가 갑자기 불러일으킨 변화이기 보다는 이미 상당히 진척된 시대적 흐름에 가깝다. 이 때 사용되고 있는 ‘업무협업툴’은 업무용 메신저, 화상 회의, 히스토리 누적, 클라우드 저장 등을 통해 업무 효율 향상을 돕는 소프트웨어를 말한다.
그렇다면 업무협업툴은 어떤 것을 제공하는가? 이미 쓰고 있는 그룹웨어와는 뭐가 다를까? 가격만 비교하면 될까? 아는 회사도 도입했다는데 우리도 일단 도입하면 될까? 도입하기 전에 검토할 사항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각각의 장단점을 가진 다양한 업무협업툴이 존재하고 있어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협업툴 도입은 단순히 소프트웨어를 구입하는 차원이 아니라 기업문화를 바꿔야하는 매우 중요한 의사결정에 가깝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업무협업툴은 스타트업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보급되며 급성장하는 시장이었다. MS, 구글, 페이스북, 네이버 등 IT공룡들은 물론이고 Slack, 잔디, 플로우 등 국내외 스타트업들이 치열한 경쟁과 협력을 하고 있는 와중에 코로나19라는 강력한 변수가 출현한 것이다.
지난 9월, 카카오의 B2B 비즈니스 자회사 카카오엔터프라이즈가 업무협업툴 ‘카카오워크’를 출시하였다. 메신저, 할 일 관리, 전자결재, 근태관리, 클라우드 저장 공간, 화상회의 등 단순히 ‘업무용 카톡’으로 부르기에는 상당히 많은 업무 기능들을 제공한다.
아직 전체 기능이 다 제공되고 있지 않아서 서비스 성패를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IT기업인 카카오가 직접 출시했다는 것은 국내에서도 ‘업무협업툴 시장의 성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정부에서도 화상회의, 재택근무 관련 소프트웨어 도입 장려를 위해 상당한 비용을 지원하는 K-비대면 바우처 플랫폼 사업을 론칭할 정도로, 업무협업툴 도입은 기업의 생존과 성장에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메일은 여전히 중요한 내외부 의사소통 수단이지만 작성 양식을 갖추고 참조인을 확인해야하는 등 작성과 답변에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된다. 또한 사용자가가 프로젝트나 업무 성격에 따른 이메일함 분류를 잘 해놓지 않으면 업무 히스토리나 관련 첨부 파일 파악이 쉽지 않다.
이런 이메일의 단점을 보완하고 빠른 커뮤니케이션을 돕는 채팅 기반 협업툴의 대표주자는 Slack이다. 과거의 MSN 메신저, 네이트온 등의 메신저들과 다른 점은 대화 참가자가 아닌 ‘부서나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채팅을 개설할 수 있다는 점과 다른 업무 소프트웨어들과의 연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아시아의 Slack을 표방하는 한국산 협업툴 잔디는 한국 및 아시아 국가들의 기업문화를 반영하여 ERP 연동, 조직도관리, 차등권한부여 등의 추가기능을 바탕으로 스타트업 및 중견기업 고객사들을 확보하고 있다.
채팅은 신속한 논의와 의사결정에 좋은 수단이지만, 빠르게 회신해야 하기 때문에 신중한 논의보다는 즉흥적 판단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또 여러 채팅룸에 참여하게 되면 계속되는 채팅 확인과 회신으로 다른 업무에 지장을 주거나 업무시간 대부분이 채팅으로 소비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러한 채팅기반 업무의 단점을 보완하는 뉴스피드(게시글) 중심 협업툴은 개인들의 소셜미디어인 밴드나 페이스북과 유사한 형태이다. 업무나 팀별로 구분된 공간에, 게시글 형태로 안건이나 의견을 포스팅하면 댓글이나 리액션 등으로 해당 논의를 이어가는 방식으로, 사용방식이 소셜미디어와 유사하여 신규도입 시 유저의 사용 적응이 쉽다는 장점이 있다.
대표적으로는 페이스북이 제공하는 Workplace, 한국 스타트업 마드라스체크의 플로우가 있다.
두 서비스 모두 뉴스피드가 핵심기능이며 채팅, 할 일 관리, 화상회의 등의 기능도 제공한다. 플로우는 인하우스 구축(on-premise), ERP연동 서비스도 제공하여 현대·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 S-OIL 등 중견·대기업을 중심으로 고객사들을 확보하고 있다.
다양한 직군을 보유한 기업을 위해서, 채팅과 뉴스피드 기반 협업툴들은 소프트웨어 개발이나 일정관리 등에 특화된 타사 소프트웨어와의 연동을 제공한다. 유연하게 작동하긴 하지만, 사용자 입장에서는 여러 기업의 소프트웨어를 넘나들며 업무를 진행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서 IT대기업들은 이메일, 캘린더, 채팅, 화상회의, 클라우드 폴더, 문서작성, 일정 관리 등 다양한 기능을 통합하여 제공하는 방식의 협업툴을 제공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Office 제품군과의 연동이 특징인 Teams, 구글은 웹 기반 문서 공동작업이 장점인 G Suite, 네이버와 카카오는 전자결재와 인사관리 등의 한국적 기능도 갖춘 라인웍스와 카카오워크를 서비스하고 있다.
Swit은 스타트업들이 선호하는 여러 협업툴(채팅, 게시판, 프로젝트 관리, 타임라인 등)의 기능을 통합 제공하는데 Slack, Asana, Trello, Teams 등 여러 소프트웨어를 오가며 업무 하는 비효율을 줄여주는 서비스로 주목받고 있다.
또한 삼성SDS는 자체 개발한 Brity Works를, KT는 중소기업 협업툴 패키지 KT 디지털웍스 출시를 예고하는 등 대기업의 올인원 협업툴 진출도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협업툴을 전사 도입한다고 해서 업무효율성이 극적으로 상승하는 경우는 드물다. 채팅 등 특정기능만 사용한다거나, 주요 의사결정은 결국 대면회의나 결재 등 예전방식으로 진행하게 된다면 협업툴을 쓰는 목적이 애매해지게 된다.
협업툴을 도입한다는 것은 우리 회사의 조직문화를 파악하고, 바꾸는 일에 가깝다. 위에 간략히 기술한 내용만 보더라도 각 협업툴마다의 장단점이 뚜렷이 존재하고, 기업 구성원 모두가 활발히 쓰지 않으면 자료가 더 분산되어 업무 통합이 오히려 더 복잡해진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협업툴 도입을 결정하기 전에 필요한 것은 우리 기업 조직문화를 파악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구성원간 대화와 논의가 활발하고 빠른 의사결정을 중시하는 조직이라면 채팅 기반 협업툴이 효과적일 것이고, 잦은 논의와 신속한 판단보다 업무 몰입과 신중한 분석이 더 중요한 기업이라면 채팅 활용보다는 뉴스피드 기반 협업툴이 더 적절할 수 있다.
협업툴을 도입한다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조직문화의 변화가 필요한 일이다. 참석자들의 표정이나 태도 등을 통해서도 반응이나 의견을 유추할 수 있는 대면회의 방식과는 다르게, 협업툴을 통해서는 채팅과 댓글 등의 적극적인 리액션이 없으면 구성원들의 의중이나 업무진행 여부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협업툴 도입은 수평적이고 적극적인 의사소통과 참여가 전제되어야 한다. 만약 관리직급이나 대표자가 솔선해서 활용하지 않으면 결국 대면 보고나 결재 방식을 고수하게 되어 협업툴의 장점들이 퇴색되거나 직원들의 사용빈도나 낮아질 수밖에 없다.
협업툴 비교분석과 우리 조직문화 파악을 통해 도입을 결정한 이후에는 각 기업 내부에서 정하는 원칙과 기준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안건을 채팅으로 결정하고, 어떤 의사결정을 대면회의로 할 것인가? 뉴스피드를 확인하면 읽기만 할 것인가, 모두가 리액션을 해서 작성자에게 의견을 표현할 것인가? 구매와 관련된 것이라면 어느 금액까지 채팅으로 갈음하고, 어떤 건들을 기안문서로 남길 것인가? 팀장의 ‘좋아요’ 표시는 결재승인 성격인가, 내용을 읽었음에 대한 표현인가?
시장 환경을 분석하고 장기적 전략을 수립하는 것은 생존을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일하는 방식의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지 않으면 업무 효율성과 채용 등에서 어려움을 겪게 될 수 있다.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원격근무, 화상회의, 수평적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확대 등으로의 변화는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탁월한 성과는 경영진의 전략적 판단에서 비롯되는 경우도 있지만, 조직원들의 활발한 의견교환과 세밀한 기록에서 도출된 아이디어로부터 시작될 수도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특정 협업툴 도입 자체가 아니라, ‘일하는 방식의 변화’에 대응하는 것이다.
꼭 협업툴을 도입하지 않더라도, 현재 우리 기업의 업무방식에서 발생하는 비효율을 파악하고 효과적인 개선방안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다양한 협업툴을 조사하고 도입을 검토하는 과정을 거치는 동안 각 기업은 환경변화와 조직 내부를 더욱 효율적으로 점검할 수 있다.